복지폭탄, 지자체 파산해도 괜찮나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09월 03일(수) 20:37

‘디폴트’란 채무자가 공사채나 은행 융자, 외채 등의 원리금 상환 만기일에 지불 채무를 이행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파산이다. 우리 주변에서 빚이 과도한 개인이나 기업이 디폴트 선언을 한 경우는 종종 봤지만 지자체가 ‘디폴트 선언’을 하고 파산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은 좀 충격적이다.

우려했던 복지시한폭탄이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지자체 디폴트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정치인들이 선심성 공약으로 선거 때마다 복지를 외치면서 복지 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그 재원에 대해서는 무대책으로 일관한 결과다.

3일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복지사업 확대에 따른 재정난을 호소하며 국비 지원이 없으면 ‘복지디폴트’를 선언하겠다고 밝혔다.

기어코 터질 것이 터졌다. 지자체가 ‘복지 디폴트’를 선언하고 지급불능 상태가 되면 당장 저소득층 생계가 막막해진다. 대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방재정자립도는 지난해 평균 51.1%에서 올해는 50.3%로 떨어졌고, 재정의 50% 이상을 복지비로 사용하는 지자체도 늘어나는 추세다. 결국 복지비 부담이 지나쳐 주민자치를 위한 지방행정과 풀뿌리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진 셈이다.

내용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자체의 재정적 어려움은 기초노령연금, 무상교육비, 무상급식비 때문이다. 특히 올 7월 시행된 기초연금 예산 7조원 중 지자체가 1조8천억원을 부담해야 하며, 내년에도 1조5천억원이 증가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끝날 때까지 총 40조5천억원이 더 들어가야 한다.

현재 지방비 부담률 23%인 기초연금 비용 전액을 국비로 지원하거나 현행 평균 74%인 국고보조율을 90% 이상으로 확대하든가, 지방소비세율을 11%에서 16%로 인상하지 않으면 도저히 지불이 불가능한 상태다.

영유아보육비도 7조8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데, 이 중 지자체가 3조6천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전년 대비 1조500억원이 늘어난 것이다. 정부의 보육비 국고보조비율이 10%포인트나 인상됐는데도 지자체의 어려움은 변함이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가 불필요한 사업을 줄이는 등 자구책을 모색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복지디폴트를 피할 수 없다. 올해만 해도 지자체의 복지 예산 증가율은 12.6%로, 지방 예산 증가율 5.2%의 2배 이상이었다.

광주·전남 지자체 경우 지방채 발행, 추경 편성 등의 땜질 수단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불과 몇 개월 후의 인건비마저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지자체로선 어찌할 방도가 없다.

방도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파산 선언을 할 수 밖에 없다. 파산 하면 어떻게 되는가. 주민이 떠난다. 지자체 중 처음 파산 선언을 한 홋카이도 유바리시 경우 파산 이전 인구가 12만명 선 이었으나 지난해 9월말 현재 9천968명으로 줄었다. 회생을 위해 불가피하게 세금을 올리고 지출은 줄이다 보니 12만명 중에 11만명이 떠난 것이다. 지난해 7월 180억 달러의 부채를 안고 파산한 미국 디트로이트는 1950년대 인구가 200만명에 육박했으나 지금은 70만명 수준에 불과하다.

파산하면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경우 외국처럼 지자체가 방만 경영을 해서 망한게 아니라 정치인의 ‘과잉복지공약’으로 인한 ‘복지 디폴트’라는 점에서 정부와 정치인들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복지 공약해 표를 얻었으면 지불 방안 대책도 내놓는 게 맞다. 지자체 살림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선심성 공약을 내질렀으니 뒷감당도 해야 한다. 표를 얻기 위해 ‘부담’에 대한 고민 없이 복지공약을 확대, 남발했다고 고백하고 빨리 수습해야 한다.

이렇게 하자.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모든 생색은 다 내고 지자체에 대해 부담을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새로운 복지항목을 신설하는 경우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분담률을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 기왕에 시작한 복지정책이고 꼭 필요하다면 사회복지세 도입이나 지방세 인상을 통해서라도 감당해내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가 뚜렷한 상황에선 복지비 증가가 불가피하다면 당장 국비지원 비율을 높이든지, 일정 기간 국가가 전담하든지,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기존 방식대로 정부가 좀 내고 지자체도 좀 내서 같이 감당하자는 것은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로선 위험한 일이다.

차제에 복지정책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재정비도 요청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무상보육의 예처럼 네 탓만 하지 말고 지속 가능한 복지 실현을 위해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해야 한다.

정부·정당·국회의원은 올 추석 연휴에 정치적인 민심만 살필 게 아니라 고향 지자체 살림 여건을 파악해보고 정부의 ‘복지폭탄’으로 파산 지경에 놓인 지자체 구제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현답’을 구해야 한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