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진실한 감정의 공유 해와인문기획 시네필로 ‘비긴 어게인’과 음악 kjdaily.com

2014년 09월 10일(수) 20:06

※‘시네필로’는 철학적 지점에서 영화를, 영화적 지점에서 철학을 말하고 묻는 해와문화예술공간의 인문학기획으로 매주 수요일 퇴근길 운림동 숙실마을 해와 소극장에서 자유대학과 지식강좌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오르페우스라는 음악가가 등장한다.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잘 타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연주 소리에 사람은 물론이고 짐승, 나무나 바위까지도 반하곤 했다. 그는 죽은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지옥으로 내려가, 구슬픈 선율로 지옥 신의 마음마저 돌려놓았다. 음악은 오르페우스로 하여금 아내를 잃은 상실감을 표현하게 했고, 신들로 하여금 이 감정에 전염되게 했다.

이처럼 음악과 감정의 관계에 대한 담론은 음악이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측면과, 듣는 이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영화 ‘비긴 어게인’은 음악에서 감정의 표현과 영향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의 주인공 그레타는 스타가 된 연인 데이브를 따라 뉴욕에 오지만, 이내 그에게 버림받는다. 그 후 만든 노래(‘A Step You Can‘t Take Back’)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연인의 배신에 지하철 선로로 뛰어들고 싶다고 느낄 만큼의 괴로운 감정을 담았다. 그녀가 이 노래를 허름한 라이브 카페에서 불렀을 때 기교도 카리스마도 없는 무대에 사람들은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무대에 감동한 사람이 있다. 댄은 유명한 음반제작회사의 설립자였지만 최근 몇 년간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딸이 보는 앞에서 해고된다. 난동을 피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설상가상으로 자동차는 고장 나고 지하철은 연착된다. 실의에 빠져 찾은 술집에서 마주한 그레타의 무대는 그의 처지를 대변해준다. 이제 그의 눈과 귀에 첼로, 피아노, 바이올린, 드럼 세션이 추가된 환상적인 무대가 펼쳐진다. 이날 그레타의 음악은 댄에게 말을 걸었다.

이것은 표현과 소통이 가능한 음악의 언어적 성격을 말해준다. 하지만 음악의 언어는 개념적 언어와 일대일 대응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프랑스 시인 말라르메의 구분처럼 일반적 언어가 아니라 ‘본질적 언어’ 혹은 ‘시적 언어’다. 일반적 언어가 사물들을 일반화하고 표상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도구적 언어인 반면, 본질적 언어는 일반적 언어를 토대로 이루어져있지만 추상적·총체적(철학적) 사유에 개입하며, 존재 자체를 현시한다.

그레타는 작가의 진정성을 음악의 중요 원칙으로 삼는다. 음악에 대한 진정성으로 소통했던 연인이 이제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과 공유를 더 중요한 원칙으로 여기고 기획사의 소모품으로 전락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자신의 원칙을 더욱 확고한 것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음반을 제작해보자며 다짜고짜 스타일이나 태도 등 이런저런 제안을 하는 댄이 달가울 리 없다. 그레타는 음반제작 제의를 단칼에 거절한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진정성도 사람들이 네 노래를 듣게 해야 의미 있는 것 아니냐는 댄의 말은 그레타를 흔들리게 한다. 그레타는 감정의 표현과 영향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고민하다 댄의 손을 잡는다. 그렇지만 이들의 음악은 기획사가 내놓는 잘 만들어진 상품과 다르다. 이들은 음반제작회사의 재정적 도움 없이 뉴욕 길거리를 무대로 음반을 만든다. 건물의 옥상, 지하철역, 골목길, 호수의 보트 위를 무대로 하기에 바람소리, 경적소리, 심지어 시끄럽다는 고함소리도 재료가 된다. 그레타와 세션들이 거리에서 빚어낸 음악은 대중적 성공, 돈벌이, 음대 졸업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오직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며 함께한 시간을 들려준다. 그레타의 음악은 내면으로만 침잠하는 비참한 자위물이거나 대중에게 미치는 효과를 노리는 선정적 자극제라는 이분법에서 탈피한 새로운 공유방식을 보여준다.

대중의 환호에 취해있던 데이브는 어느 날 그레타가 보내온 이별 노래에 담긴 진정성에 감동해 그녀를 찾는다. 데이브는 그녀가 과거에 선물로 주었던 노래(‘Lost Stars’)를 편곡해 들려준다. 하지만 그녀는 그와의 내밀한 추억이 왜곡된 느낌을 받고 본래의 어쿠스틱 버전으로 다시 레코딩하기를 권한다. 그레타를 초대한 콘서트에서 그는 조언대로 어쿠스틱 버전으로 노래를 시작하며 그녀를 찾는다. 하지만 후렴구에 이르자 그는 편곡 버전으로 노래하며 대중의 열광에 몸을 던진다. 대중의 지지라는 달콤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낀 그레타는 콘서트 장을 빠져나와 혼자만의 길을 나선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처음 이별했던 때처럼 슬퍼 보이지 않는다. 내면의 동굴 속에서 벗어나 음악도, 사랑도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된 건강한 자아가 여기 있을 뿐이다.

/최송아(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