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절벽과 사행천에서 들려오는 정선아라리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 영월 동강길 (문산나루-섭세나루) kjdaily.com

2014년 09월 11일(목) 20:32

해마다 여름이면 수많은 젊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레프팅을 즐기는 동강. 지금은 고요한 적막속에서 잔잔한 물결만이 강변에 작은 모래톱을 만들며 굽이굽이 어라연을 향해 흘러간다. 동강의 물결은 어라연전망대에 있는 절벽을 휘어돌며 절정을 이룬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영월역 앞을 거쳐 동강변을 따라 달려간다. 산자락을 굽이굽이 돌면서 흘러가는 강줄기와 기암절벽을 이룬 강변풍경이 아름다워 한시도 동강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높지 않은 산봉우리엔 안개가 끼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강변에는 듬성듬성 밭과 농가들이 고즈넉하게 자리를 잡아 강에 사람의 향기를 불어넣어준다. 정적이 감도는 동강변 문산마을의 아침은 면사포를 쓰고 있는 듯 안개로 뒤덮여 있다. 강이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돌면서 곡선 바깥쪽은 가파른 벼랑을 만들고, 안쪽은 토사를 날라다가 넓지 않은 농경지를 이루어 마을이 형성됐다.

문산나루에서 조금 전 버스를 타고 건넜던 문산교를 건너니 ‘잣봉 등산안내도’가 동강길 초입을 알려준다. 길은 동강변의 가파른 절벽 위로 이어지고, 절벽 아래에서 강물소리가 속삭이듯 말을 걸어온다.

우리가 출발했던 문산나루와 문산교 위쪽에서는 구절양장 같은 지형을 지난 동강이 유유히 흘러오고, 그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을 백운산은 안개 속에 오리무중이다. 문산마을을 감싸고 돌아오는 동강은 강변에 작은 농경지와 모래톱을 만들어놓고 다시 굽이를 돌며 어라연 쪽으로 흘러간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고 전해지는 삼선암<왼쪽>과 고운 모래톱이 아름다운 어라연 상류<가운데>, 강변을 따라 거닐며 만난 넓고 고운 모래밭과 빈배. 모두가 잊지못할 그리운 풍경들이다.

쌍쥐바위전망대에 서서 우리는 신비로운 동강의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한다. 정선읍 가수리에서 시작된 동강은 영월읍에서 서강과 합류하여 남한강이 되고, 충청북도 단양, 충주를 지나 경기도 양평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이 된다. 영월읍을 기준으로 동쪽에서 흘러오는 강을 동강(東江), 서쪽에서 흘러오는 강을 서강(西江)이라 부른다.

강 건너 문산마을에서 이쪽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병풍바위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 형국인데, 그 바위 속에 쌍쥐바위가 있다고 한다. 한 마리의 쥐가 새끼 쥐들에게 젖을 먹이고, 다른 한 마리는 동강의 물을 먹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쌍쥐바위라고 불렀다.

울창한 숲은 참나무 일색을 이루다가 아름드리 솔숲으로 바뀌기도 한다. 산은 우리에게 탐욕을 씻어내고 자연의 질서에 따라 단순 소박하게 살라한다. 자연을 통해 닦았던 마음은 생활현장에 나가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걷고 또 걸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길을 걸으며 나와 아내는 도반(道伴)이 된다.

장성산에 도착했다. 잔뜩 낀 구름 때문에 주변의 조망은 좋지 못하다. 흐린 날씨로 조망은 좋지 못하지만, 대신 뜨거운 햇볕이 없어 한여름의 무더위를 덜어준다. 가끔 만나는 소나무 군락은 다른 지역의 소나무와 격이 다르다. 강원도 금강송으로 줄기가 곧고 수피가 붉으며 키가 훤칠하다. 아름드리 금강송 줄기의 거북등 같은 무늬가 선비의 풍모를 띤다.

장성산과 잣봉을 이어주는 고개에는 조그마한 밭들이 있다. 완만한 산비탈을 오르니 금방 잣봉에 도착한다. 잣봉에서 어라연 쪽으로 내려가는데 금강소나무 숲이 그윽하고 정갈하다. 숲의 적당한 여백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유를 갖게 해준다. 가파른 절벽 위를 걷는데 양쪽 아래로 동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잣봉에서 어라연으로 좁고 길게 뻗어 내린 산줄기를 강물이 한 바퀴 돌면서 어라연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못을 이룬다.

어라연이 가깝게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선다. 아름다운 동강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어라연은 고기가 비단결 같이 떠오른 연못이라는 뜻이다. 양쪽으로 기암절벽을 이룬 동강 가운데에 작은 섬처럼 크고 작은 바위들이 강물 위에 떠 있다. 위쪽 바위를 상선암이라 부르는데, 그 모양이 거북이 기어가는 것 같다.

상선암 아래로는 넓적하고 커다란 바위가 누워있고, 이 바위 아래로 자갈밭이 부드럽게 펼쳐진다. 강물은 이런 바위섬과 자갈밭을 가운데 두고 3개의 소를 이루었는데, 이 전체를 일러 어라연이라 한다.

전망대에서 어라연으로 내려간다. 어라연의 아름다운 풍경은 강변 산봉우리들이 감싸주어 포근하기까지 하다. 어라연 아래쪽에서 본 자갈밭은 활짝 펼친 부채모양이다. 잔잔한 연못과 부채모양의 섬, 그리고 주변의 산봉우리가 어울린 모습은 동강이 만든 비경이다.

어라연을 뒤로 하고 강변 자갈길을 따라 걷는다. 강원도의 산은 높낮이에 관계없이 남쪽지방의 산보다 뾰족하고 가파르게 솟아 있다. 산과 강이 어울려 원시적인 풍경을 이룬다. 강물은 잔잔하게 흐르다가 된꼬까리여울을 지날 때는 하얀 물보라를 내며 급하게 흘러간다.

지금은 동강에 래프팅하는 배들이 떠다니지만 옛날에는 이곳에 뗏목이 떴다. 동강은 1950년대 후반까지 정선이나 평창 지역에서 나는 목재를 서울로 뗏목으로 엮어 나르던 물길이었다. 정선 아우라지에서 시작하여 동강을 거쳐 모아진 작은 뗏목들을 영월에서 다시 큰 뗏목으로 엮어 남한강을 따라 서울까지 운송해 갔다.

정선 아우라지에서 영월읍내까지의 가파른 ‘골안’을 빠져나가는 일은 목숨을 담보할 정도로 위험했지만 ‘떼돈을 번다고 해서 떼꾼’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벌이가 좋았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거기다가 호주머니까지 두둑하다보니 떼꾼들은 주색을 즐기게 되었다.

그래서 떼가 닿을 만한 곳이면 객주집이 들어서 성시를 이루었다. 1957년 정선선 철로가 개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골안에 100여 개의 객주집이 풍요를 누렸다고 한다. 서방님을 떼꾼으로 보내고 마음 조아리던 아낙네들은 정선아라리로 근심을 달랬다.

우리집의 서방님은 떼를 타고 가셨는데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지나가셨나

골안을 무사히 빠져 나오면 남한강을 거쳐 서울까지 가는 길은 멀기는 해도 위험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동강에서 가장 경사가 급하다는 황새여울과 된꼬까리여울을 무사히 지난 떼꾼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역시 정선아라리를 불렀다.



황새여울 된꼬까리 떼 무사히 지났으니

만지산 전산옥이야 술상차려 놓게



여행쪽지

▶영월 동강길은 문산나루-쌍쥐바위전망대-장성산-잣봉-어라연-섭세나루까지 12㎞ 거리로, 6시간 정도 걸린다. 단축코스로는 섭세나루-마차리-만지고개-잣봉-어라연-섭세나루까지 7㎞에 4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 만종분기점 → 제천IC → 38번 국도 영월방향 → 영월나들목 → 영월역 → 섭세나루(삼옥리) → 문산리(문산나루)



지금도 동강에서는 떼꾼들이 객주집에서 거나하게 한 잔 들면서 불렀던 정선아라리 가락이 들려오는 듯하다. 섭세나루와 섭세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동강 위에 놓인 거운교를 건너는데, 강은 여전히 평화롭고 강물은 고요히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