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와의 조우…낯선 시간속 특별한 감동 박종석 화백의 화필여로<13> 남미여행-브라질 <이름 모를 도시와 사람들, 그리고 아마존> kjdaily.com

2014년 09월 24일(수) 19:43

박종석 作 ‘이구아수 폭포’

여행은 떠남과 돌아옴의 의미를 돌이키게 된다. 가끔 어릴 적 소풍 떠나기 전날처럼 작은 가슴에 흥분의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10년 전부터 계획했던 66일간의 남미 여행은 힘겨운 고생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낭만과 감동도 많았던 여정이었다. 미지의 땅이라 이름 하여야 옳을 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을 때마다 느끼는 소회들은 지금까지 구사했던 언어들이 너무 미약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여러 여행 중 기억의 파편들 가운데 늘 회자되는 곳이 남미여행이다.


2006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의 들뜬 분위기를 안고 비행기는 홍콩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를 경유하여 브라질 상파울로에 도착하기까지 대륙과 대륙을 건너 꽤 먼 곳으로의 포근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여행이란 길동무가 있어야 더 운치가 있다는 말처럼 나의 길 동무는 영문학을 전공한 김기호 박사와 함께 하게 되었다.

상파울로에 도착한 나와 김 박사님은 동양인들이 모여 사는 리베르다데 지역에 있는 중국계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낯선 땅이라기보다는 동질성 때문인지 정감이 먼저 다가왔다. 사람사는 세상이라 여기에서도 활력과 생존의 웅성거림은 계속된다. 똑같이 느껴지는 삶터의 번잡함 속에서 언어의 한계는 별 의미 없을 것 같다. 손짓 발짓을 하는 우리의 마음을 금세 그들은 알아차려 버린 까닭이다.

브라질 이구아수폭포를 배경으로 필자.

중국계 호텔 직원은 우리가 여행자임을 알았는지 제법 친절하게 가까운 거리의 성당을 소개한다. 고딕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대성당은 40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한다. 또한 규모도 웅장하여 일시에 8000명을 수용한다고 한다.

2-3년이면 고층 건물을 뚝딱 지어버리는 우리나라 실정에서 40년이란 시간이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벽의 공간 하나 하나에도 작은 손길을 놓치지 않고 꾸며 놓은 대성당을 구경하면서 신앙심과 정성의 흔적을 발견한다.

거대한 대성당 앞에서 문화의 위대함이란 바로 시간의 초월임을 느끼며 빠름과 성장만을 추구한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의 현대사가 결국 섬세한 손길이 담긴 땀의 흔적을 별로 찾을 수 없는 것도 함께 느끼게 한다.

그들은 장구한 시간 속에서 피땀 어린 정신과 마음을 담았다는데 그저 숙연해질 뿐이다.

진정한 건축의 조형미란 크기나 시간의 빠름이 아니라 정성과 세월 속에 역사와 문화를 보전하는데 있을 것이다. 몇 백 년이 넘는 한국의 고찰과 마주하면서 열정과 혼이 담긴 건축물에 마음을 뺏기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리오데자네이루 전경.

다음날 세계 3대 미항인 국제 관광도시인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에 버스로 이동하여 7시간 만에 입성한다.

바로 이파네마 해안으로 직행하여 활기 넘치는 해변가에 도착한다.

하지만 연말연시라 그런지 각국에서 몰려든 관광인파로 인해 숙소를 잡지 못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공원 벤치에서 하루 밤을 지새워야 할 신세가 되었다.

그럭저럭 밤하늘 별들을 바라보는 재미로 아침을 기약하였는데 비가 내리는 새벽 4시, 어둠이 거칠 무렵까지 비를 피하려고 큰 건물의 처마에 서서 무심한 하늘만 쳐다본다.

집시처럼 초라한 여행자라는 게 실감나는 기분이다. 무심한 하늘도 2시간 후 비가 그친다. 새벽빛이 훤해지니 서둘러서 배낭을 짊어지고 택시를 잡아 강행군을 시작한다.

팡데라수카르(Pao de Acucar)의 정상을 오르기 위해 곤돌라를 타고 해발 390m의 정상에 오른다.

절반은 럭비공 모양을 한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도시 풍경은 하늘 위에서 내려 다 보듯이 아름다운 조형미를 갖춘 천연 그 자체였다.

이국에서 보는 바다가 그림쟁이의 마음을 묘하게 뒤 흔든다. 새벽 비를 맞은 생쥐 같은 초라한 신세를 보상받기에 충분한 풍경이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수식이 손색이 없다.

‘예수상’

조금 더 오르면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는 욕심으로 예수상이 서있는 코르코바도 언덕(Morro do corcovado)에 여유롭게 오른다.

해발 710m의 절벽 꼭대기에 서 있는 예수상은 산 아래 사람들을 향해 다 네게로 오라는 듯이 팔을 내밀고 있다. 그러나 관광객들의 욕심을 예수님이 아셨는지 운무에 가려 산 아래의 멋진 해변과 동상이 순간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예수상은 무게만 해도 1124t이나 되고 팔 길이만 해도 28m나 된다.

좀처럼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 희미한 예수상 만이 장엄만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한국말 몇 마디, 아 얼마나 반가운 소리인지 귀가 솔깃해진다.

말소리의 발원지는 예수상 바로 아래 근처였다.

동향인 전라도 광주에서 왔다는 부부와 남미여행만 3개월째 하고 있다는 김세진이란 여성이었다. 반가움이 얼마나 컸던지 서로의 여정을 묻기에 여념이 없다.

더욱이 예수님 상 아래에서의 만남이여서 그런지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과 흡사 한 것 같다.

이러한 우연의 만남은 여행자에게 때로는 짐이 되고 또한 아쉬움이 되기도 한다.

그들과의 짧은 인연을 뒤로하고 자유인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하여 길을 떠난다. 길은 길로 이어지고 다만 길속에서 만남과 이별은 반복될 뿐이다.

어쩌면 이러한 만남은 길을 떠난 여행자만이 가지는 작은 선물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23시간을 이동한다.

좁은 버스 안에서 잠을 자다 뒤척이기를 수 십 번 반복한다.

지겨울 즈음 우리는 이구아수 폭포가 있는 녹색 도시에서 내린다.

브라질 쪽의 폭포를 보고서 이동한다. 아르헨티나 쪽에서 폭포를 관망하기 위해 기차를 갈아타야한다.

악마의 숨통까지 산책로를 따라가니 벼락소리가 내리치듯 웅장한 폭포음이 굉장하다.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더 요란해 진다. 마치 번민에 젖은 인간들의 언어와 소리들은 거대한 폭포의 음량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하나로 통일된다.

자연의 소리란 게 어떤 때는 운치가 있고 어떤 때는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다가 외부의 소리를 삼켜버리는 강한 흡수력을 가졌다고 느껴진다.

폭포의 굉음 앞에서는 아무 말이 필요 없이 미세한 눈가루처럼 아니? 옥가루처럼 뿌리는 물보라의 시원함 앞에서 사랑하는 이에게 애무를 받듯 응하기만 하면 된다.

카타르시스를 느낄만한 탄성이란 단어는 이럴 때 사용함을 절감한다.

소리가 어우러지고 눈을 가득채운 풍광은 우리 일행의 옷을 흠뻑 젖게 만들었는데도 우두커니 서있게 만들었다.

이러한 폭포의 매력과 함께 감기 몸살로 병원의 통원치료를 받기위해 3일간이나 한가하게 머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