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판사라면 어떤 결정을?” 광주지법, ‘공감재판 해법 찾기’ 시민참여 대토론 500여명 대상 설문 통해 법 감정·양형 비교 ‘눈길’ 노병하 기자 icepoem@kjdaily.com

2014년 09월 29일(월) 20:34

29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모의재판 참여자가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김애리 기자 kki@kjdaily.com

광주지법이 공감 판결을 위한 뜻깊은 행보를 펼쳐 눈길을 끌고 있다.

광주지법은 29일 오전 ‘공감 받는 재판을 위한 생각 나눔, 죄와 벌, 여러분이 판사라면’을 주제로 양형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광주지법에 따르면 이번 콘퍼런스는 판사들이 언론 등을 거치지 않고 직접 시민의 양형 감정을 가늠하고, 시민은 판사의 입장에서 배심과 모의재판에 참여하며 교류한 최초의 행사다.

콘퍼런스는 전문가 토론회, 시민 참여 모의재판, 시민 모의 배심, 시민 토론회 등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전문가 토론회는 장용기 광주지법 부장판사의 사회로 권태형 부장판사가 주제 발표에 이어 류전철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수현 광주지검 검사, 임태호 변호사가 시민 474명, 법조인 52명 등 모두 526명을 대상으로 한 사전 설문조사 결과를 놓고 토론했다.

설문 내용은 ▲음주운전으로 인한 보행자 사망사고 ▲청소년 대상 데이트 성폭행 ▲아동 성추행 등 세 가지 유형의 사건을 놓고 합의 또는 공탁 여부, 피해자의 상태 등 일반적인 여러 양형 요소의 조건을 대입한 문항으로 이뤄졌다. 또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검사, 변호인, 피고인, 피해자 역할을 하고 데이트 성폭행 사례를 토대로 실제와 흡사한 재판을 재연했다. 또 13명 안팎의 10개 조로 나뉘어 양형을 토의하고 지도 판사와 함께 적정한 형벌을 고민했다.

특히 사전 설문결과 조사는 주목할만하다.

일반 시민들의 경우 법조인보다 교통사고 피고인에는 관대하고 성범죄자에게는 엄격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먼저 교통사고의 경우 피해자가 어두운 도로를 무단횡단하던 중이었고 보험처리가 돼 유족과 합의된 교통사고에서 일반인은 60%가 벌금형으로 선처하겠다고 답했지만, 법조인은 48%만이 벌금형을 골랐다. 이어 보험처리나 합의가 되지 않은 경우를 가정했을 때도 시민은 55%가 실형을 선고하겠다고 밝혔지만 법조인은 83%가 실형을 택했다.

일반인이 교통사고 피고인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위험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피해자의 원룸에서 술을 마시다가 17세 청소년을 성폭행한 사례에서는 시민의 형벌이 법조인보다 무거웠다. 시민이 선택한 형은 징역 2년6월-4년(35%), 징역 4-7년(28%), 징역 7년 이상(26%)으로 고루 분포됐지만, 법조인의 대답은 징역 2년 6월-4년(58%)으로 쏠렸으며 징역 4-7년 32%, 징역 7년 이상 8% 등으로 나타났다.

아동 성추행에서는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낀 정도일 때 시민 11%·법조인 4%, 정신적 충격이 큰 정도의 입맞춤에서는 시민 28%, 법조인 6%, 정신적 충격이 큰 음부 접촉은 시민 68%, 법조인 42% 등으로 실형 비율을 보였다.

시민은 합의가 됐더라도 선처해서는 안 된다며 실형을 많이 골랐다.

한편, 이번 행사와 관련 김주현 광주지법원장은 “언론의 비판이나 입법부의 법률 개정 등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양형에 관한 법원의 재량은 오히려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판사들 스스로 국민 법 감정과 법원의 판단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는 데 설문조사나 모의 배심 결과가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병하 기자 icepoem@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