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지 못한 5·18 그 역사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10월 01일(수) 20:40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신채호선생이 한 말이다. 필자는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부끄럽다.

역사는 단절되어있지 않고 연속된 흐름이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때로는 매듭을 지음으로써 왜곡된 역사를 올바른 흐름으로 돌릴 필요도 있다. 우리 현대사는 분명히 끊어야 할 부분에 있어서 그렇지 못했다. 해방 후 독재와 군부 쿠데타로 이어지는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회적 동력이 민주화 운동에 쏠려 일제 잔재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이었던 친일파들은 계속해서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누려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들은 민족혼을 갉아먹으며 호의호식하려고 한다.

100년 200년 된 역사도 이럴진대 이제 30여년 넘은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 왜곡과 폄훼, 굴절은 어떻겠는가. 1980년 당시의 피해자와 광주시민이 버젓이 살아있는 ‘생생한 역사 현실’에 대해 일부 세력이 저지르는 ‘정서적인 폭력’은 ‘역사 살인’에 버금가는 비겁한 행위다.

최근 허위사실을 유포한 전사모(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회원들에게 대구지법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판결했다. 박씨 등은 지난 2006년 5월 17일 인터넷 카페에 ‘5·18 분석’ ‘5·18 광주사태에 즈음하여…’ 등의 글을 올려 5·18 민주화운동이 북한에서 파견된 특수 부대원들이 지시, 조종한 사건이며 5·18 민주유공자 등을 비하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그러나 특정 피해자를 지칭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죄라는 것이다. 앞으로 5·18에 대한 왜곡과 폄하가 계속되더라도,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트려도, 외국인이나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소수를 향한 명예훼손도,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면 무죄라는 논리와 같다는 점에서 광주시민의 공분을 살만한 오판이다.

이번 항소심 무죄판결은 재판부가 5·18피해자는 신군부라는 동일한 가해집단에 의한 단일한 집단적 피해자라는 측면에서 개개인을 특정하지 않았다고 해도 5·18피해집단 전체를 이 순간에도 왜곡·폄훼·매도하고 있는 상황을 간과하고 있다. 전사모가 사이버상에서 ‘5·18민주화운동이 북한 특수부대의 공작이며 폭동이다’는 사실을 전파한 것이 무죄라면 법과 제도에 대한 부정은 물론 국기에 대한 무책임한 도전을 방기한 것이다.

광주시민은 재판부가 ‘북한군 특수부대의 공작 내지는 폭동설로 북한군 개입설을 유포시키는 것은 5·18의 근본정신과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인데도 분단 상황을 교묘하게 악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북한군이 개입한 흔적이 없다고 명백하게 밝혔음에도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5·18의 이념을 훼손시키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특히 5·18은 신군부라는 동일한 가해자 집단에 의해 단일한 피해자 집단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전체 피해자가 명약관화한 데 이번 판결은 기존의 명예훼손 판례에도 어긋난다.

프랑스의 경우 일반 형법, 언론 관련법, 사적 통신법 등에 의해 개인 또는 단체를 상대로 차별, 증오, 폭력을 유발하는 모욕적 언행을 금하고 있다. 특히 인간성에 대한 범죄를 부정하거나 정당화하는 행위는 법으로 금하고 있다. 예를 들면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면 법적 제재를 받는다. 독일은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형식으로, 공개적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 인종 등을 모욕하고 악의적으로 중상하거나 폭력적 또는 일방적인 대응을 유발하는 행위는 범죄로 규정해 최고 5년의 실형에 처한다. 예를 들면 독일 내 소수민족을 비하해서 공개리에 부르거나 글로 쓸 경우 처벌 받는다.

민주주의에서는 상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 전체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최소한도의 규범이 적용되어야 한다. 재판부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최소한도의 상식을 가지고 재판에 임했다면 ‘전사모’의 근거 없는 주장은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정면 배치된다는 점에서 단죄했어야 한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은 1979년 12월12일과 1980년 5월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파괴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정지 등에 관한 사항 등을 규정함으로써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민주화를 정착시키며 민족정기를 함양함을 목적으로 1995년 12월 21일 제정된 법률이다. 따라서 5·18 관련 법률의 내용을 정면에서 부인하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게재한 것은 표현의 자유와는 무관한 것으로 5·18 민주유공자 전체를 심각하게 모욕하고 비하한 언어폭력이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평가는 이미 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정리가 되었다. 국제사회에서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곡과 폄훼가 계속되는 ‘철없는 역사의식’에 광주시는 전략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때다. 온라인상에서 지역감정과 묶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이 버젓이 오가는 것을 용납하지 말자. 상당수는 불손한 의도가 개입된 악의적인 조작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런 조작 자체가 매국행위임을 분명히 경고하자. 왜곡된 정보를 학습하고, 퍼 나르고, 다시 학습하면서 내면화되지 않도록 광주시의 광주시민이 모두 감시자로 나서야 한다.

광주시민은 앞으로 5·18폄훼 논리가 더 정밀해지고 교묘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지금 21세기 한국은, 20세기 말에 일어난 5·18을 어떻게 승화할 것인가, 질문하고 지나온 과정을 끊임없이 반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시력을 빼앗아버리는 이런 조치가 계속된다면 광주는 계속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 ‘역사의 피’를 짓밟는 후손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