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삶속에서 공존을 배우며 운명에 순응하는 원시자연의 사람들 박종석 화백의 화필여로 <15> 남미여행-아마존 밀림 탐험 <아쉬움 없이 떠나야 하는 숙명> kjdaily.com

2014년 10월 08일(수) 19:03

‘흉상’‘인디오의 혼’‘원주민 도자기’‘도자기’

여행이란? 한 도시의 속살을 조금이라도 알 듯하면 아쉬움 없이 떠나야 하는 숙명을 가진다. 이것은 여행자의 규칙이며 불문율인지도 모른다.

일행은 새벽 3시에 일어나 떠남을 준비한다.



에세이사 국제공항에 도착해 페루의 수도 리마를 경유해 수도에서 1300㎞ 떨어진 밀림 한가운데 자리한 도시로 목적지를 삼는다.

석양의 노을이 질 무렵 이키토스의 공항에 도착한다. 사람과 도시를 지나 일행은 아마존 밀림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기내에서 내려다본 아마존의 열대 밀림은 끝이 없이 계속된다.

뱀이 기어가듯 갈색톤 강줄기가 보이는데 하구까지 3천700㎞를 흐르는 장강으로 세계의 공기를 정화시켜 주는 지구의 폐 기능 역할을 하는 원시림 공간 한가운데 도시가 있다는 것이 의문스러울 정도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공항을 나서니 벌떼처럼 몰려든 원주민 호객꾼들이 우리를 에워싼다. 그들은 우리일행을 정글의 생존을 위한 여린 먹이를 보듯이 혼을 빼놓는다. 10여명 중 영어실력이 뛰어난 로보(36세)를 가이드로 선정해 시내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그의 허름힌 사무실로 향한다.

3일간의 정글 투어를 그에게 의뢰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한다.

페루 아마존 이키토스에서.

다음날 오전 9시가 넘어 25만㎞를 주행한 허름한 골동품 같은 자가용을 준비한 가이드를 따라나선다. 고물 자동차를 타고 아마존 북단의 나우타(NAUTA) 지역으로 이동한다.

전형적 시골 강변마을이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작은 전통시장이 있다.

생전 처음 보는 과일이며 매끄럽지는 않지만 정겨운 생필품과 어물전들이 원시성을 간직한 극히 소박한 생기를 지니고 있다. 삶의 풍경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낙원의 한 지역 같았다. 한 아이의 가방 안에는 책과 학용품을 대신한 오이와 칼이 들어 있었다.

그들의 원시적 삶의 순수가 그 자체로 고귀함을 느끼게 한다.

낮 12시가 넘어 5m짜리 모터보트를 타고 가이드 로보 식구와 함께 거대한 아마존 강을 거슬러 올라 리오 아마존(Rio AMAZONAS)으로 향한다. 갈대와 수생식물들 사이를 뚫고 가는데 순수 원시림과 청명한 하늘 위의 흰 구름을 보면서 인간의 거만한 문화가 침투할 공간이 없는 곳이라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2시간 정도 거슬러 오르니 강변에 수상 가옥 형태의 촌락이 보인다.

로보의 집과 100여가구의 원주민촌에 내리니 오리와 닭들이 사루비아와 맨드라미 꽃 사이에서 노닐고 있고 엉성한 나무 2층 집의 그물 침대에서 아이들이 한가하게 놀고 있다.

다시 정글 사이의 강을 거슬러 올라 베이스캠프인 롯지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 롯지 내부는 인디언 원주민 조상들의 그림들과 도자기, 목조각, 악어 뼈, 원숭이의 해골들이 진열돼 있고 몇 아이들은 강가에서 다이빙을 하며 즐긴다. 가끔 이름 모를 새소리가 정글 숲을 더욱 호기심 있게 만든다.

여기서는 부족함이나 풍족함의 의미가 없다.

다만 지독한 공포로 치를 떨게 하는 모기떼가 무간지옥을 상상하게 한다.

카누를 타고 정글 어느 한 지점에 내려 걸으니 나무로 축조한 전망대가 있어 호기심에 땀을 흘리며 오르는데 높이가 50m나 된다.

최고 지점에 올라 보니 온통 사방팔방 세상이 녹색지평의 밀림 외에는 하늘뿐이다. 조심조심 내려와 다시 정글 숲 사이 강을 오르는데 느닷없이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열대에서만 보는 스콜현상이다.

박종석 作 ‘이키토스 아마존 강변’

정글 한 모퉁이로 배를 대고 밀림을 뚫고 20여분 이동하니 베이스캠프가 보인다.

도착해 옷을 말리고 세탁하는데 이번에는 무지막지한 모기떼들이 끊임없이 괴롭힌다.

정글의 법칙은 미물마저도 악착 그 자체로 생존한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또한 모기에겐 천국이요, 여행자에겐 지옥이라는 사실 체험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해가 지자 그래도 전보다 모기의 극성은 줄었다.

모닥불을 피우고 원주민들에게 조각 흉상과 도자기를 먹그림으로 그려줬다. 원주민들은 신기한 듯 선물 받은 그림을 요리보고 저리 보면서 자기들끼리 키득거린다.

제법 깊은 어둠이 깔리자 모두 잠자리로 돌아간다. 그들이 배려해서 내어준 모기장 안과 밖의 경계 사이에서의 느낌은 고요 그 자체이다.

온 세상이 벌레들의 합창으로 가득한 시각이었다.

침대에도 습도가 많아 밤새 뒤척이다 보니 천정 위로 세어든 빛을 보고 새벽임을 깨닫는다. 목청 굵은 새소리가 눈을 뜨게 한다.

새벽 6시, 로보가 카누를 타고 산책을 권유해 정글 사이의 원주민들의 가난한 생활상을 세세히 견학한다. 노부부와 딸이 작은 땅 모퉁이에 유카(yuca·감자와 비슷한 담백한 맛의 뿌리 식품)를 심고, 아마존의 토종 고추들을 경작해 겨우겨우 연명한다. 마냥 웃는 얼굴들만 봐도 단순한 삶 자체로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오전은 원주민의 삶터를 6군데 순례하고 오후 어느 정글 숲에서 캠프를 설치하고 1박하기 위해 로보 부부와 함께 좁은 수로에 잡목들을 긴 칼로 베어내며 2시간 이상 북상한다. 그리고 이름 없는 지점에 육상해 캠프를 설치하는데 수많은 모기떼가 살육 축제의 환호성처럼 몰려들어 뜯어 먹기에 극성이다.

로보는 나무사이에 붙은 개미집을 긴 칼로 채취해서 불을 피운다. 다행히 그 연기에 모기들이 다소나마 잠잠해진다. 그러나 또 왕개미가 목덜미를 쥐어뜯어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김박사님은 더 이상 행군 및 1박 하는 것을 포기하자고 한다. 캠핑을 취소하고 롯지로 귀환한다.

다음날 정글 숲 안으로 들어가 천연안료와 약초로 쓰이는 나무들, 식물들을 보며 원주민들의 지혜를 엿듣고 11시쯤 롯지를 철수한다. 강가에서 야마존을 상징하는 투칸을 보고 로보의 마을에서 200여명이 모여 사는 원주민의 생활을 구경했다.

오로지 그들의 유일한 식량인 유카를 채취해 발효시켜 비축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열악한 환경에서 그저 주어진 자연에 의지해 살아갈 뿐, 그 외에는 별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는 척박한 곳이다.

원주민 촌 담벼락에 쓰인 “페루는 할 수 있다(PERU possible)”는 구호가 눈에 띄었지만 정부의 복지정책이 궁벽한 정글의 원주민에게까지 전해질리 없다. 그래도 동네 한가운데 나무로 지은 허름한 성당과 대형 축구장의 잔디만큼은 여유로운 공간으로 다가온다.

하루 한 끼 외에는 변변치 못한 식생활로 버티는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보면서 나의 불만족의 욕망을 반성해 본다. 그곳을 떠나 넘치는 강물과 수초 사이를 힘겹게 헤치며 몇 시간 만에 나우타에 내려 다시 이키토스에 도달한다.

간신히 숙소를 잡고 몸을 눕힌다. 그 순간만은 행복한 느낌이었다.

이유는 다만, 모기가 없는 안온함 때문이었다.

모기떼가 대단하다는 것, 아마존여행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다음날 아마존 강변을 따라 벨렌(Belen) 지구의 재래시장과 강변의 고상(高床)식 목조 가옥들을 둘러본다. 풍성한 식품이 널려있는 장터와 발 디딜 틈 없는 시장은 희귀한 약초와 과일, 야채들이 가득한다. 시장 한 모퉁이에서 전통악기의 선율에 맞춰 어린 무용수 3명이 전통춤을 흥겹게 추면서 행인들에게 자율적인 관람료를 받는데 우리나라 60년대 초의 향수를 느낄만한 광경이다.

페루의 원주민들의 삶은 간소하고 단순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살아가는 듯 했다. 그들의 낙관적 삶의 빛깔은 무소유에 있는 듯하다.

결국 필요한 것 이외의 욕망을 채우지 않는 삶의 형태에서 겸손한 나눔을 갖는 것이 아닌가? 사유하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이틀을 더 머물러 7일간의 아마존 여행을 마치고 떠나는 전날 동물원에 갔을 때 일이다. 동물원 입구의 나무 그늘 좌판에서 과일을 사는데 김박사님이 그늘이 되어준 그 옆에 있는 큰 망고나무를 향해 망고가 한 개도 열리지 않았다고 하니 함께 있던 아저씨가 좌판의 망고를 가리키면서 망고는 여기 있는데 왜 망고가 없는 나무에서 망고를 찾느냐며 우리가 좀 어리석다고 보는 표정이다.

주위의 5, 6명의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는다.

웃음이란 보약과 같은 것이어서 그동안의 아마존의 괴로움을 순식간에 날려버린다.

이키토스(IQUITOS)! 많은 것을 알려준 정글 도시. 잊지 못할 모기와의 전쟁! 만일 지옥에 모기가 사는 방이 있다면 절대로 현세에서 죄짓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