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쉬 돼지 고품질화·유통망 정비로 최고 명성 되찾아 사회적경제로 따뜻한 공동체를 <3>독일 슈베비슈 할 협동조합 우수한 품종개발·마케팅·관광 연계 부가가치 극대화 지역농민중심 조합원 1천450여명 연 1천400억 매출 /오성수 기자 star555@kjdaily.com

2014년 10월 13일(월) 20:38

독일 바덴-뷔텐베르크 주 슈베비슈 할 협동조합에서 운영하고 있는 돼지 농장. 마치 방목한 것처럼 한가롭다.

●독일 협동조합
국민 4명중 1명 조합원…일자리 창출 기여

독일 협동조합은 금융·농업·산업·소비자 등 4분야가 중심이다. 지난 2013년 기준 2천598개의 경제사업 협동조합에 1천255개의 시민은행(Volksbanken)과 신용협동조합, 904개의 산업별 협동조합 등 7천600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독일 국민 중 4명중 1명이 협동조합 조합원이다. 협동조합이 제공하는 일자리가 78만개에 이르며, 3만5천여개의 인턴십자리도 제공하는 등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독일 협동조합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출발한 한국의 협동조합과의 가장 큰 차이는 두 가지다.
먼저 독일의 경우 협동조합 설립과 이에 대한 감사를 민간자율기구인 독일협동조합이 맡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정부인 기획재정부가 담당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한국 협동조합 허가에 금융부문을 배제시킨 반면, 독일 협동조합의 중심축은 금융이다. 현재 독일에서는 약 1천700만명이 금융협동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다.

생산자 협동조합에서 운영하고 있는 슈퍼마켓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서남쪽으로 200㎞ 떨어진 바덴-뷔텐베르크 주 슈베비슈 할 지역의 볼페어츠 하우젠마을은 한적한 농촌이다. 이곳 주민들은 협동조합을 조직해 돼지를 사육하고 가공 및 판매하는 과정에서 관광산업과 연계한 6차산업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롤 모델이다. 이 과정에서 스토리텔링을 통해 ‘세비쉬’ 돼지의 전통과 우수성을 널리 알려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조합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슈퍼마켓은 일요일은 물론 평일에도 지역 주민들로 늘 북적거린다. 돼지고기를 먹고 각종 생활용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다. 슈베비슈 할 생산자조합은 독일식 협동연대 및 대표적인 협동조합이다. 총면적 950㎡의 시장에서 4천여종류의 지역농산물을 판매하는 호헨로혜 농민시장은 직판장 외에도 식당, 정원, 빵가게, 지역여행사, 태양광발전소 등을 운영한다.

또한 지역농민 생산자조합은 관광업체와 농가 민박과 협력해 먹을거리, 볼거리, 체험상품 등 지역관광산업을 촉진하고 있다. 1986년 설립 당시 수명으로 출발한 조합은 지금은 1천450여명에 연간 1억2천만유로(약 1천4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들은 우수한 품종개발 및 마케팅에 주력했다. 협동조합의 매개는 세비쉬 돼지였다.

세비쉬 돼지는 1800년대 빌렐름 왕이 가지고 온 종자로 중국 암컷종과 교배해 탄생한 최고의 품종으로 꼽힌다. 세비쉬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유일한 품종인데다 주민들은 물론 독일국민 대부분이 인정한 돼지였다.

그러나 축산업의 경쟁으로 항생제를 투여하고 속성사육, 대량생산에 적합한 다른 품종과의 교배 등이 만연했다. 이에 따라 돼지의 품질은 떨어지고 가격도 제대로 받지 못해 그동안 쌓아온 지역 브랜드의 가치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무분별한 품종개량으로 토종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데다 오히려 도태되고 품질이 떨어졌다는 여론이 높았다. 위기를 느낀 주민들은 지난 1986년 루돌프씨를 중심으로 농민 8명이 주축이 돼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돼지고기를 더 좋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생산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이들은 브랜드를 보증하는 품질마크인 ‘세비쉬 인증마크’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친환경, 유기농으로 재배해 소비자들의 신뢰확보에 주력했다.

먼저 밀식사육을 금지하고 최대한 쾌적한 환경에서 사육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 지금도 넓은 평야에서 돼지들이 한가롭게 쉬고 먹이를 먹고 있는 장면은 마치 방목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자란 돼지는 첨단설비가 갖춰진 시설에서 도축된 후 상품화된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돼지고기보다 월등한 품질을 보증하고 있다. 이를 관리하기 위한 컨설팅 및 체계적인 관리운영방안도 수립해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판매망도 정비했다. 당시 독일에서는 일반적으로 돼지고기가 슈퍼마켓 등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기 까지 7단계의 유통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슈베비슈 할 생산자조합은 생산에서 도축, 소시지 가공까지 맡아 복잡한 유통과정을 획기적으로 줄여 소비자와 직거래 했다.

지금은 독일 전역 350곳의 판매처를 두고 있다. 또 독일 곳곳에 판매장(Regional market hohenlohe) 7곳을 직접 운영한다. 이밖에 세비쉬 돼지는 대기업인 벤츠 본사 식당은 물론, 아우디, 포르쉐, 루프트한자 기내식 등에 공급되며 오성급 이상 주방장이 근무하는 최고급 레스토랑에 주로 공급된다. 이 같은 판매시설의 개선으로 유통거품이 획기적으로 줄면서 판매가격의 30%가 농민에게 돌아갔다. 위기를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기회로 탈바꿈한 것이다.

돼지고기에 대한 명성이 높아지면서 전국에서 구매가 잇따르자 조합은 전국적인 판매망과 식당을 신축해 복합단지를 구축했다.

협동조합이 커지면서 조합원들은 아예 유통과정을 대폭 줄여 농가 수익을 늘리기로 했다. 협동조합은 1㎡당 30-40유로를 지불하고 4㏊의 땅을 매입한 뒤 공장 증축과 리모델링에 1천400만유로(정부보조금 20-25%)를 들여 시설을 대형화했다. 사육돼지 관리에서 도축, 가공, 배달에 이르기까지 한 지역에 집약시켰다. 일종의 직거래 시스템을 구축한 것. 컨설팅과 돼지품질 유지, 도축장, 쇠고기 및 양고기 생산, 가공, 허브 수입 등 토종 돼지와 축산 관련업무도 협동조합 마케팅본부를 중심으로 한 곳에 일원화시켰다.

유통과정을 단순화하고 관련업무의 체계성과 효율성을 높이자 농가 수익이 증가했다. 슈베비슈 할 생산자 협동조합은 매출액 중 운영비 50만 유로를 제하고는 모든 수익을 조합원들에게 배분한다. 농가 수익이 늘면서 협동조합 참여 농민들도 점점 늘어 지난해 말 현재 조합원이 1천400명에 달한다. 조합원을 포함해 슈베비슈 할 지역 전체 농민은 3만5천명에 이른다.

이처럼 협동조합은 토종 돼지 복원과 농민 수익 증가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이 이 협동조합으로 몰린다. 마케팅본부와 공장, 슈퍼마켓, 레스토랑 등에 고용된 인원은 400명가량이다.

조합원 크리스티안 뷜러(34)씨는 “조합에 몸담으며 일하고 있는 것이 행복하다. 세비쉬 고기가 다른 돼지고기보다 30-50% 비싸지만 그만큼 품질이 뛰어나 한번 세비쉬 고기를 찾은 소비자는 계속 찾고 있다”며 “농민들이 연대해 고품질을 유지하고 소득창출에 스스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독일 바덴-뷔텐베르크=오성수 기자 star555@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