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정치 9단이 된 시민시장 노병하 정치부 차장 icepoem@kjdaily.com

2014년 10월 14일(화) 20:09

“전향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되구요. 시장님, 시의회와 협의해서 청문회를….”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아듣고 있습니다.”

14일 광주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임택 광주시의원의 얼굴 표정이 묘했다. 그것은 답답한데 화는 못내겠고 그렇다고 물러날 수는 없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임 의원에게 그런 표정을 짓게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윤장현 광주시장이었다.

두 사람은 10분 정도 계속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었다.

이날 임 의원은 광주시 산하 공기업과 기관들의 수장이 대부분 윤장현 시장의 측근으로 채워진 것에 대해 지적하면서 앞으로 곧 임기가 만료될 기관들의 수장 선임에 대해 시의회 청문회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윤 시장은 ‘알고 있다’, ‘검토하겠다’ 등으로 일관했다.

두 사람의 문답 핵심어는 ‘인사의 검증’이다.

윤 시장이 취임하면서부터 불거진 인사논란은 광주를 계속 떠들썩하게 했다.

지난달 18일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에 정동채 전 문광부 장관을 임명한 것을 필두로 22일엔 광주도시공사 사장에 조용준 조선대 명예교수, 30일엔 광주신용보증재단 이사장에 정석주씨가 각각 임명됐다. 또 지난 2일엔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에 서영진 전 전남도 복지재단 대표이사, 광주도시철도공사 사장에 정선수 전 광주시 공무원교육원장이 윤 시장의 ‘눈 도장’을 받았다. 이에 앞서 취임초 비서관에 인척인 김용환씨를 임명한 것은 이후 측근·정실인사의 시작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아울러 이들 5명의 시 산하기관 수장의 공통점은 임명 전부터 모두 사전 내정설이 나돌았고 윤 시장과 학연 등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는 점이다.

정동채 대표와 정선수 사장은 윤 시장의 고교(광주 살레시오고) 후배, 서영진 대표와 조용준 교수는 30년 지기 ‘절친’이자 같은 대학(조선대) 출신이다. 지방선거 당시 윤 시장지지 단체을 이끌었던 정석주 이사장은 윤 시장의 서중 동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인사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윤 시장은 “시민단체 활동을 오래해서 인맥이 넓기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일축했다.

이쯤에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윤 시장이 광주시장 후보로 공천되기 전 안철수 국회의원은 “그는 광주시민을 위할 줄 아는 광주의 ‘박원순’”이라고 추천했다. 박원순 시장 밑에 있어보지 않아서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선거운동 당시 했던 “정의는 크게 말할 게 아니다. 기본부터 작은 것부터 지키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말은 기억한다.

‘박원순 서울 시민시장’의 정의는 작은 것부터 지키고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장현 광주 시민시장’의 정의는 무엇일까?

시민단체도 언론도 지역민들의 반응도 ‘측근인사, 정실인사’라고 말하는데 본인만이 ‘오해’라고 말하는 것인가.

이날 한 시의원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산하기관장 임명)청문회를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을 때 윤 시장의 표정은 정말 담담했고 목소리 톤은 낮았다.

그리고 대답은 ‘언제라도 바뀔수 있다’는 의미의 “검토해보겠습니다”였다.

‘광주 시민운동의 역사’이자 ‘우리들의 시민시장’이 어느새 정치적 수사(修辭)를 벽처럼 차곡차곡 쌓을 줄 아는 베테랑 정치 9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불과 100일만에 말이다. /icepoem@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