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아픈 역사, 잉카 태양신의 후예들 희망은 어디에… 박종석 화백의 화필여로 <16> 남미여행-페루 <제국주의 흔적과 슬픈 역사의 현장> kjdaily.com

2014년 10월 15일(수) 19:16

박종석 作 ‘정취’

페루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서 필자.

7일간의 아마존 여정은 기억창고에 쌓아두고 시간 절약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비행기를 타고 페루의 수도, 리마로 돌아온다. 공항을 나서니 한여름의 공기가 후끈후끈하다. 신시가지 미라플로레스 해안지구의 판닝에 여장을 풀고 구시가지의 아르마스 광장의 대성당 및 성프란시스코 성당과 산토도밍고 성당을 구경했다. 문득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되짚어 본다.

‘원주민의 조각품’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68명의 스페인군으로 잉카 제국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1532년 11월 16일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와 페루 고지대 도시인 카하마르카에서 최초로 마주쳤다. 이어 피사로는 아타우알파 황제를 사로잡아 8개월을 인질로 잡고 가로 6.7m, 세로 5.2m에 높이 2.4m가 넘는 방을 가득 채울 만큼의 황금을 몸값으로 받고도 처형시켰다.

이교도에게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기 위한 치졸한 정복을 하느님의 영광이라 찬양했다. 피사로의 악행을 개척이라 할 수 있는가? 의문이다. 문명의 생성과 쇠멸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진실이 수없이 난도질당한 선한 자가 겪는 배반과 비극 역사가 아닌가 싶다. 문득 수탈의 흔적인 거대한 성당 내부의 꽃다발과 십자가상을 보면서….

‘원주민의 숨결’

발길을 돌려 해안의 야경과 함께 들려오는 태평양의 드넓은 바람과 파도 소리를 듣는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았음을 느껴본다. 그리고 1월 14일 피스코(Pisco)에 도착해 며칠간 머물며 화려했던 잉카문명의 흔적들을 탐색한다.

다음의 여정인 와카치나의 사막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는 환상적 분위기로 수영하는 관광객과 잔디에서의 휴식 그리고 모래 언덕에서 자동차와 하향 스키로 사막을 타고 내리는 광경이 이채롭다. 그러나 호숫가의 송사리 떼를 관찰하면서 호수가 오염되어 가는 현실이 조금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마추피추를 가면서’

황량한 대지위에 회색구름 사이의 석양 햇살이 페루다운 공간처럼 척박한 조건에서 문명을 일군 그들의 끈기를 피부로 느껴본다.

그리고 다음날 파라카스 반도의 엘차꼬에서 배를 타고 바제스타스 섬으로 가면서 칸델라브라 촛대 그림을 올려다보며 감상한다.

나스까의 지상화와 같은 맥락이라는 설도 있지만 길이 128m, 넓이 76m 60㎝의 골이 패인 거대한 촛대 작품은 옛 사람들의 자연과의 조화에 대한 예술적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열차를 타고’

뱃길로 도착한 작은 갈라파고스인 바제스타스 섬은 수많은 새떼와 물개들의 서식지로 그들만의 천국이다. 기암괴석과 어울리는 참으로 보기 좋은 그림들이다. 황량한 사막! 1년 내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모래언덕을 넘어 해안절벽 아래로 보이는 대성당을 뜻하는 까떼드랄(cathedral)의 거대 괴석과 바위섬들은 20만 년 전에 폭발로 형성된 자연 조형물들이다.

해안선을 따라 소담한 어촌에 이른다. 점심식사를 위한 해안풍경 투어는 한쪽의 작은 해변에서 유럽 관광객들이 반라로 수영을 하고 원주민 어부들은 잡아온 고기들을 차에 싣는 작업에 한창이다.

식당안의 풍경은 관광객들의 고급식탁 앞에 검은 안경을 낀 60대 원주민 언더그라운드 가수가 허름한 기타를 안고 차분한 노래를 열심히 부르며 적선을 기대하지만 신통치 않은 반응이다.

허전한 분위기를 갱신하기 위함인지 자기 주머니 속에서 몇 푼을 꺼내 상자 통에 넣고 땀을 닦으며 다시 노래를 부른다.

‘역사에 내리다’

마침내 배가 불룩 나온 여행자가 소프라노 흉내를 내며 목소리를 크게 하라는 농담을 던지며 몇 푼 적선한다. 작은 목적 달성에도 그 가수는 무표정이다.

그 모습을 보는 나 자신도 강자의 거만함속에 함께 파묻힌 기분이었다. 왠지 세심한 관망이 씁쓸한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잉카문명의 화려했던 과거와 곤궁한 현실이 같을 수 없음을 직시한 장면이었다.

인류역사의 대전환은 천사표 상표를 붙인 악마의 난동과 침탈에 의해서 재편되고 순수영혼을 지닌 원주민의 종족은 사라질 위험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