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의 시대 이승오 |
| 2014년 10월 15일(수) 1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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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교육전문직원 공채 최종 면접 시험장에서 면접관이 내게 던진 문제는 지금도 가끔씩 생각나곤 한다. ‘본인이 추진하는 사업과 관련하여 기자가 취재를 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정확한 사실보도를 하도록 관련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면서 설명하겠다는 나의 답변을 들은 면접관은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보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친절하게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언론 보도 때문에 윗분들에게 불려가서 몇 차례에 혼쭐이 나고서야, 새내기 장학사는 그 때의 친절한 면접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 기자들의 취재 전화를 받으면, 무언가를 들킨 듯한 괜한 의기소침함이 한동안 계속되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우리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정보 사회에 살면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켜고, 인터넷 포털과 SNS에 올라오는 새로운 소식을 찾는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엄청난 양의 정보들을 제대로 잘 받아들이고 인지하여 진정한 뉴스의 소비자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정보량이 거대해지면서, 받아쓰기 저널리즘(stenoraphic journalism)에 빠져서 논점에 대한 비판이나 분석 없이, 취재원의 말을 받아쓰기만하는 뉴스가 넘쳐나서 이를 받아들이는 대중들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스탠퍼드 대학의 로버트 프록토(Robert Proctor) 교수는 이렇게 값싼 뉴스는 넘쳐나고, 진짜 정보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 특히 논쟁적인 주제에서 뭔가 뉴스는 많은 것 같지만 정작 정보가 없는 현대 미디어의 현 상황을 언론사회학적 용어로 ‘아그노톨로지(Agnotology)’라고 정의를 내린 바 있다. 현재의 대중들은 엄청난 정보량을 습득하여 똑똑할 것 같지만 실은 그런 정보량에 도리어 무뎌지고 공고화 되면서 결국 무지함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MB정부에서 추진한 4대강 사업에 대한 무수한 뉴스는 많았지만, 정작 대중들은 그 핵심 쟁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아직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세월호의 참사에 대한 수 많은 보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원인에 대하여 명확히 판단할 정보를 대중들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프록토 교수는, 대중이 이렇게 ‘사회문화적으로 공고화된 무지’의 함정에 지속적으로 빠지는 이유는 바로, 특정 이익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핵심 쟁점과 내용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특정 정치 집단의 이익이 얽혀 있지 않은 사건 사고에 대해서는 핵심적인 내용을 듣게 되지만, 4대강이나, 세월호처럼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는 온갖 소음(noise)만 듣게 된다는 설명이다. 즉, 특정 이익집단이 바로 이 ‘소음’을 통해 교란하고 ‘이익의 물타기’로 논점을 흐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음의 대부분이 우리가 지금 보고, 듣는 뉴스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아그노톨로지’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최신작 ‘뉴스의 시대(The News : A User’s Manual)’에서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일상의 철학자’라 불리는 그는 이 책에서, 이상적인 뉴스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뉴스가 충족시켜야 하는 심오한 욕구는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뉴스는 가장 긍정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정치 뉴스, 해외 뉴스, 경제 뉴스, 셀러브리티 뉴스, 재난 뉴스, 소비자 정보 뉴스에 대해 미디어의 역할과 의무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6가지 분야별로 뉴스와 미디어를 접하는 독자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시각에 대한 안내와 독자인 일반대중들에 앞에서 미디어가 가져야 할 올바른 취재 태도, 보도 태도 그리고 사실보도를 넘어 독자들이 편협한 시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정론을 펼쳐야 할 의무가 있다는 논지를 피력한다.
타자와의 진정한 소통을 위한 내면으로부터의 뉴스를 결론으로 제시한 알랭 드 보통은, 수 없이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뉴스는 혹시 아무도 모르게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뉴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타인과 접촉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만남이라고는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세계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오히려 무관심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묻고 있다.
세계와 ‘나’, 타자와 ‘나’의 만남이 진정한 것이 되려면 간접적인 만남보다는 생생한 인간의 이야기로 채워나갈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뉴스가 그러한 생동감 넘치는 만남을 주선하는 매개체가 될 때, 우리는 나의 불안과 근심만으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기쁨과 고통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방안들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직 공채 시험장에서 면접관이 해주었던 이상했던(?) 보충 설명으로 인한 충격이후 보도자료 작성에 자신감을 갖기까지, 취재 기자들과 나누었던 진지한 대화가 매우 소중했음을 상기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밑줄 그어 놓은 부분을 여기에 옮긴다.
‘뉴스는 사회의 악행을 폭로하고 그 고통을 직시함으로써 사회를 돕는 한편, 선함과 용서와 분별력을 충분히 갖춘, 구성원들이 기여하기를 원하는 가상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임무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