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 스스로를 불태우라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10월 15일(수) 19:31

지난해 6월 ‘부산비엔날레 발전방향’ 워크숍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그 워크숍에서 부산 사람들은 매우 절박해보였다. 잘해보자는 청사진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생존 프로젝트, 생존 전략을 짜야한다며 소리를 높였다. 문제를 다 쏟아내 놓고 ‘살 길’이 뭐냐고 묻고 또 묻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부산 문화계가 총감독선임문제, 예산문제, 홍보문제 등을 거론하고 ‘자기 정체성의 안정화와 대외 경쟁력 확보라는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과제’에 대해 격론을 벌이고 나서 내린 결론은 ‘사람’이었다. 좁게는 전시를 포함한 문화예술 기획 전체를 이끄는 실질적 축이자, 비엔날레라는 행사를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인적 조직화 과정을 중요하게 보는 것 같았다. 사회정치적, 미시권력 구조가 지배하는 현실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부분에서도 부산비엔날레의 정체성 옹립의 근간은 결국 사람의 문제이자 인적 결합의 문제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필자는 광주비엔날레보다 훨씬 절박하게 ‘생존’을 고민하고 ‘사람’에서 해법을 찾으려하는걸 보고 ‘부산문화계’의 가능성을 보았다. 민주인권도시 광주에서 탄생한 광주비엔날레는 부산비엔날레보다 훨씬 큰 형님이면서도 아직 ‘사람’ ‘광주시민’을 중심에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비엔날레재단는 숫자상으로 보면 매년 퇴보하고 있다. 1회(1995년)부터 9회(2012년) 회차별 유료 관람객 평균은 목표치의 56.4%에 불과하다. 9회 유료 관람 목표는 30만명이었으나 실적은 16만9000명(6.3%)에 그쳤고, 8회(2010년) 유료 관람객은 14만명으로 애초 목표(35만명)의 40.0%에 머물렀다. 평균수입은 48억원으로 매회 행사 운영에 따른 수익 총액이 감소하고 있다. 특히 1회 때 총수입(90억8000만원)에 견줘 9회의 수입(14억8800만원)은 83.6%가 감소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진즉 비상이 걸렸어야 하는데 광주비엔날레측은 ‘세월오월’ 사건이 터져 광주시민이 개혁 목소리를 높이기 전까지 안주했다. 지난 20년 동안 국내 유수의 비엔날레가 창설되고 상하이 비엔날레, 요코하마트리엔날레, 싱가포르비엔날레 등 후발 아시아권 비엔날레의 강세가 광주비엔날레 경쟁력을 위협해도 조직 안이나 조직 밖이나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9회 광주비엔날레를 감상한 후 문순태 소설가는 ‘왜 인기가 없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첫째, 광주정신이라는 지역의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둘째, 지나치게 철학을 강조해 설명이 없이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고, 셋째, 동양적 사유 담론의 부족한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광주시민들로부터 절대적인 호응을 받지 못 한데다가, 미술 전문가를 위한 전시가 되고 보니 결국 학생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체험중심 비엔날레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 아닐까.”

이제 광주비엔날레도 수술을 한다고 나섰다. 수술 방향은 내부 개혁과 정체성 확립이라고 한다. 미안하게도 광주비엔날레는 7년 전인 2007년에도 똑같은 내용을 수술하겠다고 난리를 편 바 있다. 2007년 당시, 신정아씨 파문으로 재단 이사들이 전원 사퇴한 가운데 20여 개 지역 문화단체들로 구성된 ‘광주비엔날레 개혁을 위한 문화예술인 연대’는 성명을 내고 ‘근본 개혁방안을 마련하자’고 촉구한 후 ‘광주비엔날레 개혁방안 대토론회’를 열었다. 총감독 선정방법 개선, 재단 연구기획 기능 강화방안, 편파적인 재단 조직과 운영 개선, 베니스비엔날레처럼 전문직 직원으로 사무국을 강화하자는 안, 문화 CEO 영입을 통한 집행부 체제 개편 안 등이 폭넓게 제시됐다.

그러나 7년 동안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곧 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하므로 광주비엔날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각 언론이 목소리를 높여도 ‘문화 마피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필자는 현 체제로 광주비엔날레측이 주도하는 개혁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지난 20년 동안 직장이 되어버린 광주비엔날레측 조직원이 자기 밥그릇을 내놓고 내부 개혁을 진심으로 해낼 것이란 기대, 애초 하기 어렵다. 그리고 7년 전에 이미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바탕으로 탄생한 광주비엔날레가 세계화만 추구한 나머지 지역 미술인을 외면하고 결국 광주만의 정체성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고도 노력하는 척 흉내만 냈는데 20년 들인 습관을 바꿔 대혁신을 할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윤장현 시장은 광주비엔날레 대표에게 개혁안을 만들어오라고 지시하기 이전에 먼저 경영진단 및 정책 실사를 해야 한다. 제대로 개혁하려면, 한 회당 100억 원의 예산으로 10회 동안 무려 1000억 원이 투입된 대형프로젝트임에도 한 번 감사를 받지 않고, 불투명하게 운영된 점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제대로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런 다음, 적폐가 드러나면 관계자 문책과 사퇴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의미’만을 강조하는 문화행정이라 해도 시민 혈세를 임의대로 쓰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7년 전처럼 이번 개혁도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정말 개혁 의지가 있다면 직원이 모두 사표를 낸 후 그동안 했던 일에 대한 평가를 냉정하게 조사받을 준비가 되어야 한다.

이미 용역을 통해 나온 문제점, 지역미술계와의 밀착력 부족, 자체마케팅 시스템 취약, 해마다 지적받아왔던 홍보부족, 대중과의 소통 부재나 해결하려는 ‘개혁’은 ‘개혁 하는 척’에 불과하다.

광주시민은 묻는다. 과연 누구를 위한 축제였는가. 누구를 길러냈는가. 광주시민은 무엇을 얻었는가. 전문가 위주의 미술잔치에 시민은 어디에 있었는가. 시민의 일상과 도시성, 역사성, 대중과의 교감과 소통을 이끌어 내지 못한 것은 누구 때문인가.

성실하게 답해주기 바란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