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눈길들, 전갈자리 별 이덕수 |
| 2014년 10월 23일(목)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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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 가을은 시린 등덜미를 주체 못 하고 저 만큼 가버렸다. 엊그제 만에도 상사화축제라며 꽃무릇들 한참 피워주더니만 그 가여운 꽃님께서는 꽃과 잎으로는 도저히 이승에서 만날 수도 없는 뿌리여행을 떠난 지 오래됐다.
가을이 오면 누군가는 실컷 울어야 새봄에 웃을 수 있다던데 우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흠뻑 이슬에 젖어 우는 구절초이며 소쩍새가 울어 줘야 핀다는 국화꽃이며 울지 못해 흔들리는 억새며, 목이 길어서 울 수밖에 없는 코스모스는 어쩐가.
가을이라는 말도 순우리말의 어원의 ‘갈’에서 파생 되었으며 또한 ‘갈’이란 서쪽을 의미하며 오늘날 ‘가다’라는 표현이라고 한다. 그래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기 때문에 ‘가다’로 파생되었다고 한다. 즉 가을은 농작물을 심고 가꾸던 봄과 여름이 지나 갔음을 의미하여 ‘갈’이→ ‘가을’이 된 것이다.
며칠 전에 친척집의 한우농장을 찾았다. 많은 소들이 울길 래, 조카에게 물었더니 벼 수확 뒤 끝에 생 볏짚을 쌓아 두었더니만 그 사료를 주라는 뜻으로 울고 있단다. 역시 가을 울음은 각기 다른 뜻도 있겠지만 유독, 힘든 눈길은 아침 출근 때마다 시설들에 입소하여 생활하시는 어른들에 눈길이다. 그 중에는 경치매로 누워있으며 애절하게 집으로 보내주라는 간절한 눈길도 있다. 보살필 이,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이건만 그중에는 후손조차 없거나 연락도 단절 된 어른들이 더한 슬픈 눈길이다. 어쩌다가 그 분들이 세상을 떠났다 하면 우리 사회복지사들이 호상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고약한 후손들은 보호 부주의로 돌아 가셨다며 장례비나 그동안 밀린 자기 부담금을 못 내겠다며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억지를 부릴 때는 참으로 힘든 눈길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번 네 번째 시집 ‘달의 새끼’에서 ‘전갈자리 별’로 부제 ‘난원 요양원’을 썼다.
‘차갑고 무거운 시간 / 장작은 쩍쩍 마른 소리를 냈다 / 자기는 허공이어서 불붙는 것이 두렵다고 / 마지막 잎 새가 보이지 않는다고 / 진저리 쳤다 / 창밖 보름달을 만지고 싶은 / 꽹한 거문고는 달의 기척을 더듬는 / 달맞이꽃으로 가늘게 흔들렸다 / 중략 / 푸른 날의 꽃피는 날들이 그대에게 있었는지 / 내게도 한때 있었던 / 찢어진 생의 주머니를 더듬으며 / 돌아 섰지만 하마, 눈길은 / 글썽이는 전갈자리 별 이여서 / 가는 눈길을 나는 두 손으로/ 힘껏 밀어 줬을 뿐’, 이라고 썼다.
이래저래 나에게 가을의 눈길은 지는 계절이자 울고 싶은 슬픈 계절이 아닐 수 없다. 노인들에게 가을의 눈길은 지겹고 무섭기 만한 겨울의 서곡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토종 매미들과 가을 초입에서 그토록 어울려 울어 제끼던 풀무치들도 벌써 울음을 끝내고 그 빈자리에 돌아가 이제 어둠을 밝히려 길 잃은 별들이 되지 않았나 싶다.
릴케는 ‘가을’을 노래하기를 ‘잎이 진다. 멀리에 선 듯 잎이 진다. / 하늘의 먼 정원이 시들어 가는 듯 / 거부하는 몸짓으로 잎이 진다./ 그리고 깊은 밤중에 무거운 지구가 고독에 잠긴다. / 다른 모든 별에게 벗어나,/ 우리들 모두가 떨어진다. 이 손이 떨어진다./ 보라, 다른 것들을, 모두가 떨어진다. /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이 있어, 이들 낙하를 / 한없이 너그러이 그의 양 손에다 받아들인다. 맞다 모두가 떨어진다 해도 어느 누군가는 받아주는 사랑하는 그리운 이가 있을 테고 귀가를 하면 반갑게 맞아주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등불이 있기 때문에 이 가을을 마냥 슬퍼하고 울어야 만하는 건 아닐 게다.
이와 같이 새롭다는 동쪽의 뜻에서 서쪽으로 해가 지듯 ‘가다’의 가을은 불가에서 말하는 자연의 모든 것들은 결코 한 시기의 존재가 아니고 업의 힘에 무시무종으로 생사를 되풀이하는 존재여서 그 중의 인간은 업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삶을 누리게 된다는 윤회설이 나왔나 보다.
오늘도 법성 요양원에서 어른 한 분이 이 가을녘의 별이 되어 떠났다. 하마 전갈자리에 머물러 계실 런지. 부디 다음 생에는 아픔도 없고 고통도 없는 눈길에 태어나시길 기원했다. 당신도 이 가을의 눈길에서 울어보라. 그러면 가을 발자국 소리를 분명 들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