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도 날지 못하는 도도새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10월 29일(수) 20:42

16-17세기에 ‘도도새’라는 새가 살고 있었다. 덩치가 칠면조만큼 큰 새다. 이 새는 인도양 모리셔스라는 섬나라에 살고 있었다. 이 새도 처음에는 보통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었다. 그런데 모리셔스 섬에는 이 새의 천적이 없었고, 또 다른 새와 달리 육식이 아닌 나무열매를 주식으로 먹다보니 날개 쓸 일이 별로 없었다. 힘들여 하늘을 날지 않아도 먹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았으므로 도도새는 점차 날개가 퇴화되었다. 무엇이든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도도새는 날 수 없어 나무위에 둥지를 틀 수 없었다. 따라서 땅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으며, 나무에서 떨어지는 과일을 먹고 살았다. 그런데 위기가 찾아왔다. 1505년 포르투갈 사람들이 최초로 섬에 들어오면서 이 새의 운명도 바뀌게 되었다. 인간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고기(단백질)가 절실히 필요했고, 이 섬에 지천으로 널려 있던 도도새가 주 표적이 되었다. 무게 약 25㎏에 이르는 이 신선한 고깃덩어리들은 날지도 못하고 행동도 굼떠 인간들에게 잡혀먹기 딱 알맞았다. 도도새는 천혜 보호장치인 날개를 포기한 것을 뒤늦게 후회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인간들이 몰고 온 배를 타고 쥐들도 섬으로 들어온 것이다. 도도새 알은 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몇 년이 흐른 후 이번에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 섬을 죄수들의 유배지로 사용했다. 죄수들과 함께 돼지, 원숭이도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들 돼지, 원숭이, 쥐가 도도새의 알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다 큰 새는 인간이 잡아먹고, 땅에 널려 있던 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쥐, 원숭이들의 별미거리가 된 것이다. 결국, 인간이 모리셔스 섬에 발을 들여 놓은 지 약 100년 만에 그 많던 도도새는 희귀종이 되었고, 1681년에 마지막 새가 죽어 멸종되고 말았다.

필자는 정부 공공기관이나 광주·전남 지자체 산하기관의 경영 방법·상태를 보면서 ‘도도새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경쟁자가 없다는 이유로 정부나 지자체의 보호 아래 혈세라는 먹잇감만을 탐닉하고 있는 모습이 도도새와 같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가장 많이 지적된 부분이 공공기관의 비정상적인 경영 행태였다. 부실·비리 백화점이었다. 일부 공기업은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필요 이상의 돈을 들여 사택을 구입했으며 파면 직원까지 퇴직금을 챙겨주고 경력·학위 증명 없이 ‘묻지마 채용’을 일삼았다. 모럴해저드가 일반의 상상을 웃돈다. 가스공사는 요금을 산정하면서 내부적으로 쓴 장학·기부금도 비용에 얹어 소비자에게 떠넘겼다. 국민이 내지 않아도 될 4200억원을 부담한 셈이다. 예산이 남자 직원들에게 상품권이나 가전제품을 나눠준 곳도 있고 협력업체 돈을 받아 단체로 해외·골프여행을 다녀온 곳도 있다. 공기업의 공(公)자가 무색하다.

최근 광주시가 산하 기관 감사를 벌인 결과 체육단체와 김대중컨벤션센터, 5·18기념재단 등 시 출자·출연기관이 부당한 업무추진 등으로 무더기 적발됐다. 광주시는 시 체육회와 생활체육회, 장애인체육회 등 체육 3단체에 대한 감사에서 보조금 지급 부적정 등 24건의 부당한 업무추진사례를 적발해 11건은 시정, 9건은 주의, 4건은 개선하도록 통보했다. 전남도 역시 이낙연 전남지사가 전남개발공사와 19개 출연기관의 방만한 운영을 지적하고 나서 대대적인 개편을 얘기한 바 있다. 전남도내 유일한 지방공기업인 전남개발공사는 지난 해 당기순이익이 68억원이었으나 운영사업은 대부분 적자를 기록했다. 현재 부채가 6,846억원, 부채비율이 135.9%에 달하고 있다. 전남테크노파크 등 19개 출자·출연기관 기관 중 11개 기관이 운영적자다. 유사 또는 중복되는 기관의 통폐합을 추진하지 않으면 부실은 눈덩이처럼 커질 상황이다.

문제는, 국민 혈세를 마음대로 펑펑 쓰는 공공기관이나 지자체 산하기관이 부실·방만 경영을 했을 경우 그 책임을 기관장이 지는 것 아니라 그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과 지역민이 진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경영기관이라면 부실경영이 드러났을 때, 책임자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거나 직원을 줄여 구조조정을 하거나 다른 기관과의 통폐합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꾀해야 하는 게 상식이다. 단지 ‘공공성’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공적 자금을 막 쓰고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파렴치하다. 그러면서 세금이 부족하다고 담뱃값을 올린다, 가스·전기료를 올린다고 한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혈세가 세는 곳은 방치하고 밑빠진 독에 부을 물만 길어날린다면, 그 물 대는 지역민 등골만 휜다.

공공기관이나 지자체 산하기관은 ‘철밥통’ ‘신의 직장’에 안주해 ‘도도새’가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공기업 부채는 이미 500조원을 넘어 국가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광주·전남 산하기관의 부채도 지역경제의 발목을 잡을 만큼 엄청나다. 사정이 이런데도 허리띠를 졸라매기는커녕 혈세를 물 쓰듯 하는 행태는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광주시장·전남지사는 산하기관의 방만 경영을 더 이상 방치 말라.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며 다음 지자체장에게 넘길 생각을 하면, 그 피해는 지역민에게 돌아온다. 개혁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요건이 보은성 낙하산 인사로 산하기관을 흔들지 않는 것이다. 잘못된 인사 관행을 바로잡고 경영실적에 따라 기관장의 책임을 물어야 산하기관의 개혁이 제대로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묵은 적폐는 영원히 해소될 수 없다. 지자체장들은 스스로 ‘도도새’의 우두머리가 되지 않길 바란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