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에 살게 해서 미안하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11월 05일(수) 19:35

앞산에는 노란 단풍이, 뒷산에는 빨강 단풍이 현란하다. 올해를 두 달 남겨놓고 무등산 입구 조용한 찻집에서 커피 향 벗 삼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봤다. 그러나 침묵도 잠시, 40대 여성 서넛이 들어와 뒷자리를 잡고 앉더니 ‘말 안 듣는 자식 때문에 속상한 이야기’를 한껏 풀어놓았다. 부모는 자식 키우느라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데, 자식은 하나같이 부모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는 성토였다.
그건~ 부모 생각이고~. 부모의 한없는 은총을 받고 있다는 그 자식 생각은 어떨까? 최근 정부가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의 생각을 들여다본 결과, OECD국가 중 최하위였다. 보건복지부가 5년에 한번 실시하는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를 내놓았는데, 우리나라 아동과 청소년 삶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60점에 불과했다. 아동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네덜란드는 94점이다. 30개국 중 29위인 루마니아도 70점대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세계 어느 나라 부모 보다 한국 부모가 가장 자식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많아 자신의 삶까지 희생하며 자식 위해 젊은 날을 모두 바치는 형국인데도 왜 그 자식은 이렇게 불행할까. 필자는 부모나 어른이 먼저 행복하지 않은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아이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선생님, 부모, 친구들이 행복하지 않는데 어떻게 행복한 마음을 낼 수 있겠는가.
그런데 더 울화 치미는 것은 우리 아이들 불행지수에도 지역별 편차가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불행한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좀 놀랍다.
국제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가 16개 시·도에 살고 있는 아이들 행복도를 비교 분석한 것으로 대전시가 종합점수 111.59점으로 1위다. 대구 2위(110.18), 부산 3위(105.46), 서울 4위(104.54)를 기록했으며 전남은 14위(93.13)다. 이 같은 지역별 격차는 재정이 풍부한 대도시일수록 아동에 대한 복지 지출을 할 여력이 크고, 사회적 투자가 아동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아동 삶의 질이 하위권인 광주나 전남은 재정자립도가 전국 평균 52.3%에 못 미치는 반면, 대전(58.3%), 대구(52.8%), 부산(57.4%), 서울(90.2%)은 재정자립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결국 안전한 지역사회와 지자체의 재정자립도에 따른 복지예산 비중은 아동의 행복한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 된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따라서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광주·전남 아동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불행한 환경에 놓여있는 것은 기정사실로 확인됐다.
정치는 왜 하는가. 국민을, 지역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것이 1차 목표다. 선거 때마다 ‘지역민을 잘살게 하겠다. 행복하게 하겠다’는 구호를 외치며 입성한 광주·전남 지자체장들은 겉이 화려한 축제보다 지역에 사는 아이들의 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정말 깊이 생각하고 고려해야 할 부분이 바로 ‘우리 지역 아이들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불행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 인식이다.
하루빨리 아동 삶의 질 지표를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산출해 아동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어른들이 만든 지역 간 경제격차가 잘사는 지역 아이들 보다 내 지역 아이를 더 불행하게 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치적인 시각에서 해결해야 한다. 광주·전남 지자체장은 ‘불행 속의 불행, 꼴찌 중의 꼴찌’ 환경에 있는 우리 아이들을 잘 돌봐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나쁜 정치가 나쁜 경제를 만들고, 나쁜 경제가 나쁜 사회를 낳는 것은 분명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덴마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키워드 6개는 자유, 안정, 평등, 신뢰, 이웃, 환경이라고 한다. 이 가치들이 학교와 일터, 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불평등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 존중과 신뢰가 있는 사회 때문에 그 나라 아이들과 국민은 행복하다.
가을 하늘 공활한 이 좋은 계절, 우리를, 우리 아이들을 불행하게 하는 환경을 생각하면 답답함이 구름처럼 밀려온다. 광주시장 전남지사는 왜 우리 지역 아이들이 대전시에 사는 아이들보다 훨씬 불행한가에 대한 심각한 성찰을 해야 한다. 각 가정에서 모든 부모가 잘사는 집 아이보다 내 아이의 교육의 질이 나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과 고통을 감수하는 것처럼 지자체장들도 대전 대구 부산 서울 아이들보다 나쁜 환경에 놓여 불행하다고 외치는 우리 아이들의 환경을 개선하려고 해야 한다.
지역의 경제 맥박이 다른 지역에 비해 약하다고 해서 지역사회 아이들까지 가쁜 숨을 몰아쉬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어디서 태어났건 생명은 고귀하다. 아동은 행복하게 자라야 한다. 지역의 더 나은 미래와 행복이 그들에게 달려 있다. 광주·전남에 사는 청소년이 다른 지역에 사는 청소년보다 자살을 더 많이 생각한다면 인권도시·문화도시라 할 수 없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