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한 바위들은 자연이 빚은 거대한 부처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 땅끝천년숲옛길 (미황사-땅끝마을) kjdaily.com

2014년 11월 20일(목) 18:58

도솔암 능선에서 바라 본 가을 정취가 묻어나는 달마산 능선. 멀리 완도와 청정바다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가을의 끝자락에 와 있는 요즘에 가장 가고 싶은 곳은 해남이다. 한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해남에서는 아직도 가을의 정취를 흠뻑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남 땅은 느긋하고 부드러운 가운데 아기자기한 바위산을 이룬 두륜산과 달마산이 있고, 푸른 바다가 있어 다채롭고 향기롭기까지 하다.
병풍처럼 펼쳐지는 달마산의 품속에는 미황사라고 하는 예쁜 절이 자리를 잡고 있다. 미황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화려한 모양을 한 일주문이 우리를 맞이한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구불구불한 계단길이 중생을 미황사로 안내한다. 나는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세속의 때를 하나씩 하나씩 벗겨나간다.

북위 34도 17분, 동경 126도 31분에 자리한 ‘땅끝탑’. 탑에는 손광은 시인의 시가 새겨져있다.

사천왕문을 통과하면 정면으로 자하루가 몇 개의 계단 위에 앉아 있다. 경사지에 쌓은 돌축대는 절을 감싸고 있는 바위봉우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자하루를 통과해도 일직선으로 연결된 계단 위로 대웅전 지붕만 보여줄 뿐 완전한 모습은 감추고 있다. 이렇듯 미황사는 한꺼번에 당우들을 보여주지 않고 계단 하나를 오르거나 문 하나를 통과할 때마다 양파껍질이 벗겨지듯 하나씩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준다.

자하루를 지나 또 하나의 계단을 올라서자 넓은 마당 뒤로 대웅보전을 비롯한 주요 당우들이 다가온다. 층층이 자연스럽게 쌓은 축대 위에 앉은 절집들은 달마산 바위봉우리들이 병풍처럼 감싸준다.

대웅보전 뒤로 펼쳐지는 바위들은 부처상을 받쳐주는 광배가 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계로 경쾌하게 느껴지는 대웅보전(보물 제947호)은 절 전체에 안정감을 준다. 1751년 중수된 대웅보전의 주춧돌에는 연꽃잎과 함께 게와 거북이 같은 바다생물이 새겨져 있다. 법당 안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후불탱화가 걸려있으며 천장 우물반자에 범서로 ‘옴마니반메훔’자가 적혀 있다. 대웅보전 내부는 화려한 공포로 장식되어 있고, 천불상도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대웅보전 오른쪽 계단을 올라서면 대웅보전과 같은 해에 중건된 응진전(보물 제1183호)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응진전 앞에 서면 자하루 지붕 너머로 낮은 산줄기와 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이처럼 한반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미황사는 병풍 같은 바위를 등지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세상의 평화를 염원한다.

요사채를 지나 도솔암으로 가는 임도로 접어든다. 쭉쭉 뻗은 적송과 참나무 같은 나무가 숲을 이룬 길은 고향 가는 길처럼 푸근하다. 미황사에서 들려오는 염불소리와 새소리가 어울려 청량한 기운을 뿜어낸다. 고즈넉하고 고요한 임도는 부도암으로 이어진다.

부도암 역시 닭벼슬처럼 불쑥불쑥 솟은 바위들이 아름답게 배경을 이뤄준다.

저 수많은 바위들은 만불상(萬佛像)이나 다름없다. 부도암으로 들어가는데 오른쪽 부도밭이 발길을 인도한다. 돌축대 위에 24기의 부도와 부도비가 서 있고, 뒤쪽에는 낮은 담장을 둘러놓았다. 벽하당, 송암당, 송월당 등 선사들의 명호가 새겨진 부도와 부도비들은 특별히 빼어난 것도 없이 모두 고만고만하다. 전체적으로 소탈하면서도 정갈한 것이 청렴하게 살아온 선승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하늘높이 치솟은 뽀쪽한 바위, 그속에 자리한 작은암자 도솔암. 통일신라시대 고승 화엄조사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부도암을 지나니 걷고 싶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오솔길은 단풍나무·참나무·동백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사가 거의 없는 푹신한 흙길이어서 산책하기에 그지없이 좋다. 미황사에서 도솔암으로 가는 숲길을 걷다보니 저절로 마음이 정화되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

숲길을 걷다가 너덜지대를 만나는 것도 새롭다. 너덜 뒤로는 아기자기한 암봉들이 미모를 과시하고, 앞으로는 낮은 산봉우리들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무들이 오순도순 속삭이는 숲속에서 사람들도 다정하게 대화를 나눈다. 삼나무 숲을 지날 때는 그윽한 향기가 전해져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도솔암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은 200m에 이르는 급경사 오르막이다. 겨우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바위 틈 사이로 돌계단을 따라 들어가면 10평 정도의 땅에 1칸짜리 도솔암이 들어서 있다. 밑에서 보면 도솔암을 받치고 있는 절벽이 아찔한데, 암자로 들어서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다.

도솔암 앞으로는 지척에 삼성각을 감싸고 있는 암봉들이 선계를 이루고, 암자 옆 바위 사이로 고개를 내밀면 사람들이 사는 속세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바다가 펼쳐진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감을 갖고 있는 도솔암은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가 높아 ‘추노’, ‘각시탈’ 등을 촬영하기도 했다.

도솔암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북쪽에서 달마산 능선이 거친 파도처럼 밀려온다.

보물 947호 미황사 대웅보전. 신라 경덕왕 8년인 749년 의조스님이 인도에서 배에 실어 보낸 불경과 불상, 그리고 불화 등을 봉안하기 위해 이 사찰을 세웠다고 한다.

두륜산에서 닭골재를 넘어 불꽃처럼 타오르면서 달마산을 달려온 능선은 땅끝까지 이어지면서 한반도의 최남단 산줄기를 이룬다. 동쪽에서는 완도와 주변의 바다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이제부터 땅끝천년숲길은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능선에는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있는 그대로 그림 같은 바위군상은 뒤쪽으로 펼쳐지는 낮은 산봉우리들과 들판, 그리고 푸른 바다와 어울려 선경이 됐다. 하늘과 땅 사이에 솟아있는 바위들은 자연이 만든 부처이고, 이 아름다운 산은 그대로 거대한 사찰이다.

잠시 시멘트길을 걷다가 땅끝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들어선다. 이제부터 산세는 유순해지고 전형적인 육산을 이룬다. 산줄기는 도솔봉을 뒤에 두고 바다를 향하여 오르락내리락한다. 산이 점점 낮아지니 마을에서 개짓는 소리도 들려오고, 바다에서 뱃고동소리도 들려온다. 멀리 땅끝전망대가 바라보이고, 뒤돌아보면 도솔봉이 우뚝 서 있다. 간간히 화려하게 물든 단풍이 지친 발걸음에 에너지를 불어넣어준다.

망집봉(165m)에 올라서니 팔각정자가 기다리고 있다. 팔각정에 서니 북쪽으로 우리가 오늘 걸어왔던 달마산에서 땅끝까지의 산줄기가 파노라마처럼 다가오고, 나머지 삼면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호남정맥에서 분기한 123㎞에 이르는 땅끝기맥은 월출산·덕룡산·주작산·두륜산을 넘어 달마산으로 이어지고, 끝내는 이곳 땅끝에서 바다로 스며든다.

땅끝은 한반도의 끝이면서 바다에서 한반도로 올라서는 시작점이다. 땅끝탑이 있는 이곳은 바다를 향해 뱃머리처럼 튀어나와 한반도의 끝을 이루는데, 여기를 해남각이라 한다. 해남각은 서해와 남해를 가르는 분기점이 된다. 이제 나는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디딤돌 삼아 땅끝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다.


여행쪽지
▶땅끝천년숲옛길 제1코스는 미황사-도솔암-땅끝까지 16.6㎞로 6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광주에서 13번 국도→나주→영암→성전→해남에서 완도방향→월송리에서 미황사 방향→미황사
▶-땅끝마을에는 식당에 많다. 보물섬회식당(061-534-5918)에서는 전복스페셜(전복물회, 전복회, 전복구이, 전복죽), 중앙식당(061-533-2146)에서는 연포탕과 백반 등을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