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의 계절, 그 문턱에 서서 김유미의 커튼콜 |
| 2014년 11월 27일(목) 18: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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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수많은 생각들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많은 생각들 중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감사’일 것이다. 교회와 성당에서는 ‘추수감사절’ 행사를 치르며, 한 해 동안의 무사한 삶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나누는 시기도 바로 11월이 아니던가.
17세기 초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건너왔던 사람들이 고립무원의 허허벌판에서 기후와 토양에 적응하느라 엄청난 고난을 겪으며 한 해를 보낸 후, 아무것도 없었던 자신들에게 먹을 것이 생기고 살 집이 생겼던 것은 자신들의 신앙의 대상이었던 신과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그들을 도와줬던 인디언들의 덕택이었던 것을 깨닫고, 그 모든 대상을 향해 감사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다.
나라 안팎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비록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길가에 널브러진 낙엽들만큼이나 셀 수 없이 쌓여있고, 농로 가에서 황금빛으로 출렁이던 벼이삭들이 다 추수돼 이제는 황량한 들판 위에 쓸쓸한 그림자만 드리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해는 가고, 다가올 겨울이 그 결실들로 인해 풍요로워질 것을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들이 아닐까 싶다.
시립예술단체의 일원으로서 시민들의 예술적 정서함양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좋은 작품을 위해 아이디어를 짜고, 이러저러한 일들을 몸으로 부대끼며 한 해를 보내면서, 나름대로 시민들의 문화수준 제고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자부하면서도, 오늘의 모든 결실을 있게 했던 수많은 손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우선은 까다롭고 일 욕심 많은 예술감독의 주문을 묵묵히 순종하며 단원들의 복지와 원활한 공연의 진행과 홍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준 단무장님을 비롯한 무용단의 행정요원들과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단원들의 연습과정을 훌륭하게 지키고 진행해 준 훈련장님에게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가장 화려하게 등장하며 모든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를 한 몸에 받기는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을 감내하며, 아름답고 수준 높은 작품을 위해 온 몸을 던져준 무용단원들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마움과 경의를 보내고 싶다.
토슈즈 안에 감춰진 구부러진 발가락들과 굳은살이 박인 그들의 발바닥들은, 비록 나도 그들과 같은 길을 수십 년 걸어오기는 했지만, 언제 돌이켜보아도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소중한 기억들이다. 그들이야 말로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나의 면류관들이라 할 수 있다.
어려운 경제적 현실 속에서도 ‘문화중심도시 광주’의 건설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항상 큰 결단을 내려주시는 광주시장님과 시의 관계자 여러분들도 이 깊어가는 가을에 나의 마음에 감동의 울림을 주는 귀한 감사의 대상들이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공연예술에 종사하는 내게 있어 깊디깊은 감동과 감사의 진정한 대상은 발레예술을 사랑하며 성원과 질책을 아지 않으시는 광주시민들일 것이다.
그래서 벼 베인 그루터기뿐인 허허벌판에서 풍요로운 겨울을 기대하게 하는 이 가을은 ‘나’로 인해 존재하는 ‘당신들’이 아니라 나를 ‘지금의 나’로 존재하게 해주는 그 모든 ‘당신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로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게 되는 아름다운 계절이 아닐 수 없다.
/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김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