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5년 만에 무덤에서 나온 ‘십상시(十常侍)귀신’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12월 03일(수) 19:56

전화벨이 울렸다. 중학생쯤 여겨지는 남학생 목소리가 들린다. ‘뉴스에 나오는 십상시가 무슨 뜻입니까?’ 신문사에 전화 걸어 그 뜻을 물을 정도 호기심이면 대단하다. 최근 필자가 광주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역시 ‘십상시’(十常侍)다. ‘십상시’가 무슨 뜻이냐, 왜 그들이 ‘십상시’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등등···.

그런데 189년에 일어난 ‘십상시의 반란’과 2014년에 청와대에서 일어난 ‘십상시’까지 엮어 설명하자면 숨이 차다. 1825년 만에 ‘십상시’라는 말을 무덤에서 꺼낸 곳은 바로 청와대 문건이었다. 필자로서는 사실 확인이 어려워 특종을 한 세계일보 지난달 28일자 기사를 인용한다. 정윤회씨가 청와대 ‘문고리권력 3인방’이라 불리는 3명, 그리고 정무수석실과 홍보수석실 행정관 전현직 5명, 대선캠프 실무진 2명 등 권력 핵심 인사 10명과 매월 두 차례 서울 강남 모 식당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국정 현안을 보고 받았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 문건은 이들 10명을 ‘십상시’라 표현했다.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이 문건을 쓴 보고자는 왜 이들을 ‘십상시’라 표현했을까 궁금해진다.

‘십상시’는 중국 후한 말 영제(156~189) 때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놓고 권력을 잡아 호가호위하던 환관 10명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들은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13세에 등극한 나이 어린 왕을 주색잡기에 빠지게 만들어 놓고 정사를 돌보지 못하게 했다. 이리하여 주색에 곯은 왕이 제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자 쾌재를 부른 이들은 소제를 황제로 옹립했다. 영제가 사망하고 소제가 즉위했을 때 소제의 나이는 불과 14세였다. 이에 따라 그 어머니 하태후가 섭정을 하게 되었고, 하태후의 오라버니 하진이 대장군으로서 정권을 장악했다. 바야흐로 환관 세력에서 외척 세력으로 권력이 넘어갈 분위기였다. 삼국지의 첫 무대가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진은 환관 세력을 몰아내고자 원소, 동탁과 결탁하였으나, 하태후는 하진의 계획에 반대했다. 그러는 사이 하진의 계획을 알아차린 환관 세력은 하진 가문을 몰살시켰다. 이를 가리켜서 당시 가장 유력했던 환관 10명이 주도한 난, 즉 십상시(十常侍)의 난이라 한다. 이에 분개한 원소는 궁성에 진입하여 환관 천여 명을 살해했고, 동탁도 낙양에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진입하여 권력을 장악한 뒤, 소제를 폐위시키고 헌제를 즉위시켰다. 소제의 폐위 문제에서 동탁과 의견이 맞지 않았던 원소는 고향으로 돌아가 군대를 모집하고 각지의 유력 인사들에게 동탁을 함께 토벌할 것을 요청했다. 원소가 주도한 토벌군에서 우리는 조조, 손견, 유비 등과 만나게 된다. 결국 본분을 잃어버린 채 황제의 눈과 귀를 가리고 국정을 농단하던 ‘십상시’는 죽임을 당하였고 후한도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십상시’의 죄목을 중국 역사서와 전문가들은 다섯 가지로 열거하고 있다. 범상작란(犯上作亂) 윗사람을 해치고 난을 일으켰다. 기군망상(欺君罔上) 임금을 속이고 윗사람을 우롱했다. 호가호위(狐假虎威) 황제의 권위를 이용해 횡포를 부렸다. 매관매작 가렴주구(賣官賣爵 苛斂誅求) 관직과 작위를 팔아 사리사욕을 채웠고 백성들을 가혹하게 착취했다. 부재기위 불모기정(不在其位 不謀其政) 공식적인 지위에 있지 않은 사람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어겼다. 특히 ‘십상시’의 농락에 놀아나 정치는 게을리 한 채 주색에만 빠져버린 ‘영제’는 지금까지도 가장 멍청한 군주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십상시’ 농간을 그 시대에 체험했던 제갈량은 ‘출사표’에서 후한이 망한 이유로 ‘친소인, 원현신’(親小人, 遠賢臣)이라고 요약했다. 왕이 소인을 가까이 하고 현명한 신하를 멀리한 것이 폐망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십상시 난’을 이해하고 나니까 청와대 보고문건을 쓴 이의 아주 해박한 역사관이 감탄스럽다. 모든 정황을 파악해본 결과, 그들이 바로 ‘십상시와 같다’는 결론을 낸 보고자는 ‘삼국지’를 적어도 10번 이상 탐독한 이로 보인다. 도대체 그 10명이 무슨 일을 했길래 보고자는 그 무시무시한 ‘십상시 난’을 떠올린 것일까. 사내구실도 못하고 수염도 안 나는 1800년 전 환관이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어놓고 속여 가며 권력을 잡고 호가호위했던 상황과 도대체 어떻게 닮았다는 것인가.

필자는 이번 사건이 ‘삼국지’에 나오는 전략·전술·권력암투의 스토리텔링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권력은 견제되지 않으면 괴물로 변하고, 그로 인해 국민과 국가의 이익이 피해를 입는다. 특히 친인척이나 비선조직이 날뛰면 더욱 그렇다. ‘십상시의 난’이 역사 속에서 후세에 전하는 교훈은 간단하다. 자신들의 ‘권력과 부’만을 추구하며 나라와 백성의 안위에 무관심했던 세력은 그 끝이 좋지 않다는 것, 백성들을 결국 도탄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청와대 문건 작성자는 ‘지금, 십상시들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면 1825년 전처럼 분열·반목·혼란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며 그 역사, 그 사건을 떠올린 것 같다.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의 ‘십상시 귀신’이 다시 등장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회자(膾炙)되는 것 자체가 창피하고 또 창피한 일이다.

정치란 강산(江山)이 180번 바뀌어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단 말인가~.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