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어처구니없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
| 2014년 12월 10일(수)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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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전라북도 의회 의원들은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맞아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 내용은 ‘전라도 출신 불가’ 채용공고를 낸 남양공업이라는 협력사를 현대·기아차는 즉각 퇴출하라는 것이다.
‘전라도 출신 채용 불가’라니~. 눈 씻고 다시 쳐다봐도 남양공업 채용공고에는 ‘전라도 출신 채용 불가’라는 글자가 또렷이 박혀있다. 여기저기서 ‘어처구니 없다’며 분노의 목소리가 터지자 남양공업은 인력을 공급하는 채용대행사 직원의 실수라고 해명했다. 단순 실수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면 일개 채용대행사 직원은 무슨 이유로 ‘전라도 출신 채용 불가’라는 말을 삽입했는지 공개, 해명하라. 이런 특수한 문장은 의도를 갖지 않고 실수로 만들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채용대행을 하는 회사는 ‘전라도 출신 채용 불가’가 인류 보편가치인 인권을 부정하고 대한민국 헌법과 고용촉진기본법 등 여러 실정법의 명문 규정을 공공연히 무시하는 명백한 범법 행위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하면 밝혀질 일이지만 해프닝이라고 치부하기엔 ‘전라도에 대한 정서폭력’이 너무 지나치다.
지금은 21세기다. 더군다나 기아차 본사는 광주에 있고 전북 완주에 중요한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 기아차 협력업체가 전라도 사람을 뽑지 않겠다는 발상은 매우 시대착오적이고 몰상식하다. 그래서 전라북도 의회는 현대·기아차에게 남양공업을 협력사에서 즉각 퇴출하라고 요구했다. 광주시와 전남도는 여전히 무대응·무대책이지만 전라북도 사람들은 엄청나게 화를 내고 있다.
정말 어처구니없다. 20년 전에도 필자는 똑 같은 주제로 ‘니들이 전라도를 알아?’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1000년 전 훈요십조가 부활했는지, ‘차령 이남은 지세가 배역의 기운이 있으니 그 곳 사람은 중용하지 말라’는 망령이 부활했는지, ‘전라도 놈’은 쓰지 말라는 방침을 가진 회사가 지금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지난 20세기에, 전라도 사람이라면, 그 누구든, 채용 차별을 경험했다. 이력서에 광주, 전남, 전북이라 쓰기가 겁나는 시절이 있었다. 필기시험을 1등 하고도 면접에서 떨어지고 나면, 어김없이 전라도사람이라서~라는 뒷얘기를 듣곤 했다. 그래서 서울 상경 후, 먹고 살기 위해 간혹 고향이 전라도임을 속이고 사는 이들도 있었다. ‘왜 그랬나’. 이유를 따지자면 단순한 몇 가지가 볼가진다. 고용인들 중 에 노골적으로 전라도 사람을 싫어해 먹고 살기 위해 속이기도 하고, 어쩐지 모임이나 회사에서 전라도 사람이라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그렇게 하고, 스스로 천대받고 낙후된 지역이라는 열등감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겠다.
요즘 중·고생에게 부모들이 전라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취직, 사업, 출세가 어려웠다고 말하면 믿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시절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텔레비전이 흑백에서 칼라로 바뀌던 시절, 온 국민이 드라마에 넋을 놓고 있을 때, 드라마까지도 전라도 사람을 내팽개치던 시절이 있었다. 20세기엔 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깡패, 식모, 사기꾼, 걸인, 죄인 등 밑바닥 서민이나 사회 기피인물 대부분이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배경이 서울이나 부산인데도 천박한 역할에 꼭 호남사람을 끼워 넣어 ‘~랑께,~부러, 거시기’를 남발했다. 간신배, 도둑, 협잡꾼, 폭력배 역에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인물이 나오지 않으면 드라마 완성도가 떨어지고 흥미 유발이 어렵다고 여겼는지 모르지만 비리, 부정, 범죄, 아첨, 비양심의 표본으로 설정한 것은 정신적인 지역차별이었다.
필자는 국민의 정서를 대변하는 ‘드라마 왕국 대한민국’에서 저질러지는 이 거대한 음모를 두고 볼 수 없어 해당 작가에게 전화해 따진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데, 차라리 전화하지 말 것을…. 후회했다. 상대가 의도적이었다고 답하면 한판 붙어 볼 텐데, 어쩐지 그런 인물엔 전라도 사투리가 어울린다는 대답 앞에 망연자실했다. 전라도 폄훼의 역사가 그렇게 깊었던가? ‘저질 역엔 전라도 말이 딱 이다’는 젊은 작가의 말은 누가 가르켜주지 않고 벤 것이라 더 무서웠다. 자신들이 ‘정신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전라도에 족쇄를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전라도 폄훼와 차별은 역사 흐름 속에서 복합적인 이유들이 누적된 때문이라고 본다. 남양공업은 ‘전라도 출신 채용 불가’ 사태가 전라도에 미친 정치경제사회적인 피해액이 얼마라 보는가. 남양공업을 팔아도 그 피해액은 보상 못할 것이다. 지금 전북대, 전남대 등 전라도 대학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 학생들에게 ‘전라도 채용불가’ 사건은 거의 형벌에 가깝다. 지금 전라도 대학가에선 ‘어처구니’를 넘어 ‘개 X같은 소리’ ‘웃기고있네’라며 전라도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편견의 피해를 봐야 한다면 사실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제발, 부탁건대, 전라도에 편견을 가진 이들이여, 의도적으로 전라도를 폄훼하는 차별의식의 ‘씨’를 뿌리지 말라. 전라도 사람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그대들처럼 호루라기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벌떡벌떡 뛰는, 겁 많고 순박한 사람들이다.
편 가르고, 차별하는 사람치고 좋은 사람 없다. ‘남양공업’ 사태가 났을 때 경상도 충청도 사람들이 먼저 ‘나쁜 짓’이라고 나무래 주면 얼마나 좋겠나.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