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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국민들이 잊을 수 있는 사고여야 한다

김한필
전남발전연구원 행정과장

2014년 12월 14일(일) 20:27

갑오년 한 해가 석양 리(裏)에 저물어 가고 을미년 원단(元旦)이 밝아온다. 세월은 속절없이 가고, 가는 세월 속에 크고 작은 일들도 잊히게 마련이다. 경천동지할 일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뇌리에서 희미해지거나 아예 지워지곤 한다.

철학자 니체는 “인간은 본성상 망각하는 동물이다. 망각은 결코 이성능력의 부족이나 타성력(惰性力)이 아니라, 삶에 필요하고 삶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뇌기능 중 망각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인간들 상당수가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겪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 잊자. 잊는 일이 기억하는 일보다 우리의 마음을 안온하고 평정하게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러나 갑오년은 단지 다사다난했다고만 하기엔 그 도가 지나쳐 충격적인 사건의 연속인 한 해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인간의 망각 기능마저 훼손시켜 도리어 생생하게 기억하도록 하는 역작용, 반작용을 일으키게 하는 일들이 줄을 지어 일어났으니 말이다.

지난 4월16일 아침 일찍 필자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인천을 출발하여 제주로 가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좌초하여 침몰하고 있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배는 상당히 기울어져 있었다. 가라앉는 속도가 눈에 선명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흐르면서 배가 확실히 물속에 잠기고 있음이 감지되었다. 단원고 학생 등 340여명의 승객이 배 안에 있다는데 웬일인지 구조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배 안에서는 소동이 벌어졌을 것이 자명하고, 이를 보고 있는 필자는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촌각이 급한 이 시각에 구조대는 어디서 무얼 한단 말인가! 탄식이 절로 나왔지만 어찌 해볼 도리는 없고 발만 동동 굴렀다. 이 광경이 나의 감각기관의 장애로 인한 착각이나 환각이기를 바랬다.

이렇게 초조하고 답답한 시간은 갔고 그들 대다수는 끝내 구조되지 못하고 수중고혼이 되고 말았다. 이 시각 텔레비전 중계를 보신 분들은 지금도 그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세월호 참사가 뇌리에 생생한데 이게 또 무슨 날벼락인가! 12월1일 오후 러시아 인근 베링해에서 한국인 11명 등 60명의 선원이 탄 사조산업 소속 원양어선 501오룡호가 침몰해 현재 실종됐거나 숨진 이가 모두 53명에 이른다고 한다.

수색작업을 계속하고 있지만 사고해역의 파고가 높고 수온도 낮아 매우 비관적인 상황이고, 이대로라면 한국 원양어업 사상 최악의 사고가 될 것이란다.

그럼 이런 대형 사고들이 빈발하는 원인이 뭔가. 이번 원양어선 침몰도 세월호와 유사점이 너무 많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501오룡호는 건조된 지 36년 된 낡은 선박이란다.

501오룡호 말고도 국내선사의 원양어선 가운데 30년 이상 된 배가 38.6%이고 21년 이상인 배까지 합치면 91%라고 한다. 사고 당시 이 해역은 4m 이상의 파도와 초속 20m 이상의 바람으로 조업자체가 아주 위험하여 한국어선 4척은 해안 쪽으로 이미 대피 중이었단다.

그런데 실종 선원 가족들의 말에 의하면 본사에서 어획 쿼터가 추가로 내려와 악천후 속에 무리하게 조업을 한 게 원인이었다고 하니, 이 말이 사실이라면 백척간두에 선 사람에게 진일보하라는 악의의 채근과 무엇이 다른가! 선사들의 이윤추구에 대한 과욕이 결국 화를 자초한 것이다.

안전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 중 하나이다. 매슬로우에 의하면 생리적 욕구의 다음 단계가 안전의 욕구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또 상궁지조(傷弓之鳥)라고 하던가! 한 번 화살에 맞은 새는 구부러진 나무만 보아도 놀란다고 한다.

정부가 법과 제도를 잘 정비하지 못한 잘못도 분명 인정해야 하지만, 안전은 아예 뒷전으로 하고 이윤 추구에만 급급한 나머지 이렇게 안일한 사고를 가진 업주들이 영업을 계속하는 한 국민들은 활에 맞은 새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해야 할 시점이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업종은 어떤 업종을 막론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얄팍한 상술과 안전 불감증에 걸려 법을 어기는 업주들은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좀은 안심하고 사고를 잊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