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스텔라(Interstellar) 서기원 |
| 2014년 12월 15일(월)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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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구에서 태어났다. 여기저기에서 “나도, 나도”라고 외친다. 우리 모두다 지구에서 태어났는데 당연한 소리를 왜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수상하다. 과연 우리들 중 외계인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별에서 온 그대’ 주인공처럼 말이다. 밤마다 만취되어 무심결에 변장이 드러나 해롱해롱 ‘코알라’가 되는 남자들, 얼굴에 삽입된 보형물(미용 때문이 아닌 행성과의 통신용) 때문에 눈이 감기지 않아 전전반측, 잠못 이루는 여자들이 아침이 되면 직장인으로 변신하여 무수한 인파속으로 종적을 감춘다.
우리에게 ‘지구인’이라는 동류의식이 있기는 한 걸까.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들, 자원의 난개발, 환경파괴로 지구는 통곡하고 있다. 그로인해 킬리만자로의 만년설, 북극 빙하가 눈물을 흘리고, 일본열도가 지진으로 갈라져 분개하고, 몽골고원의 황사가 거친 숨소리를 토하고 있다. 밸런스가 붕괴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종교 갈등이 도사리고 있고, 이들은 끊임없는 경쟁을 빌미로 지구를 극한까지 소모시키고 있다. 결국 모든 것들은 멸절될 것이다. 해답은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지구를 떠나거라”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인기가 장난이 아니다. 바야흐로 1,0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바로 그렇다. 모래폭풍, 기근 등 식량난 때문에 파멸을 앞둔 지구를 떠나 인류를 위해 신천지를 개척해야 하는 선택받은 아버지와 지구에 남게 되는 버림받은 딸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일그러진 시·공간(時·空間)이 존재한다. 웜홀을 통한 공간이동, 블랙홀을 통한 시간이동, 5차원의 세계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놀라운 상상력을 가미해 전개한다.
내가 ‘SF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지구인’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충류, 연체동물처럼 생긴 외계괴물을 상대로 피부색깔을 떠나 지구인이 똘똘 뭉쳐 ‘광선검’으로 베고, 레이저 빔으로 쏘는 호쾌한 액션신과 우주공간에 아름답게 빛나는 별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거대한 우주선의 유영(遊泳)이라는 스펙터클한 영상에 압도되어서다.
그러나 ‘인터스텔라’는 상상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체적인 줄거리에서 지구인과 외계인의 대결이라는 갈등구조가 존재하지 않아 밋밋했고, 오히려 인류(딸)를 구하기 위하여 블랙홀을 통해 시간이동을 한 주인공이 딸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5차원이라는 공간(수학이나 물리학으로만 설명이 가능한 공간)에서 3차원의 세계에 있는 딸에게 2진법으로 중력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공식을 전달해서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인데 자못 황당무계하다. 배경으로 펼쳐진 미국의 옥수수 밭과 우주기지에 선명하게 나부끼는 성조기로 인해 지구인이 아닌 미국인만을 위한 영화라는 느낌역시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상영시간이 장장 3시간에 달하는 영화이다. 청소년경찰학교 두드림카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중학생들과 같이 영화를 봤는데 집중하기 힘들어 형형색색의 팝콘을 먹으면서 별별 생각을 다했다. 팝콘이 밤하늘에 펼쳐져 있는 별과 같고, 그 별을 집어 삼키고 있는 내 목구멍은 블랙홀이며(폭풍흡입), 블랙홀 속에서 시간과 공간이동을 통해 별 같은 팝콘은 영롱한 똥의 고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 또한 인터스텔라는 영어 ‘Inter(사이)+stellar(별)’로 행성간(行星間)이라는 뜻인데 학창시설에 택시들 대부분이 현대에서 만든 스텔라 차종으로 차량은 큰데 배기량이 낮아 오르막길에서 껄떡대던 모습과 인터스텔라가 “스텔라 차량내부라는 뜻도 있겠구나”라는 잡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무튼 이 영화의 열기는 다분히 엄마들의 교육열이 만들어낸 아우라 아닌가 싶다.
별 볼일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내가 쳐다봤던 별은 윤동주의 시(詩)에서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어머니,”처럼 동경의 대상이었다면, 지금의 별은 착륙하여 시료를 채취해야 할 약탈의 대상이다. 인간 욕심의 끝은 어디까지 일까. 정녕 지구 하나로도 부족하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