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불감증에 따른 변화 나강문 광주 동부소방서장

2014년 12월 16일(화) 20:36

불감증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 의미를 살펴보면 ‘감각이 둔하거나 익숙해져서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하게 되는 일’이라고 씌어져 있다. 이 의미만 두고 보자면 올해 신문지상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안전 불감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수 인명피해 사고가 자주 있는 일이라 감각이 둔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방공무원인 내 입장에서 보면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은 서글픈 용어이다. 30년 공직생활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교육하면서 안전을 입에 달고 산 내게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올해 4월 세월호 사건의 충격도 몇 년은 갈 것 같았는데 5월 말경 연이어 터진 고양 종합터미널 화재와 장성 요양병원 화재, 그리고 10월에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고, 또 그 한 달 뒤에 터진 담양 펜션 화재에 이르기까지 올 한 해만 해도 다수 인명피해 사고가 몇 건인가? 현실이 이렇다보니 작은 화재 및 사고는 그 사이에 묻혀 버리기가 다반사고 시민들에게도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 익숙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도 모른다.

사고 이후엔 어김없이 안타까운 사연들이 이어진다. 담양 펜션 화재에서도 결혼을 두 달 앞두고 후배를 구하러 들어갔다가 변을 당한 대학교 선배가 있었고 판교 공연장 붕괴사고에서도 두 아들을 중국에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의 사연이 있었다.

장성 요양병원 화재에서도 고양종합터미널에서도 마찬가지로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았지만 대부분의 희생자가 고등학교 학생들인 세월호 참변은 우리들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직업이 소방공무원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죄스럽기만 했고 떳떳하지 못했다. 이 모든 사고들이 인재(人災)가 아닌 자연재해라면 시민들을 구해야 한다는 소방 본연의 업무에 더 충실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재(人災)의 뒤에 언제나 따라 붙는 안전 불감증 앞에서 무기력해 지는 건 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점일지도 모른다. 그럼 앞으로도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 마다 많은 사람들이 인재(人災)로 인해 사망하고 주위를 안타깝게 하는 걸 지켜만 봐야 하는 걸까? 시간이 흘러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길 바라는 것 외에 대책은 없는 걸까?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인지는 모르지만 커다란 인재(人災)로 인한 상처를 메우기 위해 조직이나 법률이 사라지고 새로 신설되고 변경되는 걸 지켜보면서 그래도 아주 조금의 희망을 가지곤 했다.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중 올해 7월 8일 신설되어 2015년 1월 8일 시행을 앞둔 규정들이 그 예이다.

그 중 두 가지를 소개하자면 하나는 공사현장 및 리모델링 작업과정에서 용접 불티가 원인이 되는 다수 인명피해화재에 대응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특정소방대상물 공사 현장에는 공사 중 화재를 대비한 임시소방시설(소화기,간이소화장치,비상경보장치,간이피난유도선)을 설치하고 유지관리 의무를 신설했고, 또 소방대상물의 자체 초기대응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상물 규모에 따라 소방안전관리자 외에 소방안전관리보조자를 선임토록 했다.

좁은 지면에 위에 소개한 규정을 모두 풀어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유사 시 보다 더 신속한 대응을 위해 안전 시스템을 변화시킨 사례로 설명할 수 있다.

시민 의식과 모든 제도를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지만 이런 조그만 변화들이 합쳐져 안전 불감증에 이어지는 인재(人災)에 대항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