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부모의 허물인가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12월 17일(수) 19:32

엄마들은 세상 보는 눈이 다르다. 갑 보다는 을,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 잘사는 자식보다 못사는 자식에게 더 마음을 쓴다. 지난주부터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한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리턴 사건’을 지켜보는 국민이 ‘최악의 갑질’에 분노하고 또 분노했다. 그런데 필자를 만난 한 엄마는 ‘나쁜 갑’에게 당하고 비행기에서 내린 사무장 이야기만 했다. 그 사무장 부모 마음이 어땠겠냐, 부유한 부모 못 만나서 월급쟁이 하고 있는 것도 안쓰러운데, 회장 딸이라는 새파란 상사에게 폭언과 폭행까지 당한 사실을 그 부모가 알고 얼마나 가슴을 쳤을까, ‘을’의 불쌍함을 역설하고 또 역설했다. 이 사건에 온 국민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국민 대부분이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거나 경험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한항공 회장이 국민 앞에 나와서 ‘자식 잘못 키운 죄’라며 사과하기에 이르렀으나 그 사과는 통하지 않았다. 일반 국민이야 ‘자식 잘못 키운 죄’가 있으면 혼자 가슴 쓸어내리고 말지만, 대한항공 회장의 ‘자식 잘못 키운 죄’는 국가적·사회적·경제적 손실이 너무 커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국제적으로 망신, 개망신을 당한 것도 모자라 사과에 사과, 또 사과를 거듭해야 하는 과정을 보면 ‘자식을 잘못 키운 죄’를 넘어 지금도 ‘자식을 잘못 관리’해 파국을 자처하고 있다. 아버지의 딸을 바라보는 시선, 잘못된 위기대처능력 때문이다.

재벌 딸이라는 이유로 능력에 관계없이 입사 7년 만에 조현아씨를 부사장 자리에 초고속 승진시킨 사람은 아버지다. 아버지가 잘못한 것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딸에게 좌절과 실패의 기회를 주지 않고 초년출세를 시켜 타인의 존재를 존중하고 귀하게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버린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 2, 3세 경영자들처럼 조현아씨도 스스로 잘나서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이륙하려는 비행기까지 돌려세우는 무모함을 자행할 정도로 비상식적이다. 자신 앞에만 오면 충신, 간신 가리지 않고 머리를 조아리는 충성심 덕에 자신도 모르게 ‘왕’ ‘공주’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진 것이다. 이런 오만, 잘못된 재벌경영 행태는 위기를 위기로 파악하지 못하고 기업을 결국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대한항공 회장은 회사를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준비되지 않은 내 자식’에게 경영을 맡기는 것을 ‘내 맘대로’ 결정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것이다.

외신들은 부하직원이 잘못하면 감싸줘야 할 부사장이 비상사태도 아닌 상황에서 항공기를 마음대로 회항 시켰다는 것은 전 세계 항공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조롱하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가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는데, 아첨과 과잉충성으로 조현아 부사장의 치부를 감추고 피해자를 압박하는 경영행태에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사소한 곳에도 제2의 조현아씨가 곳곳에 숨어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직업, 신분, 성별, 학벌, 연령 등에서 우위에 있는 자와 하위에 있는 자간의 명확한 구분이 있다. 이를테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정규직 신분과 비정규직 신분, 고위직과 하위직, 남성과 여성, 서울의 대학 출신과 지방대학 출신, 대학졸업자와 대학졸업을 못한 사람 , 나이가 많은 사람과 나이가 적은 사람 간에도 갑과 을의 관계가 은연중에 형성되어 있다. 이것이 하루 이틀에 된 일도 아니고 한두 사람에게 국한된 일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조현아씨의 횡포에 분노하고 있지만, 실은 우리 속에도 잠재된 갑과 을이 공존하고 있다. 잘난 갑의 횡포에는 분노하면서 우리도 무의식적으로 우리보다 못한 을에게 주고 있는 상처는 잘 반성하지 못한다. 일류대 출신들의 오만함에 상처받았던 이류 대학 출신들은 자기도 삼류대학 출신들 앞에 가면 그 이상의 진상을 떤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의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 이 땅에 와서 힘든 일들을 하는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우리는 얼마나 무시하고 차별하는가.

공정사회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사회적 계약이 바로 보편적 인권과 평등의 원리를 존중하며 권한의 남용을 예방하는 윤리강령이다. 물론 이것이 헌법으로 규정하는 법적구속력은 없다 할지라도 그 사회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인간양심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법 이전에 자율적으로 지켜야 하는 행동의 규범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필자는 ‘조현아 사건’에서도 봤듯이 지금 우리 삶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경제권력에 대한 사회적 통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경제질서를 사회질서의 핵심부 속으로 위치시키고 경제권력의 폭력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제2의 조현아 사건’은 언제든지 일어날 것이다.

호모부가(毫毛釜柯)란 말이 있다.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과 같은 말로 좋지 않은 나무는 어릴 때 베어내지 않으면 마침내 도끼를 사용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말이다. 시작의 방향성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말도 된다. 처음에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습관화 되고 고정화 되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이 되고, 건너올 수 없는 다리가 된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