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이 존경이다 조영환 수필가

2014년 12월 21일(일) 19:11

지난 여름 부인의 회갑 기념으로 서유럽 여행길에 런던에 있는 명소외 버킹검 근무자 교대식과 국립공원에 있는 묘지에도 들렸다.

영국하면 신사의 나라다. 그래서 영국 신사복 브랜드의 종류도 많지만, 옷감재료나 기성 옷값도 만만치 않다. 영국의 귀족묘지에는 유난히 초급장교 무덤이 많다고 한다. 왜 그럴까?

전쟁이 발발하면 귀족들은 군에 자원한다. 그리고, 장교로 임관후 참전하여 소대장으로서 병사들을 이끌며 맨 앞에 나선다.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함으로서 이들의 무덤이 많다 한다. 그것은 귀족들이 먼저 모범을 보인 실례이다.

실제 세계 1, 2차 대전 때 고위층 자제가 가장 많이 다니던 이튼칼리지출신 2,000여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 전쟁 때는 여왕 둘째아들이 참전했다. 그리고 미국도 6·25사변 때 142명의 장성의 아들들이 참전했고 그중 35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큰 기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다.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한다. 높은 신분에 걸맞게 도덕적 의무를 스스로 자처하고 수행하며 모범을 보일 때 그 사회의 풍속과 충성도는 높아진다.

로마시대 왕과 귀족들은 공공의 봉사와 기부, 그리고 헌납을 자랑삼아왔고, 의무요 명예로 삼았다. 실제로 로마 건국초기에 원로원을 차지한 귀족의 수가 1/15로 급감한 것도 사망한 귀족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중국의 모택동은 넷째부인에게서 난 딸을 각별하게 사랑했는데, 그 딸이 학교 다닐 때 성도 바꾸고, 비서의 자녀로 속이고 병원을 다닐 때나, 학교생활도 다른 보통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하도록 하였다한다. 적어도 이런 인품이 있었기에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존경이 살아있는 것일지 모른다.

이와 같이 지도층이 자신들이 누린 혜택과 권리 이상으로 의무를, 그것도 자발적으로 실천할 때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명령을 기꺼이 따르게 될 것이다.

1852년, 지금부터 160여년전 영국의 해군 수송선 버큰해드호가 영국군 사병과 그의 가족들 630명을 싣고 출항했다. 그 중 130명이 여자와 어린 아이들로 구성되었다. 그 배가 새벽 2시에 케이프타운 근처에서 두 동강이 나 배 후미는 가라앉고 선미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었다. 그 당시 구조선은 60명이 탈 수 있는 3척뿐이었다. 게다가 그 해역에는 상어가 우글대는 곳이었다. 그 때 선장 세튼 대령은 모든 병사들을 갑판위에 집합시켰다.

그리고 부동자세를 취하게 하고 부녀자와 어린 아이들을 구명정에 태워 보내고 있었는데, 그 구명정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며 흐느껴 울었다한다. 결국 버큰해드호는 부동자세 사병과 함께 침몰하였다. 세튼 대령은 구조선이 올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는 판자에 매달려 있는데 선실 일을 보던 소년 2명이 근처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다가 널빤지를 그들에게 밀어줬다. 그리고 세튼 선장은 사병들과 함께 침몰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건이 우리의 가슴을 더욱 저미게 한 것은 어린 학생들이었단 점과 그 배의 선장이 가장 먼저 탈출하고 연이어 선원들이 탈출했다니 이 무슨 부끄러운 모습인가?

우리의 의식이 고작 그 정도란 말인가?

그러나 과연 우리가 그 선장만 탓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이른 바 사회지도층들의 탐욕과 도덕성을 보라. 그들의 모습이 어찌 세월호 선장과 과연 다를까? 악착같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큰 돈을 움켜쥐려고 도덕성과 인간성마저 외면하는 자들은 어쩌면 그 오블리주를 벗어나기 위해 노블레스를 꿈꾸는지 모른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더 도덕적이고 인격적이어야 한다. 우리에게도 버큰해드호의 전통이 필요하다. 배에서 먼저 뛰어내릴 자를 뽑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