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암흑’ 검은색이 뿜어낸 ‘원초의 풍경’ 광주 출신 중견작가 김유섭 회화·드로잉 60여점 선봬 내년 2월1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 초대전 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

2014년 12월 22일(월) 19:10

작품 앞에 선 김유섭 화가.

불필요한 형식이나 습관의 모호함을 죄다 제거한다. 색이 발생하기 이전으로 들어서려는 작심으로 모든 군더더기를 지운다. 그렇게 다다른 곳은 태초의 암흑과도 같은, 분화를 시작하기 직전의 덩어리다. 마치 모든 회화적 요소를 버리는 듯한 이 작업은 오히려 회화를 살아남게 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읽힌다.



광주 출신 중견작가 김유섭씨 작업 이야기다. 방대한 현대미술의 장에서 독자성으로 구별되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세상의 패러다임에 수긍하지 않는 김 작가는 철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이 같은 화업을 이뤄내 국제미술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김 작가는 지난 1980년대 조선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철학의 나라 독일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 그것은 작업 이전에 철학의 바탕을 먼저 고민해야겠다는 일념에서 선택한 결정이었다. 1995년까지 독일 베를린예술종합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올해 8월 조선대 미술대학 교수로 임용됨에 따라 광주에 터를 잡고 학생교육을 병행하며 작가의 길을 가게 됐다.

특히 김 작가가 머물렀던 10여년간 독일의 상황은 동·서독일의 냉전체제와 독일의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공존했던 시기였고, 여러 가지 급변한 사회·문화적 환경이 김 작가에게 많은 자극과 영감을 줬다. 해서 김 작가는 자신에 대한 성찰과 함께 회화의 발원점을 향한 끝없는 사유를 통해 ‘회화의 종말’을 논하기 보다는 다시 ‘회화의 역할’에 대한 철저한 점검으로 회화의 바닥까지 침잠해보고자 했다.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이 ‘검은 그림(Schwarze Malerei)’이다. 켜켜이 쌓인 두꺼운 흑색 물감 층은 거친 표면을 형성하면서 강렬한 생명력과 태초의 원시성을 구사한다.

김유섭 作

이후 2000년대를 지나며 그의 검은 그림은 차츰 붉고 푸르스름한 유색이 섞여든 ‘Energy Field’, 원색이 요동치는 ‘Piece of Paradise’ 시리즈로 변화를 거쳤지만, 여전히 김 작가의 작품 원천은 검정색이다. 원초의 풍경이자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는 뿌리인 셈이다.

그의 작품은 내년 2월1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에서 만날 수 있다. 미술관 측이 중견작가 초대전으로 김 작가의 회화와 드로잉 등 60여점을 내걸었다. 전시 개막행사는 23일 오후 5시 전시장에서 열린다. 문의 062-613-7150.

/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