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수 잘못 짚은 시의회 취재수첩 노병하 정치부 차장 kjdaily.com

2014년 12월 22일(월) 20:32

지난 18일 광주시의회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몇몇 의원들은 얼굴을 붉히며 복도를 지나갔고 한켠에서는 “좀더 생각해보자”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무슨 일인가하고 정치부 기자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채널을 통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진 내용은 ‘윤장현 광주시장 초청 송년만찬에 시의원들이 불참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불참 원인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다. 이에 대해 한 시의원을 통해 들은 것은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 임용 절차 과정에서 시의회를 무시했기 때문이다”는 내용이었다.

얼핏 들으면 수긍도 갈 법하다. 시의회는 그동안 줄기차게 윤 시장의 인사에 대해 강한 목소리로 지적해왔다. 주로 썼던 단어는 ‘불통인사’ ‘지인인사’ ‘독단적 결정’ 이었다.

이런 이유로 사무처장 임용절차 과정을 조사해봤다. 문화재단에 따르면 사무처장직은 지난 6월부터 공석이 됐기 때문에 지난달 4일 정식으로 공모했고 대표이사 선출과는 다르게 ‘임원추천위원회’가 아닌 ‘임명직추천위원회’로 구성됐다. 이어 시의회에 추천을 통보했는데 시의회의 회신이 없어 불가피하게 시의회 미추천자 3명을 예술단체(예총, 민예총) 및 시민사회단체(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에 의뢰했다고 밝혔다.

시의회는 그동안 윤 시장 인사에 반발해 각종 임원 임명 추천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 시의회가 추천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화재단이 인사 임용을 밀어붙였고 이에 시의회가 반발 차원에서 윤 시장의 송년 만찬을 보이콧한 것이 된다.

그러나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문화재단 사무처장 임용은 시의회 추천이 의무사항이 아니었다. 이 부분에 대해 확인해 본 결과 광주시와 문화재단, 심지어 시의회까지 ‘기관장이 아닌 처장급 임원 추천은 의무가 아니다’고 밝혔다. 권유 사항인 사안에 대해 시의회가 발칵 뒤집어진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시의원들은 “우리(시의회)를 무시한다” 혹은 “광주시의 의회 경시가 도를 넘었다”고 격앙된 분위기였다.

그런데 사실을 확인해보니 이들이 어느 부분에서 ‘경시’와 ‘무시’를 느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의무’가 아닌 ‘권유사항’이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인사 진행에 대해 윤 시장의 과거 인사 문제를 거론하며 시의회는 집행부와 의회가 1년에 한번 서로 화합하는 송년 만찬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부분이 의회의 시민에 대한 ‘경시’이고 ‘무시’가 아닐까.

정치인의 가장 큰 능력은 ‘협상’ 능력이다. 협상할줄 모르는 정치인은 정치인의 자격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화내고 악만 지른다면 과연 광주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시민들은 자신들을 대표해 집행부와 협상할 수 있는 정치인들에게 소중한 한 표를 찍는다.

그런데 그렇게 선출된 정치인들이 근거도 없이 ‘무시한다’는 이유로 광주시장이 초청한 화합의 자리를 나가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시의회가 말했던 ‘불통’ ‘독단적 결정’이란 말이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시의회는 집행부를 ‘견제’하는 곳이지 ‘길들이는 곳’이 아니다. 광주시민 누구도 집행부를 길들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을 감시하되 상황에 따라서는 같은 곳을 바라보라고 당부한다. 지금 시민의 대표라는 시의원들의 머릿속에 있는 단어는 ‘견제’인가 ‘길들이기’인가. 사뭇 그 속내가 궁금해진다. /icepoem@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