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 대표 되고 싶은 이유 뭔가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12월 24일(수) 19:10

‘지록위마’(指鹿爲馬)가 교수들이 뽑은 올해 사자성어로 꼽혔다. 사마천이 쓴 ‘사기’의 ‘진시황본기’에 나온다. 진시황이 죽고 어린 아들 호해가 뒤를 잇자 환관 조고가 실권을 잡았다. 조고는 자기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누구인지 떠보려고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했다. ‘사슴’이라고 바른말을 한 신하들은 조고에게 모함을 당해 화를 입었다. 이후 ‘지록위마’는 윗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휘두르거나 권력을 이용해 잘못된 것을 끝까지 우긴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올해는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뀐 한 해였다. 비단 정부와 여권에 해당되는 말만은 아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호남의 바른말에 귀 닫고 ‘사슴’을 ‘말’이라고 우긴 적이 많았다. 국민은 엄청난 슬픔과 혼란을 겪었지만 존재감이 없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연말에도 중요한 이슈에 눈 감고 내년 초에 치러질 당 대표 선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공부하려고 학교에 다니는지 반장하려고 학교에 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

올해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은 10%대였다. ‘제대로 된 정치’ ‘야당의 개혁’을 요구한 국민의 바람을 져버렸기 때문이다. 바람을 져버린 것 뿐 아니라 국민의 눈물도 닦아주지 못했다. 제발 정치답게 정치 좀 해달라고 통사정해도 들은 체 만 체 했다. 정당은 수권 정당을 향한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항상 보여주면서 국민의 가렵고 아픈 곳을 먼저 살펴 챙기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본 뿌리인 호남은 끝없이 추락하는 ‘실패 정치’에 할 말을 잃었다. 60년 전통의 민주당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자부하는 당원도 없다. 이제는 국민의 냉소와 경멸을 차마 들을 수가 없다. 지지해 주고 싶어도 자존심이 상해서 지지해 줄 수가 없다며 가슴 치는 이들도 있다. 하는 짓 보면 가망이 없다는 폭언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래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제대로 된 야당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모든 것을 해야 할 시기다. 해당 행위자는 물론이고 전직 당 대표나 그 누구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겉은 멀쩡해도 속에 불치병이 있으면 죽을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겉만 멀쩡하고 속은 골병이 들었는데 치료할 방법이 없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상황이 이럴진대, 당을 정체와 분열, 무기력에 빠뜨린 주역들이 다시 당권주자로 나섰다. 소위 ‘빅3 문재인·정세균·박지원’ 의원이다. 어쩌자고, 당을 어떻게 하겠다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나온 것일까.

안희정 충남지사는 당장 빅3의 전당대회 불출마를 요구했다. 전당대회가 당에 역동성과 신선함을 불어넣는 계기가 돼야 하는데 빅3가 주도하는 지금의 당권 구도는 개혁의 여건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타당한 얘기다.

그런가하면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30명도 빅3의 2·8전당대회 불출마를 요구하고 나섰다. 서명은 안했지만 불출마 요구 의원은 50%가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전 비대위원 세 분의 출마로 전대가 특정인에 의해 당이 좌지우지되고, 통합과 화합이 아닌 분열과 분파로, 감동과 혁신이 없는 당내 기득권 구조의 현실을 확인하는 자리로 변질될 것’을 걱정했다. 그렇게 된다면 당이 좌절과 분열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대를 감동과 혁신의 장으로 만들고, 잃어버린 국민들의 지지를 되돌려 2017년 정권교체의 출발점이 되기 위해서도 빅3가 구당정신을 발휘해 불출마하라는 호소는 정말 간절해 보인다.

필자가 파악해본 호남지역 여론도 빅3의 당 대표 출마에 대해 부정적이다. 빅3로는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국민의 변화 요구를 펼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관성과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당 권력에만 눈이 어두워 국민의 냉소와 호남의 분노를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욕심만 채우려는 지도자는 진정한 지도자가 아니다. 선당후사의 마음으로 올해가 가기 전에 당권 도전을 접고 새로운 인물에 기회를 줘야 한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의 호남정치의 복원을 강력히 원하는 지역민들은 호남이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고립돼 있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선명한 비전을 갖추지 않고 호남인의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개선 요구를 허투로 들을 경우 새로운 정치지형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리더는 시대의 결에 대한 감각이 중요하다. 단순한 스킬이 아니라 거대한 시대정신을 구체적인 관점에서 부단하게 되새겨보고 생각하며 국민의 호응을 이끌어내야 한다. 한국 정치에 큰 정치가의 화두, 어젠다가 실종된 이유는 계파를 위한 ‘작은 정치’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비전과 화두가 명확했다. 6·15 선언은 이전에 30년 동안 한반도 평화구상, 대중경제론 등 이러한 미래비전에 대한 분명한 화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 빅3의 미래비전, 대표가 되어야 할 분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의 정치가들에게 아쉬운 건 대담한 변화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빅3는 ‘뿌리와 근본’인 호남에서 하는 얘기를 허투로 듣지 말라. 불확실, 위기에 빠진 시대에는 시대의 결에 맞춰 과감한 리더가 필요하다. 국민은 정말 제1야당의 진정한 변화를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빅3는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결자해지 차원에서 불출마 선언 하라. 시대정신·호남정신의 정치사상에 맞추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당이 되도록, 역동적으로 경쟁하면서 ‘새로운 정치’가 춤추도록, 개인의 욕망을 접으라, 제발. 호남은 전당대회 과정에서 기득권을 내려놓는 결단, 당내 의견을 아우르는 정치력을 보고 싶다. 국민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 우기지 말라. 당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있다는 걸 잊지 말라.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