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당’이 필요하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5년 01월 14일(수) 19:16

한국 국민으로 살면서 늘 풀리지 않는 정의가 ‘정치란 무엇인가’이다. 도대체 정치인들은 아침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잠자리에서 일어날까.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왜 저렇게 밖에 못할까. 눈이 시려 관심을 끄고 싶지만, 그래도 우리 삶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정치라 옆 눈으로 보고, 곁눈으로 살펴진다. 무슨 일이든 목표와 대상이 있는 법,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정치가 국민을 이렇게 괴롭혀도 되는가 싶을 때가 한두 번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얼마나 엉망진창인지는 교수신문이 연말에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 속에 잘 드러나 있다.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선정된 사자성어로 본 정치는 오리무중(五里霧中·안개 속에 들어서면 동서남북 가리지 못하고 길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무슨 일에 대해 알 길이 없음) 당동벌이(黨同伐異·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무리의 사람을 무조건 배격) 밀운불우(密雲不雨·하늘에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하는 상태) 자기기인(自欺欺人·자신도 믿지 못하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이는 행태) 호질기인(護疾忌醫·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 충고를 듣지 않는다) 방기곡경(旁岐曲逕·바른 길을 좇아 정당하게 일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일) 장두노미(藏頭露尾·진실을 숨기려 하지만 거짓 실마리가 드러남)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고의적으로 옳고 그름을 뒤바꾸는 행위)의 지경까지 되었다.

정치가 정치답지 못하고 정치가 매듭을 푸는 게 아니라 매듭을 더 크게 만들다보니 국민은 정치 밖에서 희망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 대선 때 자연인 안철수에 열광한 것도 그렇고, 지난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후보 1위에 등극한 것도 현 정치인에 대한 강한 불만의 표현이다.

정당에 실망해서 제3지대에서 정치인을 찾으려는 노력은 대만에서도 있었다. 지난해 실시된 대만의 지방선거에서 대만의 수도 대북(臺北)시의 시장에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연출됐다. 대북시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은 유권자들의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당파 정치는 선진국에선 흔한 일이다. 아시아 쪽에선 일본이 좀 앞서 있다. 자민당의 일당독재, 민주당의 지리멸렬에 신물을 느낀 유권자들의 선택이 무당파 였다. 일본 오사카 지방선거에서 무당파 하시모토 도루가 지사에 당선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점점 기존 정당에 실망해 무당파가 늘고 있다. 오랫동안 일당 독식 상태였던 호남도 한 정당의 독점 폐해 때문에 무당파가 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틈새를 파고들어 새로운 정치세력 필요성을 강조하며 제3신당에 합류하려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전국 신당보다 호남에서 필요한 것은 진정한 ‘지역정당’이라고 생각한다. 이 지역만큼은 철저히 책임지는 지역정당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흔히 ‘정당정치는 책임정치’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전형적인 정치적 거짓말이다. 우리나라 자살율은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잘못하여 민생이 파탄 났다고 자살한 정치인 보았는가? 세월호 정국에서 책임지겠다며 국회의원직 버리는 정치인 보았는가? 국가파탄 사태에 책임지고 자발적으로 해산한 정당 보았는가? 우리 정치인들이 말하는 책임정치란 불법적이거나 부당하거나 무능한 정당이 선거에서 국회 의석 몇 석을 잃거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들은 직장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고 자살을 하는데 그깟 의석 몇 개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책임졌다고 할 수 있는가?

새로운 사회와 더 나은 삶을 바란다면 우리는 새로운 정치지형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현 정치구도에 균열을 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제1당과 제2당 중간 언저리에서 신당이란 걸 창당할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정치에 대한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새로운 정치는 정당이라는 중간 매개자를 거치지 않고 시민이 직접 의사 결정하는 정치를 필요로 한다. 그런 의사결정 방식은 이미 전 세계에서 다양한 방법들이 채택되어 널리 시행되고 있다. 이런 정치를 펼치기 위해서는 기존 정당의 적대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의사결정 단위를 작게 만들어 시민이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기에 불편함이 없는 ‘지역정치와 지역정당’이 가장 합당하다. 지역에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직접 묻고 그 의견에 따라 정치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정당이 전국에서 활성화되고 그 정당들이 연대할 때 기존 적대정치의 무책임과 무능을 극복하는 새로운 정치가 가능해진다.

이 시점에서 호남정치는 꼭 복원되어야 한다. ‘호남의 소외와 경제적 낙후 극복’ ‘ 한국 정치의 변화’를 위해 지역정당의 절실해졌다. 호남은 산업화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결과 경제적으로 크게 낙후되었고, 호남의 삶은 피폐해져 희망을 잃었다. 가난은 되물림 되어 경제 차별은 더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호남정치는 호남 낙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 지지해준 제1야당이 비전을 잃고 기득권에 안주하며 무기력에 빠져 있는 동안 호남의 피해는 더욱 커지고 있다. 호남에 ‘지역정당’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다.

만약 호남의 지역정당이 성공한다면 호남을 구할 뿐 아니라 한국정치를 바로 세우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한국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선도할 개혁정치세력으로 지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좋은 정치의 선례가 될 것이다. ‘지역당’은 지역의 조건을, 지역에 모여 사는 모두의 삶의 조건을 더 낫게,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바람의 표상이다. ‘지역당’은 문자 그대로 지역당이므로 전국적 범위가 필요치 않으며, 다만 모든 ‘지역들’의 삶에 공통되는 문제와 실천형식을 배우고 따를만한 사례의 교환학습의 필요성에 따라 연대하면 된다.

호남당, 지역정당, 아무도 가보지 않은 가시밭길이고 바람 부는 광야겠지만 정치1번지 광주에서는 먼저 시도해볼만한 역사적 과제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