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레의 시민’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강명찬 |
| 2015년 01월 20일(화)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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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조각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로 칭송되는 프랑스의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은 1884년 칼레 시(市)로 부터 작품 제작을 의뢰받는다. 550년 전 칼레시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용감한 시민들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제작해 달라는 것이었다. 전해 온 이야기에 크게 감동을 받은 로댕이 10년에 걸친 작업 끝에 내놓은 작품이 바로 ‘칼레의 시민’이다.
그러나 조각가가 그린 영웅들의 모습은 당초 시민들이 생각했던 영웅들의 모습은 아니었다고 전한다. 힘차고 당당한 모습대신 죽음을 눈앞에 두고 불안과 절망에 찬 모습으로 교수대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6명의 청동조각상! 이 작품은 후세에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상징으로 전해지면서 프랑스의 자랑이 되고 있다.
백년전쟁 초기, 막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영국군은 빠른 속도로 프랑스의 영토를 잠식했지만 북부의 항구도시 칼레 시는 끝까지 영국군에 항전한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칼레 시는 결국 항복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의 시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칼레 시는 영국 왕에게 사절을 보내 수차에 걸쳐 협상을 간청했다.
“좋다. 그러면 시민들의 목숨은 보장하마. 단 그 동안 영국을 애먹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영국왕은 시민 대표 6명을 뽑아 보내면 그들을 시민 전체를 대신해 처형하겠으며 대신 시민들은 살려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 6명이 시민을 대표해 죽어야 한다니. 누군가는 나서야 했지만 아무도 목숨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그때 칼레에서 가장 부자였던 위스타슈 생 피에르가 죽음을 자처했다. 그러자 시장과 변호사가 차례로 나섰다. 도시의 핵심 인물들이자 귀족들이 한 명 한 명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시민들을 대신해 앞자리에 다투어 나선 것이다.
6명의 대표자들은 교수형 밧줄을 목에 걸고 에드워드 3세 앞에 나가 죽음을 준비한다. 칼레 시를 대표해 죽음을 선택한 6명 대표자들의 당당한 태도는 오히려 왕의 심기를 건드렸고 왕은 당장 교수형에 처하라고 명한다.
하지만 에드워드 3세의 왕비는 고귀한 6명의 생명을 죽이게 되면 임신 중인 자신에게 재앙이 있을 것이라며 자비를 간청했고, 결국 에드워드 3세는 그들을 살려준다. 목숨을 건 용기가 적의 수장을 감복시켰던 것이다. 이 6명의 영웅적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칼레 시는 전국에 걸친 모금 운동을 벌인 끝에 예술가 로댕에게 작품을 의뢰했던 것이다. 관습적인 항복을 후대의 역사가가 감상적으로 윤색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러웠던 조각가 로댕에 의해 탄생한 ‘칼레의 시민’은 반듯한 제대도 없이 정원이나 마당 바닥에 전시되어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일깨우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부와 권력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회에 고위층이 있다는 것은 국가라는 공동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며, 그 안에 국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는 개인이 능력도 중요하지만 원천적으로 일반 대중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즉 장사로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물건을 구매해줄 소비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와 권력은 기본적으로 일반 대중으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자신이 받은 혜택에 대한 의무로 봐야 한다는 것. 2015년 새해에는 우리 스스로 사회를 통해 받은 혜택만큼 내가 사회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 이야말로 시민사회의 진정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