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가득한 산 기운이 사람 옷을 적시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118)

2015년 01월 26일(월) 19:27

山居偶題 (산거우제)
동암 이진
하늘 가득 산 기운 사람 옷을 적시고
늘 푸른 연못에는 하얀 새가 나는데
안개는 밤에 쉬다가 마파람에 부슬부슬.

滿空山翠滴人衣 草綠池塘白鳥飛
만공산취적인의 초록지당백조비
宿霧夜栖深樹在 午風吹作雨
숙무야서심수재 오풍취작우비비

구름만 비를 뿌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지개가 뜨면 비를 내릴 조짐이라고 여기거나, 안개가 푹 쉬었다가 구름을 불러 들여 비를 뿌리게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해무리가 심하면 비를 내리게 하는 징조요, 동풍이 불면 비를 몰고 올 공간을 미리 만들어 준다는 경험의 징후를 생각했을 것 같다. 짙은 안개가 걷히면 강한 햇빛을 몰고 오는 것은 정한 이치이겠지만, 그 안개가 잠시 쉬었다가 비를 몰고 온다는 시상을 일으키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하늘 가득한 산 기운이 사람의 옷을 적시네(山居偶題)’로 번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동암(東菴) 이진(李?1244-1321)으로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 백가에 박통하고 시에 능하다는 명성이 있었다. 벼슬은 검교 첨의정승에 이르렀으며, 시문에도 뛰어났다. 저서로 ‘동암집’이 있다. 충주 도통사에 배향됐으며,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하늘 가득한 산 기운이 사람 옷을 적시는데 / 풀 푸른 연못에는 흰 새가 날고 있네 // 안개가 밤에 편히 쉬었던 깊은 나무숲은 그대로인데 / (어디선가) 마파람이 불어와 비를 부슬거려 흠뻑 뿌리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산에 살면서 우연히 짓다]로 번역된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귀결을 읊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연을 흠모하면서 시상을 일으켰던 시문이 유독 많았다. 그래서 영물시를 비롯해 자연시가 많았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마파람이 불어와 비를 부슬거려 내렸다는 내용을 담았던 것이 시적인 배경이다.



하늘 가득한 산 기운이 사람의 옷을 적셨으니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내리는 이슬이나 서리가 내렸음을 그려냈다. 마치 신의 조화인 것 같기도 하고, 자연의 조화인 것 같기도 한 발상 자체를 놓치지 않았다. 풀이 푸른 연못에는 흰 새가 날고 있다는 사상 또한 자연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한 폭의 그림을 그려냈다.



화자는 이 처럼 안개가 밤에 편하게 쉬었던 깊은 나무숲은 조금도 변함없이 그대로인 것이 시적인 발상이겠다. 또한 어디서인가 마파람 한 줄금이 불어와 비를 부슬거리게 뿌렸다는 시심은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비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인다. 마파람이 불면 당연히 비를 몰고 오게 되고, 비를 뿌리면 온 대지를 적시기 때문이리라.

※한자와 어구

滿空山翠: 하늘 가득한 산기운. 滴: 적시다. 人衣: 사람의 옷. 草綠池塘: 풀이 푸른 연못. 白鳥: 흰 새. 飛: 날다. // 宿霧: 전날부터 있던 안개. 안개가 쉬다. 夜栖: 밤에 쉬다. 深樹: 깊은 나무 숲. 在: 그대로다. 午風: 마파람. 吹: 불다. 作雨: 비를 뿌리다. : 부슬거리다. 의성어.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