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너무 가난해 흔한 한 말 술도 없으니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119)

2015년 02월 02일(월) 20:02

貧女吟 (빈녀음)
임벽당 김씨

사는 곳 궁벽하니 오는 사람 별로 없고
산이 깊어 세상 선비 인적까지 드물어서
한말 술 마련 못해서 묵은 손도 떠나네.

境僻人來少 山深俗事稀
경벽인래소 산심속사희
家貧無斗酒 宿客夜還歸
가빈무두주 숙객야환귀

예나 지금이나 부귀와 재물은 사람이 살아가는 필수였다. 재상집 개가 죽으면 손님이 찾고, 막상 재상이 죽으면 손님이 끊긴다는 말에 고개는 끄덕여진다. 궁벽하면 손님이 끊어진다는 말을 실감하는 대목이다. 작가는 산 깊은 곳에서 궁벽하게 살았던 모양이다. 남편은 찾아온 손님과 정담을 나누기 마련이요, 정담을 나누는데는 한 말술은 기본이었던 모양이다. 곤드레 만드레를 생각한다. 집에 한 말 술이 없어서 묵을 손도 떠났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집이 너무 가난해 흔한 한 말 술도 없으니(貧女吟)’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임벽당김씨(林碧堂 金氏)로 조선 중종 때의 여류시인이다. 생몰연대는 알 수 없으며 별좌 임수천의 딸이다. 기묘사화 때 고향인 한산으로 돌아가 은거한 유여주의 계실이다. 시집(詩集)으로 ‘임벽당집’이 규장각과 일본인 ‘다카하시’에게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사는 곳이 궁벽하니 오는 사람은 별로 적고 / 산이 깊숙하니 세상 선비들 인적까지도 드물구나 // 집이 가난하여 한 말 술도 마련할 수 없으니 / 묵고 가야 할 손이지만 밤을 재촉해 돌아가는구나]라고 시상이다.

위 시제는 [가난한 집 아낙의 노래]로 번역된다. 선현들의 삶은 가난하게 찌든 살림살이였다. 사대부 집안은 그런대로 넉넉한 살림살이였겠지만 대부분 서민들 살림살이는 궁벽하기 그지없었다. 끼니를 이을만한 곡식이 없었고, 손님이 와도 한 말 술은커녕 한쪽박의 술도 내놓지 못했다. 시인은 궁벽한 살림살이에서 착안한 것을 시적인 배경으로 삼았다.



시인이 살았던 곳은 깊숙한 산 속에서 궁벽하게 살았던 모양이다. 사는 자체가 그러하니 집에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었다. 깊숙한 산 속에 살고 있고 있으니 세상 선비 인적도 꽤나 드물었다. 사람 사는 집에 사람이 찾아오는 것은 정한 이치다. 사람 사는 집에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화자는 인적이 드믄 현실을 통감하면서 자기 허탈에 빠진다. 집이 가난해 한 말 술도 마련할 수 없음을 탄식한다. 술은 흥을 돋구기 때문에 손님을 대접하기에 더없이 좋은 음식이다. 손님이 찾아오면 아낙들은 술부터 거른다. 그럼에도 묵어가야 할 손님이지만, 걸러야 할 술이 없으니 밤에는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음을 탄식한다.

※한자와 어구

境僻: 사는 곳이 궁벽하다. 人來少: 오는 손님은 적다. 山深: 산이 깊다. 俗事: 세속의 일. 세속 선비의 입소문들. 稀: 드물다. // 家貧: 집이 가난하다. 無斗酒: 말술을 담지 못하다. 宿客: 묵고 갈 손님. 夜: 밤이 되면. 還歸: 돌아가다. 묵지 않고 자기 집으로 가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