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야만 주는 밥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5년 02월 11일(수) 20:17

산 넘어 산이다. 호남고속철 문제로 한 달 내내 마음 졸이며 항의하고 설득하고 목 놓아 외쳤던 우리는 다시 9월 개관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특별법 때문에 똑같은 울분을 토하며 규탄하고 반발하고 있다. 광주에 오래 살다보니, 지역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악을 쓰고 울어야 ‘밥’을 주는 상황이 참 슬프다. 호남고속철 사태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 역시 지역민들이 목청껏 분노하고 성토하지만 지역민의 단체행동에만 기대는 행정적·정치적 대책이 아쉽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은 단군 이래 가장큰 규모의 문화사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단일 사업으로도 가장 큰 국책 사업이다. 국가가 조 단위의 투자를 했으니 국가가 성공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 사업의 중장기 계획을 짠 정부가 발을 빼려는 이유는 뭘까. 애초 노무현정부때 亞특법을 만들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광주법’이라는 새누리당에 왜 맞서지 않는 걸까. 몇 가지 의문을 가지고 현안을 점검해본다.

첫째, 정부의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김희범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의 사의 표명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공무원이 우선 운영해야 한다’는 답변을 한 김 차관은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야당 의견을 적지 않게 수용해 준 탓에 청와대 질책을 받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운영권 문제가 담당 차관이 사표를 낼 만큼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 문화체육관광부 핵심 사업인데도 행정자치부는 국가기관으로 하는 운영주체에 제동을 걸어 운영주체를 한시적으로 3-5년만 국가기관으로 주장했고, 기획재정부 역시 ODA자금 1% 지원은 법취지에 맞지 않다며 법안 통과를 반대하고 있다. 광주시는 거대한 국가예산이 계속 들어간다는 정부 주장 외에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지 제대로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한데, 여당과 담당 장관을 만나 도와달라고만 하는 광주시 대책은 효과가 있을까?

둘째, 새누리당의 기류를 살펴봐야 한다. 최근 새누리당 지도부 회의에서 한 의원은 ‘亞문법은 광주법’이라며 교문위에서 통과시키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한다. 이후 새누리당은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최근 문체부와의 당·정협의 후 수정안을 ‘재수정’ 하겠다고 밝혔다. 법안소위에서 여·야·정 문체부까지 합의해서 통과한 것을 무력화시키는 여당과 정부는 어떤 교감을 한 것일까. 새누리당의 이 당론은 누가 지시했으며 어떤 의도인지 지역사회는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호남고속철 사태처럼 10년 넘게 특별법에 근거해 사업을 진행했고, 이제 개관을 앞둔 마당에 국가와 국민간의 약속이 깨진다면 국책사업의 신뢰도는 어디로 가는가. 그 뒷배경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는지 살펴보고 대응해야 한다.

셋째, 새정치민주연합의 태도다. 亞문법 제정안은 노무현 정부때 ‘국가균형발전과 문화를 국가운영의 중심전략으로 하는 광주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을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마련됐다. 당시 아시아중심도시 조성은 한나라당의 요구에 따라 2026년 12월 31일까지 한시적 유효기간을 정해 추진됐다. 이 사업의 명백한 의제는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국책사업의 장소를 광주로 한 것이며 5·18정신을 살려 아시아문화의 중심을 한국으로 끌어당기기 위한 중요한 국가 프로젝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광주의 박주선·박혜자 의원의 개인적인 목소리에만 의존한 체 당론으로 맞서지 않고 있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새누리당과 당 대 당 협상을 해야 할 중요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골든타임을 놓친 채 새누리당에 끌려다니고 있다. 문재인 대표와 지도부는 2월이 가기 전에 대통령을 면담해 이 문제를 적극 풀어야 한다.

넷째, 亞특법이 표류하고 있는 상태에서 광주 동구 국회의원인 박주선 의원이 중요한 팁을 제공했다. 그는 9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부터 ‘특별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현행법에 따라 국가기관으로 운영하겠다’는 정부의 공식답변을 받아냈다. 어쩌면 이것이 정답인지 모른다. 원래 존재하는 특별법대로 하면 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현행법상 문체부장관 소속기관으로, 법 개정 없이는 법인에 위탁할 수 없으며 문체부의 고유 업무로 개관을 준비해야 한다. 정부 기관이 법 개정을 전제로 개관 준비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다. 지금은 현행법에 따라 9월 4일 개관을 위해 전당 운영에 필요한 각종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이 제정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광주의 직무유기’다. 이 사업이 전개된 것은 10년이 넘는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일이 발생해도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의 지원을 못 받고 있다. 소위 ‘광주법’이란 오명을 들어도 전국의 문화예술인이나 외국인이 광주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은 외연을 확대하지 못한 지역사회 책임이 크다. 사업 진행 10년이 넘었지만 문화를 중심에 둔 국가균형발전의 모델이자 미래형 도시발전의 비전을 폭넓게 제시하지 못해, 다른 지역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아시아문화전당의 뿌리 속에 ‘민주화의 성지’라는 역사성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문화예술의 족적을 새롭게 써야할 사명과 책무를 방기한 것이다. 새로운 시각의 강력한 추진체가 필요해 보인다.

단언컨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국가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책임지고 계획을 세워 운영해 아시아 최고 전당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정부는, 어떻게 이 전당을 세계 최고의 문화충전소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할 때지, 운영을 국민에게 떠넘기려는 꼼수 부릴 때가 아니다. 정부와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은 5조짜리 이 거대 국가사업의 품위를 지켜주기 바란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