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보듬는 문화성장’ 장기 발전전략 필요하다 문화수도 광주 문화시대 열자 <7>비엔날레·아트페어 등 미술계 점검 걸개그림 ‘세월오월’ 전시 놓고 검열 폐단 등 논란 아트페어도 주관·예산 들쑥날쑥 행사 치르기 급급 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

2015년 02월 15일(일) 20:20

“광주비엔날레 개혁하라” 광주비엔날레 창설 20주년 기념 특별전에서 홍성담 작가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이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작품 전시가 유보되자 광주지역 미술인 50여명이 지난해 8월18일 오후 광주비엔날레전시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엔날레재단의 개혁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펼쳤다. /광주매일신문 DB

광주는 예술 중에서도 미술계의 활약이 돋보이는 고장이다. 그 중심에는 광주비엔날레 등 미술 관련 대규모 행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지역미술의 소외’라는 화두가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다. 광주비엔날레의 성과이지, 광주 미술판의 성공은 아니란 푸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아트 페어 등 다양한 미술행사가 광주에서 열리곤 있지만, 광주 미술과는 관계없다는 비난도 흘러나온다. 광주는 예술 관련 행사 개최지에만 머물러 있을 뿐, 그 행사가 배출한 스타예술인이나 작품은 거의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단언이다. 지역의 미술과 이렇듯 불통의 벽이 쌓인 대규모 미술행사들이 앞으로 잘나갈 수 있을까. 또 광주문화중심도시 조성과 그 맥을 같이 할 수 있을까. 반드시 살펴봐야 할 문제다.

◇‘지역’ 없는 성장 반드시 한계 올 것

지난 5일 광주YMCA에서는 ‘광주비엔날레의 발전적 재도약을 위한 미술인 공청회’가 열렸다. 조직 안팎의 혁신을 작업 중인 광주비엔날레에 지역미술계의 목소리를 담고자 열린 자리였다. 십수 년 전부터 줄기차게 쏟아졌던 ‘광주비엔날레와 지역미술과의 상생’이란 주제 속에서 진행된 공청회에선 다소 눈길을 끄는 명쾌한 발언이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부산 출신 감독들을 기용해달라는 소리가 안나오는데, 광주비엔날레에선 유독 광주 작가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아 힘들었고 이해할 수 없었다는 전직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의 얘기를 듣고 며칠동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죠. 광주비엔날레라는 것이 그동안 이런 철학으로 진행돼왔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발언이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고, 이런 전개방식으로 광주비엔날레가 그동안 성장하고 성공했다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쓴소리다. 그는 광주와 부산이라는 지역적 공간의 태생이나 특성, 영화와 미술이란 예술장르의 차이점, 비엔날레와 영화제의 다름을 전혀 고민해보지 않은 듯한 전직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의 푸념에 ‘현재 광주비엔날레의 문제점이 총망라돼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또 “광주 작가들의 작품적 수준을 운운하며 광주비엔날레가 세계 정상에 있음을 자랑하는 관계자들도 봤다”며 “그래서 그들에게 광주비엔날레의 작품론이나 작품 질을 따지는 기준과 철학 등을 제시해달라고 했더니 답을 주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고민도 없이, 지역이라는 공간과 의미를 터부시하면 그 성장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게 박 교수의 조언이다.

펼쳐진 ‘세월오월’ 광주비엔날레 창설 20주년 기념 특별전에서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작품 전시가 유보되자 참여작가와 지역 예술인들이 지난해 8월8일 오후 금남로 옛 전남도청 분수대에서 걸개그림을 들고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광주매일신문 DB

◇‘세월오월’ 사태로 빛바랜 광주 미술

거슬러 올라가 지난해 말, 광주에서는 다시 꺼내 되새기기도 싫은 예술적 사건이 터졌었다.

광주비엔날레는 지난해 창설 20주년을 맞아 본 행사 개막 전부터 1900년대 이후 전 세계의 민중미술을 조명하는 ‘달콤한 이슬-1980 그 후’를 특별전으로 기획했다. 이 전시에서 80년대 대표적인 민중미술 화가인 홍성담씨는 80년 5월 당시 광주 시민군이 세월호 희생자를 구하는 모습이 담긴 걸개그림 ‘세월오월’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림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해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 “국비를 받아 기획한 행사에서 공공기관인 시립미술관에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을 걸 수 없다”는 광주시 입장은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불렀다. 사태가 커지자 이용우 비엔날레재단 대표가 사퇴했다. 사태는 작가 스스로 전시를 철회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광주비엔날레는 ‘세월오월’ 논란으로 씻을 수 없는 큰 오점을 남겼다. 후진적 검열의 폐단과 행정·기획력의 총체적 부실을 드러내며 ‘현대미술의 최첨단 현장’라는 명성도 치명타를 입었다. 이로써 광주비엔날레는 지난해 9월5일 개막해 66일간의 일정을 소화하며 관람객 급락과 혹평 등을 뒤로 한 채 쓸쓸한 폐막을 맞아야 했다.

◇비엔날레, 혁신·소통으로 상처 씻기

이를 계기로 광주비엔날레는 자의반 타의반 혁신의 칼을 들었다. 20년 세월에 걸쳐 세계 5대 비엔날레라는 국제적인 위상을 차지하면서도 정체성 혼란과 지역 미술계와의 소통 부족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했던 광주비엔날레가 재단 전반의 개혁을 시도한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진행되고 있는 광주비엔날레 혁신 작업은 ▲예산과 독립성 확보 ▲지역민·지역미술인들과의 소통·홍보 강화 ▲전문인력 양성 ▲정체성 탐구 등을 중심으로 이제 막바지에 달했다. 재단 안팎을 진단 중인 혁신위원회는 오는 24일 최종 시민공청회를 열고 26일 최종 혁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사실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지, 지역미술계와 지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혁신안이 나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혹독하게 성년식을 치른 광주비엔날레가 이제라도 광주정신을 보듬고 지역 미술인과 함께 세계적인 비엔날레로 재도약할 수 있을지, 커다란 과제로 남아있다.

◇‘그 때 그 때 다른’ 아트페어 주소

광주 미술계에는 뿌리도 없이 표류 중인 문제아가 하나 있다. 바로 ‘아트광주’다.

아트광주는 광주시가 지난 2010년부터 광주비엔날레와의 연계를 통해 지역미술 활성화를 도모해보겠다며 시작한 아트 페어다.

하지만 이 아트광주는 해마다 주관처와 컨셉, 정체성 등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지역미술 활성화라는 애초 목표의 발끝에도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아니, 지역미술을 소외시켜 광주미술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아트광주 주관 단체는 지난 2010년 광주비엔날레재단, 2011-2012년 광주문화재단, 2013-2014년 한국미술협회로 각각 선정되는 등 해마다 달라졌다. 특히 한국미협이 주관처일 때 지역미술 소외문제를 놓고 광주미술협회와 갈등이 일기도 했다. 광주시는 올해 아트광주 주관처도 한국미협과 광주미협 등을 놓고 아직 검토 중이다.

이처럼 주관처가 그 때 그 때 달라지다보니 해마다 행사를 치르기에만 급급했다. 해마다 예산이 들쑥날쑥하고 인력이 주관처에 따라 바뀌다보니 장기계획이나 정체성 따위는 논할 여유조차 없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아트광주 작품 판매액은 2010년 42억원에서 2011년 15억원, 2012년 10억원, 2013년 11억8천만원, 2014년 10억원으로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상설기구나 전문인력 시스템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지역 자생 돕는 문화적 인식 절실

광주비엔날레나 아트광주의 문제를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지역과의 연계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하루 이틀 전에 튀어나온 문제가 아니다. 20년 전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지역을 보듬는 문화 성장’에 대해 끊임없이 논해왔다.

그런데 왜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매번 대규모 미술행사 때마다 갈등요소로 등장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투자한 만큼 바로 결실을 얻으려는 비문화적 시선으로 지역미술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무슨 행사든 해당 주관처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준비된 시스템이 많은 서울이나 해외를 찾게 되고, 그 셈을 감추기 위한 핑계거리로 ‘왜 꼭 지역이어야 하느냐’는 의구심을 병행하는 것이다. 지역을 촌스럽고 느려터진 곳이라고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 뒤엔 사실 비문화적 결실주의가 감춰져 있는 것이다.

문화 성장은 공장을 돌려 일궈내는 산업화와 다르게 느리다. 투자하고 기다려야 하는, 장기계획의 것이란 말이다. 그곳이 지역이라면 그 속도는 더 느릴 것이다. 그래서 자식을 기르는 마음으로 애정과 책임감을 가져야만 지역에서의 문화뿌리 내리기는 가능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뿌리 내린 문화는 웬만한 비바람엔 끄떡없는 강단진 자산이 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광주가 바라는 진정한 문화도시, 제대로 된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풍광일 것이다./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