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기애애한 설 명절 됐으면… 김한필 |
| 2015년 02월 16일(월) 18: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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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9일은 설날이다. 올해는 공교롭게도 설날과 우수(雨水)가 한날이다. 설날이 날씨가 풀리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새싹이 난다는 우수여서 그런지 마치 봄이 가까이 와 있는 느낌이다.
1895년 일제는 을미개혁을 단행, 역법을 개정하여 태양력을 사용토록 하고 양력 1월1일 설(신정)을 쇠도록 고종으로 하여금 조칙을 내리게 했다. 해방이후에도 정부는 지속적으로 양력설을 쇠도록 강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음력설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문화, 국민 정서는 음력 1월1일이 우리 민족 고유의 설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정부도 어쩌지 못하고 1989년부터는 설 전후 3일간을 휴일로 제정함으로써 음력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설은 시간적으로는 한 해의 시작일이다. 그래서 설날을 원일(元日)·원단(元旦)·원정(元正)·원신(元新)·원조(元朝)·정조(正朝)·세수(歲首)·세초(歲初)·연두(年頭)·연수(年首)·연시(年始)라고도 하는데 이는 한 해의 첫날임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신일(愼日)·달도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새해 벽두부터 한 해를 삼가며 조심스럽게 살아가자는 다짐의 의미가 배어있다.
요즘은 많이 간소화되었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설이 닥쳐오면 설맞이 준비로 집안이 부산했다. 떡국을 쑤기 위해 가래떡을 뽑고 찹쌀로 인절미와 쑥떡을 빚고 엿과 산자, 식혜와 수정과도 장만했다.
각종 어물과 과일도 마련하고 귀한 쇠고기 몇 근에 돼지고기는 좀 푸짐하게 사고 닭도 몇 마리 잡았다. 식구들이 먹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특히 설날 손님들이 세배를 오면 세찬(歲饌)을 대접해야 했기 때문이다. 연로하신 어른이 계신 집안은 세배객이 많아 다른 집보다 음식을 더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명절이 되면 제일 기다려지는 건 아무래도 친척들이다. 분가하지 않은 자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분가를 했어도 부모님이 살아 계시면 설을 같이 쇠기 위해 부모님이 계신 큰댁으로 찾아왔다. 그러니 설이 되면 집안이 갑자기 북새통이 되었다.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부모님이 사주신 새 옷을 입고 웃어른들께 세배를 한다. 그리고 산소를 찾아 성묘를 마치면 잠시 집에 들렀다가 다시 동네를 돌며 어르신들을 찾아 세배를 드린다. 물론 세뱃돈도 받고 음식은 배가 미안할 정도로 먹는다. 이것이 설날 일과였다.
지금도 설이 돌아오면 어쩐지 조금은 설레는 기분이 든다. 아마 어렸을 때, 아니 상당히 나이가 들어서도 설을 쇠기 위해 찾아오는 식구들을 기다리던 기억들이 뇌리에 잠재되어 있어서 인지 모르겠다.
평상시 잊고 지내다 명절이 되면 이상야릇하게도 친척(親戚)들이 그립고 기다려지는 건 왜일까. 친척이라고 할 때의 친자는 설립(立) 아래 나무목(木)을 쓰고 옆에 볼견(見)을 붙였다. 친(親)이란 한양에 갔다 돌아오는 아들을 기다리다 지쳐 어디쯤 오고 있는지 더 멀리 보려고 나무 위에 올라서는 부모의 심정을 나타낸 글자라는 설문(說文)이 있는데, 이런 친(親)의 마음이 내 가슴에도 조금은 내재되어 있는 것인가.
齊(제)나라 때 왕손가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하기를 “네가 아침에 나가서 늦게 오면 나는 곧 집 문에 의지하여 네가 오는지 바라보고 서 있다”고 했다. 여기서 생긴 고사성어가가 ‘의문지망(倚門之望)’이다. 잠시라도 자식이 눈에서 벗어나면 걱정이 되는 부모의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자신도 타향에서 신고(辛苦)를 겪지만 고향의 부모를 그리는 자식의 정을 가리켜 ‘망운지정(望雲之情)’이라고 한다. 당나라 적인걸(狄仁傑)이 부모와 멀리 떨어져 타지에 있을 때 마침 산에 올랐는데 한 조각 흰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걸 보고 “우리 부모님은 저 구름 아래 살고 계시겠지”하고는 부모님 생각으로 비탄에 잠겼다는 데서 나온 고사성어이다.
고향에 있는 부모는 타향에서 고생하는 자식을 보고파 애타게 기다리고, 객지에 사는 자식은 고향에서 적적하게 지내시는 부모님을 한없이 그리워하는 것은 천륜지정이다. 부모자식 간, 친인척 간의 이런 간절함과 애틋함이 녹아내리는 날이 설 명절이다.
올 설은 다른 해와 달리 5일의 긴 연휴여서 그런지 귀성객이 지난해보다 15.7%가 많은 3천354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분의 2 가량이 이동하는 셈이다. 서로 간 쌓인 회포도 풀고 화목도 다지면서 화기애애한 설 명절이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