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바타, 아빠다. 서기원 |
| 2015년 02월 22일(일) 1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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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avatar)’는 산스크리트어 ‘아바따라(avataara)’에서 유래했다. ‘내려오다’라는 뜻의 ‘ava’와 ‘아래’를 의미하는 ‘ta’의 합성어로, 신의 나라로 불리는 인도의 경우 대다수 사람들이 힌두교를 믿는데, 다양한 신들의 집합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하튼 이런 신들이 하늘에만 있으면 심심하기 때문에 때론 대리인을 지상으로 보내는데 이를 ‘아바타’, 즉 분신(分身)이라한다. 이것이 인터넷의 보급으로 게임이나 채팅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그래픽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되어 그야말로 ‘1인 1아바타’ 시대가 도래했다.
점잖고 교양있는 사람도 사이버라는 가상공간에만 들어가면 살벌한 싸움꾼, 비열한 음모가, 음란한 호색한이 되고는 한다. 도대체 현실에서 천사 같이 웃고 있는 그가 본모습인지, 사이버 상에서 악마 같은 표정을 지으며 죽음의 댓글을 달고 있는 아바타가 본모습인지 헷갈린다. 컴맹 수준인 나지만 인터넷 고스톱 게임은 즐기는데, 내 아바타 이름은 ‘쭈쭈바’다. 그냥 아이스크림을 좋아해 그렇게 지었는데 음탕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셔서인가 자꾸만 수작을 걸어온다. 그래서 이왕이면 더 큰 고객만족을 드리고자 ‘왕쭈쭈바’로 개명했다.
영화 ‘아바타’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외화(外畵) 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인데 ‘이모우션 캡쳐’라는 획기적인 컴퓨터 그래픽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가상이지만 현실과 같이 생동감 넘치는 영상이 압권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이 떠오른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는데, 잠이 깨니 인간인 나였다. 도대체 인간인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인간인 나로 변해 있는 것일까”라는 다분히 철학적(제물론)인 내용인데, 카메론 감독도 아마 장자를 탐독한 것 같다. 영화 곳곳에 메타포(은유)를 깔아 놓았는데, ‘판도라’라는 의미심장한 행성이름과 그곳에 살고 있는 종족 이름이 바로 ‘나비(nabi)’다. 장자가 꿈을 매개로 나비가 되었듯 주인공이 아바타 프로그램(MRI판독기 같음)을 매개로 나비족 전사로 탈바꿈하고, 나비가 훨훨 날 듯 ‘아크란’이라는 시조새를 타고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나비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북경에서 나비가 날개 짓하면 뉴욕에서는 폭풍이 분다는 것인데 카오스이론을 설명한 것으로 초기 조건이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가 상당히 다르게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날개 짓하는 것이 나비 하나만이 아님에도 왜 굳이 나비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가령 하루살이의 날개 짓이 훨씬 처절할 것임에도 ‘하루살이 이론’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 장자에 대한 오마주(존경) 아닌가 싶다.
요즘은 ‘아바타’가 대세다. TV 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이 아닌 연예인 2세들의 활약이 대단하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토크쇼에 게스트로 얼굴을 내미는 수준이었다가 급기야 그들이 주인공이 되고 부모가 조연이 된 느낌이다. 광복절도 아닌데 동네방네에서 ‘대한-민국-만세’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그램 제목으로 보았을 때 육아를 하는 아빠들의 어려움을 리얼하게 어필하려는 컨셉이었을 법한데,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아이들이 귀엽냐, 웃기냐에 따라 아빠들의 주가도 오르락내리락, 예전에는 ‘주몽’의 송일국이였다면 이제는 ‘삼둥이’ 아빠로 기억할 뿐이다. 젊은 사람들은 아이 낳는 것을 기피하고,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아이 키워주는 것을 기피하는 분위기인데 TV속 생판 모르는 남의 애들한테 열광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나에게도 자식들이 있다. 격세유전이라고 했던가. 헐레벌떡 들어오면 신발 한짝이 위로 올라타서 ‘시옷자’ 모양을 하고, 반가사유상처럼 한발만 가부좌 하듯 올리고 자는 모습에서 나와 똑 닮음을 보고 소름이 돋는다. 분명히 나의 분신, 나의 아바타이건만 말은 더럽게 듣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의 아바타였을텐데, 시간이 흐르면서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내가 존재했던 이유, 앞으로 존재해야할 이유 말이다.
잠들어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속삭여 본다. “아바타, 아빠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