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김원석 광주시립민속박물관장

2015년 02월 26일(목) 19:23

우리나라에서 양력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대한제국시절인 1895년이다. 그해 9월9일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음력 11월17일을 양력 1896년 1월1일로 삼겠다고 공표하면서부터다. 이렇게 해서 우리 역사상 1895년은 양력사용 외에 2개의 진기한 기록을 더 세운 해로 기억된다. 하나는 같은 해에 새해를 두 번 맞이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음력 1895년 11월17일부터 12월31일까지 45일간이 송두리째 사라진 사건이다.

어떻든 이후 양력은 모든 공적인 삶의 중심에 놓이게 됐다. 일주일과 공휴일의 개념도 이때부터 생겨났다. 반면 음력은 차츰 우리네 삶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음력이 쉽게 자리를 내준 건 아니다. 사주팔자와 택일, 밀물과 썰물의 결정 등에서 여전히 음력은 중요한 시간표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양력의 대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늘날 달력에서 음력날짜는 양력날짜 밑에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표시된다. 그만큼 그 위상이 낮아졌다는 의미다. 덩달아 음력에 맞춰 세던 많은 절기와 명절도 예전만큼 큰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월대보름은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음력명절이다. 예전 대보름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중요한 명절이었다. 양력사용이 공표된 뒤인 1900년대 초반까지 관공서에서는 대보름을 전후로 며칠씩 공식휴무에 들어갈 정도로 그 의미가 컸다.

일상생활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마을마다 한해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고 장승과 솟대 세우기, 지신밟기 등 의례를 행했고 줄다리기 등 각종 민속놀이도 끊이지 않았다.

1920년대 초엽까지 광주시내에서도 매년 이맘때면 주민들이 광주천변에 모여 줄다리기를 했다. 줄을 만드는데 수십일, 참여한 인원만 수천에 달했다. 비용도 적잖게 들었다. 이를 위해 집집마다 십시일반 찬조금을 냈고 부호들도 기꺼이 주머니를 털었다.

이렇게 만든 줄의 길이만 100여 자에 이르렀고 줄다리기는 음력 2월초하루까지 이어졌다. 그 광경이 워낙 장관이라 인근지역 주민들도 한달음에 수만명씩 모여들었다. 운집한 구경꾼들은 지금의 광주공원이 들어선 성거산 중턱에 앉아 그 아래 천변에서 펼쳐지는 광주줄다리기를 관람했다. 당시 광주시내 인구가 1만명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구경꾼만 수만이었다는 말은 이 행사가 실로 메가톤급 이벤트였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대보름을 성대하게 쇤 것은 그 의미가 다른 명절과 남다른 데 있었기 때문이다. 설, 한식, 단오, 추석 등 우리에겐 명절이 많지만 유독 대보름만이 지닌 특징이 있었다. 이웃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의 단결에 초점을 맞춘 명절이란 점이 그것이다. 이날 사람들은 문밖에 음식상을 차려놓곤 했는데 이는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의 발로였다. 상인들조차 대보름은 특별했다. 지난해 밀린 빚이 있더라도 이날까지는 빚갚기를 독촉하지 않았다. 대보름은 이처럼 이웃사람과 대동의 정신을 구현하는 명절이었던 셈이다.

올해 대보름은 양력 3월5일이다. 그런데 하필 목요일이다. 시민 모두가 한데모여 대보름에 깃든 대동단결의 의미를 되새기기에는 다소 어정쩡한 날이다. 그래서 광주시립민속박물관은 나흘 앞당겨 3월1일 일요일에 박물관 야외마당에서 ‘빛고을 정월대보름 한마당’을 개최한다.

광주공동체의 대동단결과 번영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시작으로 시민 누구나 참가하는 민속놀이 경연, 줄다리기 등 다채로운 행사와 공연이 온종일 이어진다. 대보름에 깃든 나눔의 정신을 구현하고자 모꼬지, 즉 음식 나눔 행사도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난해 달이 머문 집을 태워 새로운 보름달을 맞이하는 달집태우기와 강강술래로 행사의 대미를 장식한다.

시민 모두가 대보름의 의미를 되새기며 신명나는 을미년 한해가 되기를 함께 기원해보는 이번 행사에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