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당신에게 집중하렵니다 김혜민 변호사

2015년 02월 26일(목) 19:23

최근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김혜민 변호사님 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신가요.”

“아. 저는 설명해도 아마 모르실텐데요. 저희 모임에 변호사님을 함께 하는 분으로 초대하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내용인즉 그 모임은 25명에서 30명 정도로 구성된 모임으로 구성원은 국회의원, 변호사, 교수 등이 있고 편안한 모임인데 혹시 괜찮다면 사무실로 찾아가서 모임에 대하여 설명하고 싶다는 취지였다. 필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말하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나 사실 필자가 고민 없이 그렇게 답을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상대방은 필자를 알고 전화를 걸어 본인의 용건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본인이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밝히지 않았다. 대화 중에 필자가 다시 한 번 물어보았는데도 같은 취지로 대답하였다. 반면 그 모임 구성원에 대하여는 직업을 나열하며 설명을 하였다. 필자는 그 짧은 통화에서 경솔한 판단이었을지 몰라도 필자가 함께 할 모임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사실 필자가 현재 참여하고 있는 모임을 굳이 따지자면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 유독 친한 10명 남짓의 친구들과의 끈끈한 모임과 친한 지인들로 이루어진 따뜻한 모임, 한 달에 한 번씩 갖는 인문학 모임 정도다. 모두 영업을 위한 모임도 아니요, 그런 모임을 통해 사건을 수임한 적도 없다. 그렇다고 골프를 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살고 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퐁당퐁당 식으로 하루걸러 야근을 하고, 야근을 하지 않는 날에는 집으로 곧장 와서 저녁 먹고 지친 몸을 쉬기 바쁘고, 그나마 필자에게 쉼이라면 피아노 연주, 문화생활, 가족과 친구들, 직원들과 함께 하는 소소한 시간들이다. 맨 날 그렇게 살면 뭐가 달라지냐고 필자에게 한소리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필자는 지금 이 정도의 일, 인간관계, 생활패턴으로도 너무 벅차고 충분히 행복하다. 또한 필자의 능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인데, 이는 비단 시간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서로의 희로애락을 진심으로 함께 하는 끈끈한 모임 두 세 개면 충분하고, 나머지 열정은 일을 통해 만나는 의뢰인들에게 쏟기에도 벅차다. 그러다가 오늘처럼 이미 사건이 종결된 의뢰인이 지나가다 들렸다고 올 때면 그저 고맙고 행복하다. 잘 사는 줄 알았던 의뢰인이 사무실을 갑자기 방문하니 필자는 놀라서 “무슨 일 생겼냐. 양육비는 잘 받고 있느냐”라고 물었는데 도리어 의뢰인은 배시시 웃으며 답한다. “아니, 아무 문제없어요. 그냥 지나가다가 생각나서 들렸어요. 이거 주고 가려고요” 하얀 스티로폼 박스 안에 담긴 빨간 딸기를 건네받으면서도 안심이 되지 않은 필자는 다시 한 번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리고 그 의뢰인이 돌아간 뒤 예전에 그 의뢰인과 함께 했던 시간이 문득 떠올라 싱긋 웃음이 나왔다. 출근하면 필자보다 먼저 대기석에 앉아 있고 필자와 함께 아이 이야기를 하다가 울기도 했던 의뢰인이었다.

몇 년 전에 의뢰인이었던 분은 오늘 연락을 주셨다. 설을 맞이해서 변호사님 생각나서 연락드렸다고 잘 지내고 계시냐고 말이다. 이 얼마나 고마운가.

이처럼 필자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 설령 모임을 여러 개 하고 정신없이 영업을 하고 다닌다 하더라도 필자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다 아끼고 챙기거나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환영 받으며 사랑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럴 바엔 지금처럼 살되 필자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욱 집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