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산하 눈물로 기록하다 류재준 박사의 책으로 세상읽기 징비록 (유성룡저·이재호 역) kjdaily.com

2015년 03월 01일(일) 18:25

조선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절대절명의 국란의 위기를 맞이한다. 국가의 통치체제와 기강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위정자들의 무기력한 모습 속에서 백성들은 절망 속에 죽음을 맞이한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이 발생 전후의 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전란의 중심에서 총지휘관 역할을 했던 류성룡이 지난 전란을 회고하고 반성해 뒷날의 근심이 없도록 삼가하고자 쓴 아픈 역사에 대한 피눈물의 기록이다.

서문에 ‘임진왜란은 너무나 참혹했다. 수십일 동안 삼도(한양, 개경, 평양)를 지키지 못하고 팔도가 산산이 무너져서, 임금께서 피란했는데, 그러고서도 오늘날이 있게 된 것은 하늘이 도왔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왜는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통일된 후 명나라를 치기 위해 길을 빌려달라는 명분 하에 1592년 4월14일 왜군 16만명을 동원해 조선을 침략한다. 이후 부산성이 무너지고 동래성 함락(4월15일), 상주함락(4월25일), 충주함락(4월28일), 한강방어선 붕괴(5월2일)되고 곧바로 왜군은 한양에 무혈입성한다. 이처럼 속절없이 일방적으로 패배한 이유는 군사체계가 일시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임란당시 조선의 방비책은 제승방략(制勝方略)으로 왜군이 침략해 오자 경상도 지역의 관군들이 대구에 집결하여 전열을 재정비하기로 미리 약속된 상태였지만 한양에서 내려와 지휘할 장수를 기다리다가 급박한 상황변화로 군사들이 흩어져 반격할 시간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신립이 이끄는 8천여 군사들이 탄금대에서 패배하자 선조는 4월30일 도성을 버리고 피난길을 나선다. 이후 명나라의 참전으로 전쟁의 양상은 급변하기 시작한다. 평양성에서 조·명연합군의 승리, 벽제관 전투에서 패배, 수군의 연전연승, 의병들의 봉기, 행주산성에서 승리 등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서 점점 왜군이 밀리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왜는 강화협상에 주력하면서 남해안 지역으로 후퇴하여 주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명과 왜의 강화협상이 결렬되면서 다시 전운이 감돌고 1597년 정유재란이 시작된다. 임진왜란 당시 다른 지역에 비해 피해가 적었던 곡창지대 전라도가 전란에 휩싸여 남원성이 피로 물들고 전주성이 함락된다. 류성룡의 천거로 전라좌수사가 된 이순신은 원균이 칠천도에서 패전하자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로 기용된다. 이때 왜는 본국으로 철수하고자 울산·사천·순천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순신은 명나라 수군과 연합해 순천에 있던 소서행장의 퇴로를 차단하고 최후의 일전을 준비한다. 안전한 철수를 요청하는 왜군에게 이순신은 ‘이 원수는 결코 놓아 보낼 수 없다’며 거절해 노량해전에서 크게 승리하지만 애석하게 전사한다. 이순신이 전사한 그날 운명처럼 류성룡 역시 영의정에서 파직당한다. 이로써 핏빛어린 7년 전쟁이 끝난다.

불행하게도 임진왜란과 6·25전쟁의 종식 과정은 매우 유사하다. 조선은 왜와 강화협상에 강력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참여하지 않는다. 남한정부 역시 북한과 휴전을 반대하고 있어서 서명에 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화조약과 휴전협정은 성립됐다. 전쟁시 주변국에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약소국의 비참함을 느끼게 한다.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318년 지나고 류성룡이 그토록 경계하고자 했던 치욕의 아픔을 되풀이하는 경술국치(1910년)라는 또 다른 비극을 맞이한다. 징비록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한번 뼈아픈 교훈을 되새겨 본다.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