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난 풍경들이 모여 만든 파라다이스…삶의 편린에서 현실을 보다 박종석 화백의 화필여로 <34> 神들의 나라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광장의 해찰 스케치 kjdaily.com

2015년 03월 04일(수) 19:04

박종석 作 ‘제우스 신전’

해양 국가이자 신화의 도시, 그리스 아테네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약간은 무심한 듯하다. 터키인들의 친절함과 그리스인들의 무표정이 대조가 된다. 두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절대적 앙숙관계다. 역사적 갈등의 누적으로 생긴 감정이지만 그리스의 고대 철학이 서구 유럽문화에 시원(始源)이라는 자긍심이 바탕에 깔린 듯하다.

토요일 아침의 거리는 왠지 스산한 분위기이지만 아크로폴리스 언덕이 올려다 보이는 광장은 수많은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하다.

고교 시절 역사시간에 공부한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던 소크라테스와 악처가 저절로 떠오른다. 거대한 석축과 돌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아테네 고대 건축물은 지금도 학문적 담론의 설전(舌戰)이 들리는 듯한 착각을 전해준다.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에게해를 배경으로 오페라 광장을 내려다보며 유적 현장을 스케치한다. 암반 언덕 옆의 따뜻한 돌무더기 위에 나른하게 누어서 낮잠을 자는 견공(犬公)도 자기 자신을 알 듯 철학적으로 보인다. 전 시가지가 360° 관망되는 정상에서는 그리스 국기가 역동적으로 휘날린다.

세계를 이성화하고 실체화했던 그리스 문화는 서구 세계를 형식화하며 자신들의 문화 창조를 통해 자연의 진화를 이해한 민족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제시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와 명료성을 일체화시켰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이념은 실체와 형식과 내용을 중시하면서 인간의 힘이 미칠 수 없는 곳에서는 하느님이나 이데아를 끌어들였다. 그러나 동양은 과학에 기초하지 않고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여기고 초월적 우주관으로 마음의 깨침, 유불도(道), 기(氣), 허공(虛空) 등 보이지 않는 추상적 세계관에서 본질을 파악했다. 이것이 동·서양 문화와 역사의 확연한 차이점이라 생각되어진다. 일반적인 관점이지만 잠시 그리스 철학자 흉내를 모방해 본다.

정오가 지나 언덕 아래의 아고라 박물관에서 오래된 유물들을 관람한다. 지하도의 유물을 발굴한 자리에 그대로 보존하며 시민들의 활동공간으로도 편리하게 이용한 보존방식과 합리적인 도시계획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는 아파트 공사나 도시계획에서 공무원들의 권위와 관념적 사고 및 시공자들의 이익을 위해 전통유물 보전보다는 옮기거나 뜯어고치면서 유실하거나 현대공법으로 바꾸는 것이 다반사이다. 유신정권의 경제개발 정책에서 오로지 ‘잘 살아보세!’의 스피커 외침 제일주의가 목표였기에 전통문화의 거시적 안목은 매장될 수밖에 없었다. 정신문화이자 생활역사의 상징인 그 많은 한옥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싶다.

‘아크로폴리스’

이제야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세계 관광객들은 뉴욕 맨하탄과 동일한 서울의 고층빌딩 숲보다는 그 나라만의 전통문화를 보고 싶어할텐데 하는 아쉬움이 순간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고색창연한 아크로폴리스 광장과 즐비한 카페 및 상점 골목은 유럽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그 틈 사이에서 봇짐장사를 하는 흑인들은 경찰관의 단속을 피해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내며 하얀 치아가 보이도록 웃으며 이리저리 힘겨운 숨바꼭질을 벌인다. 삶의 투쟁이자 약자의 설움은 그들만이 절실하게 느낄 뿐이다.

그 옆에는 페루 음악가 3명이 자기들만의 고유 전통악기로 흥겹게 연주한다. 바라만 봐도 저절로 신바람이 나는 시간이다. 몇 년 전 여행했던 중남미 안데스 산맥의 기운이 서린 인디오들의 낯익은 선율은 나의 주머니 속 유로를 쉽게 감상료로 자진 납부하게 한다.

여유와 품위를 지키며 항상 미소를 짓는 얼굴선 굵은 그들의 낙천적인 모습에서 ‘하루살이 인생들아! 욕심 부리지 말고 노래하며 작은 것에 만족하고 즐겁게 웃고 살라’고 언질(言質)을 주는 것 같다. 이후 가까운 반경 안에 있는 제우스 신전에 도착해 몇 개 남은 큰 석주(石柱)와 철조망 쳐진 광장에 쌓인 유물들을 스케치하고 바로 옆의 국립공원 전시장을 둘러본다.

다음날은 행인들에게 물어서 숙소와 꽤 거리가 먼 리카비또스 언덕인 바위산에 오른다. 높이 298m로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광장과 호응해 자리 잡고 있으며 시가지를 전체 관망할 수 있는 곳이다. 종교적 순결을 상징하듯 백색으로 칠한 성당과 종탑이 인상적이다.

‘리카비또스 성당 언덕에서’

난간에서는 청춘남녀들이 서로 애틋한 눈빛을 나누며 하늘과 맞닿은 에게해 위의 신들에게 사랑의 씨앗이 잉태되길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하산해 달동네 구석구석을 거쳐 발품을 팔다보니 국회의사당 앞 광장이다.

오후 5시 정각! 관광객을 위해서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근위병 5명이 총을 어깨에 걸치고 절도 있는 걸음과 총렬 등의 사열을 한다. 끝나면 관광객을 위해 사진촬영 모델도 되어준다.

그 건너편 시민의 광장에는 이스라엘의 폭력적 권위에 항의하는 가자지구 자선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유엔과 미국의 무관심에서 무자비한 폭격에 민간인들이 파리 목숨처럼 취급되는 팔레스타인들을 위무하기 위한 자발적 시민운동모임이다.

중동지역의 평화를 촉구하는 음악회 거리 주위 벽보에는 히잡을 쓴 여자의 선명한 눈동자에 눈물이 흐르는 포스터가 붙어있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세상은 권력이 정의이자 주먹이 쌘 깡패의 사회인가? 라고 반문하는 것 같다. 아프카니스탄 청년 3명이 대화를 원해 이야기하지만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마음으로 공감하는 보편적인 뜻만 감지할 뿐이다.

‘아테네 아카데미’

하지만, 최근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 IMF로부터 힘겨운 파도타기 게임을 하고 있다. 신화와 철학의 도시, 아테네의 현실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 ‘인간사가 고해(苦海)와 같아 선악시비 곡절도 함께 한다’는 부처의 말이 생각난다. 또 죽은 역사가 살아나서 다시 후손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전통문화의 힘이 왕성하게 느껴지는 국가가 바로 그리스이기에 지금의 위기를 잘 극복해 재기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