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93분의 기적 준비 됐나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5년 03월 04일(수) 20:14

필자가 몇 년 전, 잠시, 광주시청 여성청소년정책관으로 재직할 때, 중앙 부처 장관들을 만나면 호남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영남이 잽싸고 집요한 반면, 호남은 느긋하고 계산적이지 못해 좋은 기회를 많이 놓친다’는 것이다. 공감했다. 심지어 여당시절인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도 영남 공무원들이 더 적극적이었다는 후담을 들으면서 호남이 여전히 낙후지역인 이유를 실감했다.

2015년 광주는 단군 이래 역사적인 순간을 맞게 된다. 국가 문화사업으로 가장 규모가 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하고, 광주 역사 이래 규모가 가장 큰 국제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며, 호남고속철이 개통된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인 사건들이 2015년 광주발전의 대변화를 견인해낼지는 미지수다. 큰 기회가 와도 준비하지 않으면 큰 효과로 연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호남고속철 개통은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한반도에 신문명을 알리는 철도가 1899년 처음 개설된 지 116년만인 2015년 4월 서울-광주 호남고속철도가 개통한다. 2004년 서울-부산 경부고속철이 개통할 때 ‘레일 위의 시간 혁명’ ‘단군 이래 최대 국책 사업’ 등 화려한 수식어가 남발될 때도 우리는 고속철의 효과를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2015년 오송-광주송정 구간의 완공으로 호남고속철도가 그 위용을 드러내자 앞으로 다가올 속도(Speed)의 변화를 동참하게 됐다.

그러면 먼저, 10년간 고속철 시대를 누린 부산의 변화를 통해 광주의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부산은 개통 이전과 이후 도시의 인구, 토지이용, 산업 발전축이 모두 변화했다. 인근 지역 도시 간에 교류가 촉진되어 사회·경제·문화적으로 서로 융합되는 특이한 현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고속철도 정차역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천안·아산, 대전, 대구, 울산, 경주, 부산 등은 광역 경제권 내에서 핵심 지역으로 거듭나면서 간선-지선 교통을 연계해 주는 교통의 허브(Hub), 지역내 관광 및 비즈니스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특히 물류의 대동맥인 고속철이 운행되면 부산 신항만, 공항등을 연계해 동북아 물류거점으로 자리잡았다. 남북철도와 대륙철도(TSR, TCR 등)가 연결되면 ‘동북아 물류 중심기지’의 기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아침에 KTX를 타고 서울을 출발, 해운대·광안리 해수욕장, 자갈치 시장 등 버스 관광을 마치고 저녁에 서울로 돌아가는 부산 ‘시티투어’는 현재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실제로 시티투어는 KTX 개통전과 비교해 2배 이상 증가 했다. 해운대 해수욕장 관광객 수도 KTX 개통 이후 크게 늘어났다.

물론 호남보다 부산 인구가 훨씬 많기는 하나 서울-광주가 93분으로 서울-부산보다 시간이 적게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효과는 기대해볼만하다. 광주는 송정역을 허브로 어떤 변화를 얼마나 대비하고 있나. 광주시와 정치권, 지역사회는 바뀌고 있는 이 거대 패러다임에 대해 뭘 이해하고 있으며, 어떤 비전과 전략을 갖고 있나. 고속철 개통으로 국토 이노베이션 시대가 활짝 열려 부산 대전 대구 광주가 완전경쟁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광주는 어떤 ‘도시마케팅’ 전략으로 생존전략을 짜고 있나.

경부고속철이 개통하기 1년 전 2003년, 영남지역을 방문한 필자는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대구시, 부산시가 땀을 뻘뻘 흘리며 ‘고속철 개통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주제로 마라톤 브레인스토밍 하는 것을 목격했다. 지자체장과 국회의원 지방의원 경제단체 사회단체 여성단체 대표들이 모여 정말 진지하게 경부고속철을 타고 서울 사람이 대거 대구·부산에 오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있었다. 그때, 아하, 이런 게 호남과 영남이 다른 점이구나, 실감했다. 당시 그 회의와 별도로 경상북도 내 모든 지자체 관광과장들은 수십번 만나 회의를 거듭하고, 통합 관광 홈페이지를 만들자, 관광상품을 함께 개발하자, 인근 군 지역 농산물은 어떻게 팔아줄것인가, 관광 포인트를 짚으며 전략을 수립하고 있었다. 고속철도가 대구·부산의 경제력을 빼앗아 가지 않고 수도권과 지방 주요도시를 연계시켜 하나의 메가로폴리스(연담화된 거대 도시권)를 이루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하게 하자는 그들의 진지한 토론을 보면서 영남 지도자들의 ‘힘’을 엿보았다.

자, 그럼, 광주는 지금 뭘 준비하고 있나. 전남의 우수한 관광자원과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 계획이 나와 있나? 필자는 호남고속철 개통 한 달 남겨놓은 현재까지도 광주와 전남의 국회의원이 총 출동해 그 대책을 놓고 밤샘 토론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으며, 광주·전남 지자체장이 한 데 모여 서울 ‘빨대 효과’에 대한 대책을 숙의했다는 얘기도 들은 바 없다. 광주와 전남이 상생 약속을 해놓고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 이런 중요한 의제를 놓고 상생 전략을 마련하지 않으면서 뭘 상생하겠다는 것인가.

3월에 광주시가 해야 할 일 중에 이보다 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다. 부탁건대, 경제전문가 정치인 언론인 지자체장이 한 데 모여 새롭게 열릴 고속철도 시대에 맞추어 우리 도시는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어떠한 산업을 발달시키고 특화시켜 광주만의 강점을 가질 것인가, 관광에서 소외된 광주로 고속철 타고 올 사람은 누구인가, 진지하게 난상 토론하는 모습이라도 좀 보여 달라. 하루빨리 산·학·연·관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관광객 유치 프로그램을 마련하라.

화려한 미래는 이미 열렸는데, 그 대책을 준비하지 못해 과부하가 걸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영남은 철저히 준비하고 고속철시대를 즐겼다. 영남보다 고민이 미천하다면, 대구·부산보다 훨씬 적은 수혜를 받을 게 분명하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온다는 말이 있다. 호남고속철 개통 1년 후 평가에서 부산보다 광주의 이득이 적다면 지역민은 지자체장과 정치인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