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리는 봄, 만들어가는 봄 김유미의 커튼콜 |
| 2015년 03월 05일(목) 20:18 |
해마다 입춘과 경칩을 지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봄’이라는 단어가 입가를 맴돌 즈음이면 언제나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와 더불어, 봄을 시샘하며 그 맹위를 떨친다는 꽃샘추위가 찾아온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 우리의 뇌리에 쉽사리 떠오르게 되는 고사성어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라는 말이다. 음력 춘삼월이 오기 전까지 오락가락하는 초봄의 날씨를 표현하기도 하고, 한 때는 채 무르익지 못한 민주화로 인한 아픔의 시절을 표현하는 말로도 자주 쓰이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중국 한나라의 원제 시절에 빼어난 미모를 갖고 있던 왕소군(王昭君)이라는 궁녀가 쓴 한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漢)나라의 원제(元帝)는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가 그녀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방법은 모연수(毛延壽)라는 궁중화가가 그린 초상화를 보는 것뿐이었고, 따라서 궁녀들은 자신들의 얼굴이 황제에게 선택될 수 있도록 예쁘게 그려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그 화가에게 많은 뇌물을 바쳤다고 한다.
자신의 미모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왕소군은 뇌물을 바치지 않아서, 화가는 그녀의 초상화에 점을 찍어 매우 추한 모습으로 그려놓았고, 황제는 한 번도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황제는 주변 세력과의 화친 정책의 일환으로, 한나라의 여인과 결혼하기를 원하는 흉노족의 왕에게 자신이 추녀로 무시했던 후궁 왕소군을 아내로 주게 된다.
왕소군이 흉노의 땅으로 떠나던 날, 그녀의 실제 미모를 보게 된 황제는 자신을 속인 그 화가를 사형에 처하게 되고, 원치 않는 결혼 후에 오랑캐 땅에 가서 살게 된 그녀가 낯선 이국땅에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오랑캐의 나라에는 꽃도 풀도 없어서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도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한시의 내용 중 뒷부분에 해당되는 ‘춘래불사춘’은 우리에게 겉으로는 분위기가 다 무르익은 것 같으나 실제적인 완성도는 요원한 경우를 빗대어 사용하는 일종의 고사성어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아무리 황사가 온 땅을 뒤덮고 눈바람을 몰고 올 수 있을 만큼 매서운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쳐도 겨우내 메말라 있던 나뭇가지에 새싹은 움트고, 눈 덮인 겨울 산 아래 움츠리고 있던 계곡의 물은 다시 흐르게 마련이다.
봄이 봄 같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봄이 아닌 것은 아닐 것이다. 봄 같지 않은 봄을 봄다운 봄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지겹도록 황량한 겨울의 벌판을 죽은 듯이 견뎌온 밑둥만 남은 겨울나무의 인내와 마침내 깨어나 꽁꽁 얼어 있던 땅을 세차게 박차고 나가는 새싹의 강인한 생명력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신상에 큰 변화를 맞게 된 올 봄은 나에게도 아직 봄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움츠린 어깨를 펴고 크게 심호흡을 하고나면 축축한 흙냄새 풍기는 봄나물의 뿌리 사이로 찾아온 봄은 꽃잎 위를 나풀거리는 나비가 돼 이미 내 속에 들어와 앉아있을 것이다.
/김유미 아시아 발레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