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바꿔 생각해봐~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5년 03월 11일(수) 20:31

어느 날 해와 달이 만났다. 해가 달을 바라보며 ‘나뭇잎은 초록색이야’ 그러자 달이 나뭇잎은 은빛 이라고 우겼다. 이번엔 달이 먼저 말했다. ‘사람들은 잠만 잔다’ 그러자 해가 달에게 잘못 알고 있다며 대답했다. ‘아니야, 사람들은 언제나 바쁘게 움직여’ 둘은 다투게 됐다. 그때 바람이 나타났다. 바람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쓸데없는 다툼을 하고 있구나. 낮에는 해의 말대로 나뭇잎은 초록색이란다. 사람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땅도 시끄럽지. 그러나 달이 뜬 밤에는 모든 것이 변해 땅은 고요해지고, 사람들도 잠을 잔단다. 나뭇잎은 달빛을 받아 은빛이 되지. 늘 우린 이렇게 자기가 보는 것만을 진실이라고 우길 때가 많아’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잘 표현한 동화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하면 그 사람의 생각과 고충을 알 길이 없는 게 세상살이다. 사람은 어리석어서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필자는 나주 빛가람혁신도시에 이전한 정부기관 관계자들이 종종 불편함과 답답함을 토로할 때마다 ‘역지사지’ 못하는 광주·전남의 옹졸함에 화가 나곤 했다. 속내를 완전히 드러내지는 않지만 갑작스러운 객지생활에 대한 당혹스러움, 서울과 다른 형편없는 인프라, 정착하기엔 너무 미흡한 환경 때문에 ‘나주살이가 힘들다’는 말을 들으면 어찌나 미안하든지~. 입장 바꿔보라. 잘 다니던 직장이 난데없이 천 리 먼 길 지방으로 본사를 옮겨버렸다. 상당수는 가족들과 생이별하며 주말부부 신세가 돼 버렸다. 수도권에서 누리던 각종 문화 혜택은 온데간데 없고 떨어진 가족은 보고 싶다. 그래서 ‘유배지’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무리 정부시책이고 공공기관이라고 하지만 하루아침에 생활근거지를 낯설고 물선 땅으로 옮기는 마음 오죽할까 싶다.

필자가 만나본 혁신도시 근무자 중 광주에 주거지를 정한 이는 광주-나주를 오가는 대중교통 채널이 없다는 점을 가장 불편하게 얘기했다. 자치단체와 버스업계 간 이해가 얽혀 장기 표류하는 바람에 택시로 시외출근을 하게 됐다. 그런데 설상가상 광주와 나주의 택시 공동사업구역 지정과 택시 요금 문제를 놓고도 광주시와 전남도·나주시가 갈등을 빚으면서 매번 바가지 요금을 내고 있단다. 광주시와 전남도·나주시가 서로 소속 업계만 대변하면서 이해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는 것은 지방행정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나주 혁신도시로 거주지를 정한 이들 불편도 이만저만 아니다. 수개월째 아파트에서 핸드폰을 쓰지 못하고 있다. 중계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다. 그런가하면 이 아파트에 탁한 수돗물이 나와 음용 중단 사태까지 발생했다. 음용에 적합한 수돗물의 탁도 기준치는 0.5NTU이하지만 이 아파트 물탱크 등의 수돗물 탁도는 측정결과 기준치의 4배를 초과하는 2.7NTU로 나타났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라서 서울 탈출을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더 불편하다는 하소연에 부끄러움을 금치 못했다. 지역이 그들을 위해 해줘야 할 것은 느리게, 하고 그들이 지역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빨리 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주 혁신도시에 입주한 정부기관 직원들의 불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10일 광주매일신문이 주최한 ‘빛가람혁신도시 활성화를 위한 대토론회’에서 이건철 전남발전연구원장도 주제 발표를 통해 ‘이전 기관의 조기 정착과 성공적인 혁신도시 건설을 위해서는 기업하기 좋은 여건 조성이 급선무’라는 지적과 함께 ‘교육·의료·문화시설을 갖춰 기관과 기업, 연구소의 종사자들과 가족들이 기꺼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광주시와 전남도의 빛가람혁신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정부기관이니까 무조건 우리에게 뭔가 해줘야 한다는 식이다. 지역 연고기관으로 따듯하게 맞이하는 정서적 공감대 없이 ‘줄 것’ 보다 ‘요구하는 것’이 더 많다. 오픈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여타 기관 시설을 ‘광주에 달라, 전남에 달라’ 떼쓰면 정부기관은 투자를 망설이게 된다.

현 시점에서 광주시와 전남도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말라. 입주 기관이 잘 안착하도록 도와주고 직원들이 가족을 데리고 내려와 살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따뜻한 배려를 먼저 해야 한다. 과실은 그 다음이다. 시작부터 배놔라 감놔라, 내 것 네 것, 이익 따지기 시작하면 열 개 가져올 것 다섯 개도 못 가져온다.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는 현재 갈등을 빚고 있는 사안에 대해 대승적인 차원의 양보와 타협이 있어야 한다. 국가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했다고 해서 지방 것 아니다. 해당 직원들에게 ‘국가정책적인 큰 의미가 있으니 감수하라’며 정부기관을 상대로 지방행정 난맥을 드러낸다면 그 손해는 지역민에게 돌아온다.

제발 입장 바꿔 생각 좀 하자. 우리 자식들이 직장 찾아 서울로 떠날 때 광주·전남 부모들 마음 얼마나 아팠나. 반대로 서울에서 직장 때문에 나주로 이사 온 사람들 심정도 헤아려야 한다. 어떻든, 공공기관들이 ‘광주화’ ‘전남화’를 내세워 노력하고 있는데, 지역 이기심 때문에 안착을 방해해선 안 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전 공공기관 직원들의 마음이다. 그들이 광주에, 나주에, 마음 붙이지 못하고서야 공공기관의 광주화, 전남화는 요원하다. 광주시민, 전남도민의 따뜻하고 정성스런 손님맞이 마음만이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 나주로 이사 온 한 정부기관 직원의 말이 가슴을 때린다. “남도는 정이 많고 인심이 후하다고 들었는데, 와 보니 그것도 아니데요~” 부끄럽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