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지배에 대항하라 해와인문기획 시네필로 ‘위플래쉬’와 재즈 kjdaily.com

2015년 03월 18일(수) 20:30

시네필로는 철학적 지점에서 영화를, 영화적 지점에서 철학을 말하고 묻는 해와문화예술공간의 인문기획으로 격주 수요일 퇴근길 운림동 숙실마을 해와 소극장에서 해와자유대학 지식강좌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다.


공포스러운 존재, 고립된 인간, 쫓기는 시간, 살아남기 위한 투쟁, 튀는 피. 살인마 나오는 스릴러 같지만 음악영화 ‘위플래쉬’를 이르는 말이다. 영화의 주된 내용은 미국 최고 음악학교에서 재즈드럼을 전공하는 주인공이, 출중한 실력을 가진 학생들만 들어간다는 플레처 교수의 스튜디오 밴드에서 메인 드러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음악을 통해 관계를 회복하고 조화로운 세상을 꿈꾼다는 순진한 음악영화도 아니고, 교사의 눈물겨운 헌신으로 학생이 자아실현한다는 진부한 교육영화도 아니다. ‘위플래쉬’에서 음악은 인정을 위한 노동이자 선별의 도구이며, 교육은 지배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주인공 앤드류는 플레처 교수의 스튜디오 밴드에 선발되기 위해 그야말로 피나는 연습을 한다.

그에게 음악은 즐거운 오락이 아니라 성공을 판가름하는 객관적 지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범·척도·기준 또한 권력자에 의해 세워지는 법이다. 플레처는 ‘서둘렀는지 아니면 질질 끌었는지’를 모르는 앤드류의 뺨을 때리며 ‘내 템포에 맞추라’고 윽박지른다. 이 뿐 아니라 그는 학생의 외모나 불우한 가정사마저 멸시의 재료로 활용하고, 수업 중 의자를 던지는 폭행도 서슴지 않는다. 분노를 밑거름으로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게 만든다는 미명 하에 이루어진 일이다. 채찍질을 의미하는 ‘위플래쉬’가 연주곡의 제목이면서, 당근 없이 박차를 가하는 플레처의 교육관을 가리키는 이유다.

재즈가 다른 음악장르와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싱커페이션과 즉흥연주다. 리듬을 새롭게 분절하고 멜로디를 변주하는 싱커페이션을 통해 우리는 어깨를 들썩이는 스윙감을 느낀다. 1930년대 미국에서는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춤을 추기 위한 대중음악으로 재즈를 소비했다. 이에 대형 댄스홀을 가득 메울 강력한 사운드를 위한 빅밴드가 편성되고, 여러 연주자가 모인 만큼 파트별 조화로운 연주가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춤추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즉흥연주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플레처의 스튜디오 밴드도 자유로운 즉흥연주보다는 정확한 연주와 파트별 조화를 지향한다.

앤드류는 더블타임스윙을 마스터하기 위해 일정단위의 리듬으로 재분할된 시간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기계적 연습을 반복한다. 재즈는 사유를 멈추고 피학적(masochistic) 복종을 요구한다는 아도르노(Th. W. Adorno)의 비판처럼, 그는 더 빠른 손놀림을 바라는 플레처의 요구에 그저 순응하며, 급기야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심벌즈에 피를 쏟는다. 이런 그의 행위는 근본적으로 ‘시간의 지배 문제’로 확장된다. 플레처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연주를 고집하는 동시에, 아홉시 정각이면 교실에 들어서고, 학생들에게 연습시간과 경연에 늦지 말 것을 여러 번 강조한다. 한편 앤드류의 음악적 좌절은 늦잠으로 수업에 지각하고, 경연대회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건들과 중첩된다. 그는 시간을 분할하고 지배하라는 계몽의 기획을 완수하지 못한 낙오자가 된다.

앤드류가 시간을 조종하는 플레처의 손짓을 거부하고 즉흥연주를 펼친 후반 10여분은 자유의 전율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 또한 피나는 연습의 산물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긴장이 발생하고 절정을 맞아 해소된다는 재즈의 공식은 영화를 통해서도 반복되는 것이다.

/최송아 (전남대철학연구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