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호 해독 천재의 암호같은 삶 해와인문기획 시네필로 kjdaily.com |
| 2015년 03월 25일(수) 1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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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한명, 여성 한명이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성별을 알아맞히는 시합에 참가한다고 하자. 단, 당신은 그들을 볼 수 없고 음성이 아닌 문자로만 대화 나눌 것을 조건으로 한다. 대화 상대자는 당신에게 자기 성별에 대한 힌트를 적극적으로 제시하지만 당신은 헷갈릴 것이다. 왜냐하면 남성 참가자가 여성인 것처럼 성별을 속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남성 참가자의 역할을 컴퓨터가 한다면 어떨까? 혹여 당신을 속이는 컴퓨터가 등장한다면, 그 영리한 컴퓨터는 인간에 필적하는 사유 능력을 갖추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튜링 테스트’라 불리는 인공지능 판별법은 이런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튜링 테스트’를 제안한 수학자 앨런 튜링(A. Turing)은 ‘컴퓨터 기계와 지성’이라는 논문에서 바로 위에 언급한 시합을 서술한다. 튜링의 삶과 죽음을 담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제목은 위 논문 첫 번째 장의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는 튜링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해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스어로 수수께끼를 의미하는 ‘에니그마’(enigma)는 그 이름처럼 대단히 복잡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에니그마는 159에 10의 18승을 곱한 값만큼 다르게 설정할 수 있으며, 이 모든 설정을 해독하는 데에 10명이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매달린다 해도 2천만년이 걸린다. 이마저도 매일 설정이 바뀌기 때문에 에니그마는 사실상 해독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가 암호를 해독하는 기계를 발명해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암호와 같은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수수께끼는 논리적으로 해명하기 어려운 신비한 사물이나 현상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기존의 사물이나 현상을 은폐하는 비개념적 은유이기도 하다. 보안을 위해 비밀번호를 설정하는 것처럼, 숨기고 위장하는 행위는 자기보존을 목적으로 한다.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위장해 목숨을 보존하는 보호색을 쓴 동물처럼, 세상 사람들과 너무 달랐던 튜링은 자기를 숨기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튜링은 수학이나 과학에 천재적 재능을 보인 반면 언어 감각이 현저히 모자랐으며, 깔끔하지 않은 외모와 비사교적인 성격 탓에 늘 외골수를 자처했다. 그가 암호 해독을 위해 일했던 비밀 조직과 전쟁 승리에 기여한 공로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전쟁 후에도 숨겨져야 했다. 더욱이 그는 동성애를 질병이나 범죄로 간주하는 당대 영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평생 동성애 성향을 숨겨야 했다.
학창시절 첫사랑이 죽고 나서 튜링이 매달린 기계는 아마 그를 부활시키려는 의지였을 것이다. 튜링이 제안한 ‘이미테이션 게임’(모방 시합)에서 기계는 인간의 지성, 그 중에도 속임수를 모방한다. 이것은 위장을 통해 삶을 보장받았던 그의 비밀스런 생을 반영한다.
스핑스크의 질문이 오이디푸스에 의해 풀리는 순간 스핑크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죽음뿐이었다. 수수께끼는 해독되는 즉시 생명력을 상실하는 법이다. 전쟁동안 튜링의 군복무 이력이 삭제된 것에 의문을 품은 경찰이 그의 뒤를 캐다 그의 전쟁공로 이력과 함께 동성애적 성향을 알아내고 만다. 이로 인해 화학적 거세를 선고받은 튜링은 비참하게 살아가다 몇 년 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한 사람의 인생은 몇 가지 단순한 도식으로 재단될 수 없다. 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내재적 연관관계, 그 암호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야 한다./최송아·전남대철학연구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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