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지 않는 사랑을 하라 해와인문기획 시네필로 ‘포르노그래픽 어페어’와 사랑 kjdaily.com

2015년 04월 01일(수) 19:39

시네필로는 철학적 지점에서 영화를, 영화적 지점에서 철학을 말하고 묻는 해와문화예술공간의 인문기획으로 격주 수요일 퇴근길 운림동 숙실마을 해와 소극장에서 해와자유대학 지식강좌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다.

플라톤의 ‘향연’은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여러 인물이 사랑을 주제로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본래 두 사람의 등이 붙어 하나를 이루는 형태였던 인간이 신의 권위에 대항하다 제우스에 의해 둘로 쪼개졌다는 우화를 들려준다. 사랑은 잃어버린 나의 반쪽을 찾는 데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인간의 본래적 온전함을 회복하려는 시도라는 이러한 관점은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 만들어진 존재라고 보는 창세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프롬(E. Fromm) 또한 모든 시대와 문화를 통틀어 근본적인 인간의 과제가 분리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타자와 결합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아담과 이브가 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아 에덴동산에서 퇴출당한 사건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다. 신이 금지한 과일을 먹고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단순히 성기 노출로 인한 수치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브와 아담은 하나의 육체를 나눠 가진 만큼이나 한마음 한뜻으로 살아왔지만, 선악과에 대한 생각의 차이로 인해 서로가 구분된 존재라는 인식에 이른다. 따라서 분열된 존재에서 오는 수치심과 죄책감, 그리고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 존재는 고독이라는 감옥을 떠나려는 절실한 욕구를 갖게 된다는 것이 프롬의 설명이다. 자연과의 일체감을 추구하거나, 마약·알코올에 빠지거나, 성에 탐닉하거나, 집단의 이념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 모두 개체적 생명을 초월해 타자와의 합일을 이루어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영화 ‘포르노그래픽 어페어’에서는 성 탐닉을 목적으로 만나는 남녀가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성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자극적인 제목과는 달리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여자와 남자는 상상으로만 해왔던 포르노를 직접 경험해보겠다는 목적 하나로 만났다. 카페에서 만나 호텔로 직행했던 이들의 관계는 만남을 지속하면서 차츰 데이트로 이어진다. 이들이 육체적 쾌락만이 아닌 정신적인 사랑을 느껴 혼란스러울 무렵 사건이 발생한다.

이들이 예약한 호텔방에 잘못 찾아온 노인이 복도에서 돌연사한 것이다. 병원에서 만난 노인의 부인은 40년간 바람피운 남편이지만, 그가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없다며 자살하고 만다. 부인의 죽음은 여자에게 육체관계 없는 사랑에 대한 고민을 안겨준다. 사랑 고백을 한 적 있냐고 남자를 추궁하던 여자는 돌연 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남자는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이날 그들은 긴 대화를 나누며 사랑을 확신한다.

프롬이 말했듯 서로에게 ‘미쳐버리는’ 것은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가 아니라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하는 것 뿐일까? 정신적 동반자로서 새롭게 시작하리라 결심한 그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다시 만난 그들은 어쩐지 어색하게 관계를 끝내고 만다. 프롬에 의하면 이것은 사랑을 주는 문제가 아닌 받는 문제로 이해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남자는 여자가 그만두고 싶어 한다고 느끼고, 여자는 남자가 우리는 안 될 것이라고 한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탓을 돌려 헤어졌지만 사실 그들의 이별은 사랑 받지 못할까 하는 조급함 때문에 벌어졌다. 시간이 지나 서로를 추억하며 인터뷰하는 그들이 여전히 안타까운 이유다.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 활동이며, ‘빠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최송아 전남대철학연구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