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지역 연계 돕는 선진 문화행정 구축 힘써야 문화수도 광주 문화시대 열자 <11·完>예술과 문화행정의 조화 대인예술시장 인기 끌자 입주작가 되레 ‘임대료 폭탄’ 지역 문화관광 콘텐츠 지자체도 적극적 관심·지원을 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

2015년 04월 02일(목) 20:27

세계적인 ‘소나무 사진작가’ 배병우씨는 2012년부터 신안군과 함께 사진집 제작과 사진미술관 건립을 추진했으나 지난해 말 신안군수가 바뀌면서 전 군수의 사업이란 이유로 사업 전면 철회라는 황당한 소식을 접해야 했다.

문화중심도시 시대를 맞아 광주 곳곳에서는 지역성을 담은 콘텐츠 발굴 작업이 펼쳐지고 있다. 지역의 역사, 공간, 예술성이 담보된 문화작업과 상호간 융합시도가 잇따르고 있는 실정. 하지만 그 속도와 전문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역의 문화행정이 문제가 되고 있다. 문화행정가들의 관료화와 비문화적 허술함에 간간히 터져 나오는 예술인들의 한탄은 작금의 문화수도 광주 실태를 반영한다.
광주가 진정한 문화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지역성을 담은 ‘광주다운’ 문화 콘텐츠가 넘쳐나야겠지만, 이를 효율적으로 유도·연계하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지극히 ‘문화적인’ 문화행정의 확립이란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광주시립극단 기획 연극 ‘정율성’ 광주시립극단이 전국 최초로 연극 ‘정율성’을 기획, 오는 10-12일 광주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선보이기로 한 가운데 출연배우들이 맹연습 중이다. 그러나 ‘차이나 프렌들리(China Friendly)’를 외치고 있는 광주시 등의 관심이 기대보다 저조해 향후 콘텐츠 발굴 등의 의욕을 저하시킬까 우려된다.

◇지자체장 바뀌니 문화사업도 일방 취소=세계적인 ‘소나무 사진작가’로 알려진 배병우씨가 지난달 19일 광주시립미술관 초대전(3월19일-6월21일) 개막식 참석차 광주를 찾았다.

여수 출신인 배 작가는 고향 일원에서 대규모로 여는 첫 개인전에 감개무량한 감회를 내비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요컨대 신안군이 배 작가의 신안 사진 작품집을 제작하기로 했다가 군수가 새로 바뀌면서 제작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

지난 2012년 신안군은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른 배 작가의 작품을 통해 ‘천사의 섬’으로 불리는 신안을 홍보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박우량 전 신안군수는 배 작가에게 신안의 아름다운 섬과 바다를 찍어줄 것을 부탁했고, 배 작가는 흔쾌히 수락, 신안지역 섬을 돌며 사진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배 작가는 특별한 조건 없이 제작비 1억원을 받고 작업에 임했으며, 풍경 사진의 거장인 사진작가 마이클 케냐도 신안군과 사진작품 제작 계약을 했다.

이후 배 작가는 사비로 요트를 직접 빌려 증도, 자은, 안좌, 비금, 도초, 흑산, 홍도 등을 돌며 바다와 섬의 비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지난해 말 3년여간 찍은 사진 20여점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본격적인 사진집 제작을 논의하기 위해 고길호 현 신안군수를 찾아갔다. 하지만 고 군수는 전 군수의 사업이라며 사진집 제작을 거부해 결국 제작은 취소됐다. 사진집 제작을 위해 책정된 예산 9천만원도 불용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배 작가는 “고 군수가 사진도 보지 않고 ‘아마추어 사진동호인을 대상으로 사진공모전을 여는 게 차라리 더 낫겠다’고 말해 모멸감을 줬다”며 “전임 군수의 사업이라 대놓고 반대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이같은 소식에 한 미술인은 “참으로 창피스러운 일”이라고 못 박은 뒤 “이래서야 어떻게 이 지역을 문화중심지라고 자평할 수 있겠느냐”고 씁쓸해했다.

대인예술시장 ‘夜시장’ 상권붕괴 위기에 처해있던 대인전통시장은 2008년부터 예술가들이 몰려들어 작업과 프로젝트를 벌이면서 유명해졌다. 하지만 그 유명세와 광주시의 일방적인 야(夜)시장 확대 탓에 오히려 시장은 문화예술보다 상업 위주로 변해가고 있다는 지적을 낳고 있으며, 작가들은 시장을 떠나야 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예술 없고 가판대만 있는’ 대인시장 될라=최근 드러난 일방적인 문화행정으로 인해 우려되는 곳도 있다. 바로 광주 동구 대인예술시장이다.

상권붕괴 위기에 처한 대인재래시장이 지금처럼 예술시장으로 탈바꿈된 것은 2008년부터다. 당시 오쿠이 엔위저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이 대인시장을 야외전시장으로 활용하면서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황으로 비어버린 점포들이 미술작가들의 작업실로 변신하면서도 전국을 대표하는 예술적 전통시장이 된 것이다.

이처럼 몇 년새 인기가 급증하자 광주시는 매달 한차례 진행됐던 대인예술야(夜)시장 프로그램을 올해부터는 매월 두 차례씩 진행키로 했다. 하지만 시장 내 예술가들 일부는 이 같은 일방적인 광주시의 행정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예산은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개최 횟수만 늘어남에 따라 야시장 규모나 대인시장에서 진행되는 다른 문화예술 사업의 축소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인시장의 경우 올해 5억원의 예산으로 야시장, 레지던시, 한평갤러리, 메이커스 스튜디오, 시민 대상 프로그램, 청년 상단 네트워크 등 6개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이중 야시장 관련 예산은 지난해와 같은 1억원 수준. 하지만 지난해에는 모두 7차례 야시장 행사가 진행됐고, 한 차례 행사에 1천200만-1천500만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이 예산을 쪼개 올해는 매달 야시장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시장이 인기를 끌자 건물 임대료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 것. 시장 입주작가들은 임대료 폭탄으로 인해 작업실을 내놔야 할 처지에 놓이면서 시장을 떠났거나 혹은 떠날 것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작가는 “월 10만원이면 쓸 수 있었던 공간이 이제는 최고 보증금 500만원에 월 30만원을 줘야만 한다”며 “심각하게 열악한 공간이지만 개성 넘치는 작업을 할 수 있겠다 싶어 시장을 찾아왔던 작가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 자리들은 상인들의 장사하는 공간으로 서서히 대체되고 있다. 조만간 ‘예술은 없고 가판대만 있는’ 시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자조 섞인 말들이 나오고 있다.

◇전국 최초 ‘정율성’ 연극에 광주시 무관심=그런가하면, 문화행정계의 무관심이 지역문화 침체 우려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요즘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광주시립극단을 들여다보자.

광주시립극단은 오는 10-12일 광주문예회관 소극장 무대에서 광주출신 중국 3대 혁명음악가 ‘정율성’을 조명한 연극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런데 박윤모 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박 감독은 “광주시가 가장 중점적으로 내건 시정이 ‘차이나 프렌들리(China Friendly)’라서 예술분야도 그에 걸맞은 작품들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정율성’을 전국 최초로 연극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박 감독은 정율성 연극이 작품화된다는 소식을 올 초께 안팎으로 알렸고, 이후 광주시 문화·관광분야와의 연계와 소통을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붐이 전혀 일지 않아 낙심 아닌 낙심에 빠졌다. 광주시립극단은 자체적으로라도 연극 ‘정율성’을 매개로 삼아 중국 측과의 문화·관광 교류를 시도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광주시의 무관심이 못내 아쉽고 안타깝다.

박 감독은 “한 지자체의 행정이 문화적 매개체 없이, 혹은 예술성의 원동력 없이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행정가들의 예술적 마인드 함양과 문화행정적 원활한 정책 연계·실행이 실현돼야 광주는 문화중심도시라는 명함을 갖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문화도시를 조성하는 것은 문화예술인들과 향유자들의 몫만이 아니란 말이다.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문화행정가들의 선진적 활동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