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에게 왜 불행한 일이 생기는 걸까 해와인문기획 시네필로 ‘리바이어던’과 인과응보 kjdaily.com

2015년 04월 08일(수) 19:31

시네필로는 철학적 지점에서 영화를, 영화적 지점에서 철학을 말하고 묻는 해와문화예술공간의 인문기획으로 격주 수요일 퇴근길 운림동 숙실마을 해와 소극장에서 해와자유대학 지식강좌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깊은 불행에 빠졌을 때, 사람들은 신을 탓하곤 한다. 불행을 당한 사람이 선하고 정의로웠다면 원망은 더욱 커진다. 한편, 벌을 받아 마땅한 악인이 평범하게, 더구나 행복하게 살 때 사람들은 “귀신은 뭐하나, 저런 사람 안 잡아가고.”라며 신에게 정의 집행관의 역할을 기대하곤 한다. 이런 생각들 속에는 선한 행위에 선한 결과가, 악한 행위에 악한 결과가 따른다는 인과응보적 희망이 자리하고 있다.

구약성서의 ‘욥기’는 ‘왜 선한 사람이 고통 받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인과응보적 이해에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신은 욥의 의로움을 시험하기 위해 그에게 전 재산과 자녀를 잃게 하고 신체마저 훼손하는 불행을 내린다. 고난에 빠진 욥에게 부인은 신을 저주하라 하고, 친구들은 네 죄 때문에 신이 너를 불행에 빠뜨린 것이니 사죄하라고 다그친다. 그는 신을 원망하지도 않았지만, 죄인이 아니므로 사죄하지도 않겠다고 대응한다. 욥은 다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를 신에게 물었다.

영화 ‘리바이어던’의 주인공 콜랴는 욥의 질문을 반복한다. 바닷가를 바라보는 집에서 아름다운 아내, 친구 같은 아들과 사는 그는 민관사업을 유치한다는 시의 정책으로 집터를 뺏길 위험에 처해있다. 군대 후임이었던 변호사 드미트리가 콜랴의 유일한 희망이다. 드미트리는 시장이 저지른 부정부패의 증거를 내밀어 결정을 철회하지 않으면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 궁지에 몰린 시장은 드미트리의 뒤를 캐는 한편 깡패를 동원해 물리적 폭력으로 그를 굴복시킨다.

콜랴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내가 드미트리와 외도하고, 이 사실을 목격한 아들이 충격을 받아 삐뚤어져, 아내는 괴로움과 자책으로 자살하고 만다. 절망 끝에 놓인 콜랴는 교회 신부에게 자비롭고 전능한 신이 있기나 하냐고 따진다. 신부는 욥기를 인용한다. “낚시로 리바이어던을 잡겠느냐? 그 혀를 끈으로 묶을 수 있겠느냐? 그것이 네게 계속 간청하고 부드럽게 네게 말하겠느냐? 그에 비할 존재가 없느니 교만한 자에게 군림하는 왕이다.” 이것은 욥의 질문에 대한 신의 대답이기도 했다. 아내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콜랴는 설상가상으로 아내를 살인했다는 누명을 쓴다. 시장이 경찰력과 사법권을 배후조종한 까닭이다.

철학자 홉스는 통치체계의 절대주권을 욥기에 등장하는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에 비유했다. 성경에서 신은 리바이어던의 가공할 파괴력을 내세워 인간의 초라함을 일깨우고 신의 전능성을 과시한다. 신은 인간 뿐 아니라 리바이어던을 포함한 세상만물의 주관자로, 인간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초월적 규범을 지니기에, 신에게 선악의 개념이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콜랴는 끝내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가고 포클레인이 그의 집을 쓰러뜨린다. 그러는 한편 시장은 아들과 교회를 찾아 신의 축복을 확인한다. 파국의 상황에 신이 등장해 갈등을 해소한다(Deus ex machina)는 희망은 문학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신에 의해 욥이 건강과 재산, 자녀를 회복했다는 욥기의 후반부 내용이 인과응보적 교의를 위해 사후에 추가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욥기는 삶의 고난마저 긍정하고 신에게 순종하라는 교의로 소비되곤 한다. 불행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무력감을 신의 섭리로 긍정하는 것은 단지 개인의 심적 위안을 위해서다. 더욱이 종교는 그 위안을 악인에게도 똑같이 준다는 데 함정이 있다.

/최송아(전남대철학연구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