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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의 정치균형, 호남의 정치불균형

본사 사장

2015년 04월 15일(수) 20:42

최근 어떤 회의 자리에서 김양균 전 헌법재판관이 정치균형을 얘기하면서 충청도의 예를 든 적이 있다. 전 곡성군수의 부인 김화중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중금속 오염이 안 된 아껴진 땅 전라도의 특화 사업을 구상할 때 화장품 원료 생산 최적지로 보고 사업을 추진하려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충청도는 그의 조언을 듣고 곧바로 오송시는 세계화장품박람회를 열고 세종시는 화장품 특화사업을 추진했다. 아이템을 듣자마자 여당 야당 국회의원들이 서로 하겠다고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례처럼 많은 사업에서 최근 충청도는 여당 야당이 합심해 상당한 저력을 보여주며 충청도의 도약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호남인구를 최근 추월했다.

김양균 전 헌법재판관은 이런 충청도의 약진 배경에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 선거시 여당과 야당을 골고루 뽑아 경쟁하게 만든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당이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지방의원을 독식하고 있는 호남과는 달리 여당과 야당 비율이 5대 5 정도 고루 상존하는 충청도는 정치인이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충청도에 좋은 사업과 예산을 경쟁적으로 유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서울에서는 충청도가 ‘엄청도’로 변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제 ‘중원을 얻는자 천하는 얻는다’는 말까지 통용될 정도로 충청도의 정치적 힘은 대단해졌다.

지난해 6·4지방선거에서 충청도에서는 1995년 지방선거가 도입된 이후 사상 처음으로 대전과 세종·충남 광역단체장 모두를 진보진영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석권하면서 정치지형도 변화를 보여주었다. 당시 선거 최대 이변으로 꼽히는 새정치민주연합 권선택 대전시장 후보는 지방정부 20년 만의 첫 ‘민주’ 대전시장이 되었다. 그동안 대전시장 선거에서는 지역정당이나 보수진영에서만 시장을 배출했지만 이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 진보진영이 처음 대전시장 당선자를 배출했다. 안희정 충남지사 후보는 지난 2010년 전통적 보수지역으로 꼽히는 충남에서 첫 민주당 지사로 당선된데 이어 재선에도 성공하면서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이미지를 굳히게 됐다.

당시 충청도 언론은 ‘충청도가 대한민국의 오래된 숙제를 풀고 있다’고 평했고 ‘영남과 호남, 충청의 지역정치 구도를 충청도가 풀고 있다‘고 호평했다. 이제 정치적 위상 제고로 지역 구도를 재편할 ‘태풍의 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충청권은 역대 선거에서 승패를 가르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면서도 정치권에서 소외되고 홀대받았으나 세종시 출범과 인구 증가 등으로 정치적·행정적 역할과 위상이 대폭 상승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지역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심지어 다음 대권을 넘보며 충청권 잠룡(潛龍)이 주목받고 ‘충청 대망론’까지 꿈틀대는 등 정치의 신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충청권의 인구는 지난 2013년 5월 호남권 인구를 처음으로 추월한 뒤 점차 격차가 커지고 있다. 선거 유권자수도 2012년 18대 대선 당시 호남권(412만8천591명)보다 적은 410만4천716명에 그쳤으나, 2014년 6회 지방선거에서는 421만5천204명으로 호남권(419만1천100명)을 추월했다. 충청도의 언론들은 ‘영호남 시대’가 가고 ‘영충호 시대’를 맞았다며 부쩍 높아진 위상을 확대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호남은 어떤가. 아직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지역민의 뜻과 관계없이 정권교체를 위해 ‘힘을 실어달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1당 독식을 즐기고 있다. 무기력에 빠진 호남정치를 부활시키고, 희망을 잃어버린 야권을 재구성해 달라는 지역민의 여론을 겸허히 듣지 않고 있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곡성·순천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당선돼 대 파란을 일으켜도 큰 자극을 받지 않는 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이제 더 이상 정치적 경제적으로 호남의 소외를 방치할 수 없다. 지역의 중산층과 서민의 삶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마저 후퇴하고 있다. 서민과 노동자의 생존권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제1야당은 이럴 때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고통 받는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 어떤 대안을 내놓고 있는가. 힘없고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해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야당의 독점적 지위에 만족해 만년 야당의 지위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는가.

필자는 호남의 소외와 차별이 더욱 심해지지 않도록 정치지형이 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호남 차별에 저항하지 않는 야당은 더 이상 우리를 대변하는 야당이 아니다. 새 판을 짜든지 다당구도를 만들어 정치인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정책 대결을 해야 호남정치가 부활되고 호남의 경제력이 회복될 것이다. 충청도가 그렇듯 호남의 독점구조는 깨져야 한다. 호남 발전을 견인할 가장 큰 요소는 여당의 변화가 아니라 야당의 변화다. 반성도 책임도 쇄신도 없이 계파 패권주의 정치의 악순환 속에서는 충청도의 대반란을 이길 수 없다.

올해 보궐선거와 내년 총선을 통해 호남이 새로운 정치적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호남의 낙후와 차별은 계속될 것이다. 여-야, 야-야 등 다양한 정치 집단이 존재해야 하고 경쟁을 통해 지역민의 심판을 받는 ‘균형 정치’가 실현될 때 호남의 불행은 빨리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