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도시, 선거와 시민주권 최영태 |
| 2015년 04월 21일(화)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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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발달한 민본주의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되 국민을 정치의 주체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서구에서 발달한 민주주의는 국민을 위한 정치뿐만이 아니라,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를 기본 이념으로 삼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의 주체는 국민이다. 선거는 국민이 정치의 주체로서 기능하기 위한 필수적 수단이다. 선거는 요식행위가 아닌, 국민이 실질적인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1970-80년대에 민주화세력들이 내건 첫 번째 구호는 대통령 직선제였다. 요식적 선거가 아닌 국민의 실질적 선택권을 보장하는 선거제를 도입하라는 것이었다.
호남인들은 오랫동안 민주정부의 수립을 위해 헌신했고, 그 과정에서 지역정치는 뒷전으로 밀렸다. 민주정부만 수립되면 지역정치와 경제발달은 보다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지 20년 가까이 된 지금도 지역은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고, 지역정치는 후퇴할 대로 후퇴해버렸다. 민주주의는 복수정당제를 근간으로 하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는 정치제도라고 하는데, 호남지역에서의 선거는 특정정당이 공천한 후보에 대한 사실상의 찬반투표(?)에 머물러있고, 지역정치는 철저히 중앙정치에 예속되어 있다.
서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눈앞에 다가왔다. 이 지역에서 모처럼 경쟁이 있는 선거구도가 형성되었다. 경쟁은 주로 민주진영 후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누가 당선되어도 민주진보진영 대 새누리당의 세력구도에는 큰 변화가 생기지 않을 전망이다. 유권자들은 오랜 만에 선거권을 제대로, 그것도 마음 편하게 행사할 수 있어 즐겁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새정치민주연합은 경쟁이 있는 이런 선거에 전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경쟁은 곧 패배이고, 이 선거에서 패배하면 당이 금방 공중분해 되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두려움의 탈출구를 과거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건실한 대안 모색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상투적인 수법 즉 호남인들에 대한 ‘반 애걸, 반 협박’조의 언어에서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좋든 싫든 호남인들은 무조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지지해주어야 당이 중앙정치에서 힘을 얻고, 정권교체를 이루고, 그래야 호남에 희망이 있다는 식이다.
1967년 국회의원 선거 때 박정희 대통령은 목포에 내려와 임시국무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목포시민들에게 공화당 후보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해주면 목포에 ‘돈 폭탄(?)’을 투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목포시민들은 이 달콤한 유혹을 물리치고 김대중 야당후보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했다. 김대중 씨가 훗날 대통령이 되고 세계적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험한 경쟁을 이겨내고, 또 그런 경쟁에 대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단련한 결과였다. 물론 인물을 알아보는 목포시민들의 뛰어난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상호작용이 가능했다.
호남지역 정치인들은 경쟁 없이 편하게 정치를 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호남지역 유권자들의 무조건적 지지에 근거한 집권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그런 방식으로는 유능한 정치인도 키우지 못하고, 당의 힘도 키우지 못해 결국 집권도 하지 못하게 된다. ‘묻지 마 투표’를 강요하는 것은 호남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민주도시의 위상을 후퇴시키며, 호남의 낙후 및 고립을 가중시킬 뿐이다.
광주가 자긍심을 갖는 도시가 되려면 먼저 지역정치를 선진화해야 한다. 민주정부의 수립을 위해 계속 노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중앙권력의 향배와 상관없이 지역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토대와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시민주권을 바르게 행사하여 좋은 대표자를 선출하고, 품격있는 민주도시를 만드는 것, 그것이 5·18정신의 계승자로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당면 과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