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9 보궐선거와 광주의 선택 나간채 |
| 2015년 04월 26일(일)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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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가 돌아왔다. 선거철이다. 지난 주 부터 교차로 건널목에 현수막이 걸리고 이런저런 홍보지들이 나돈다. 후보들이 시장이나 거리에서 웃음으로 악수를 청하며 한 표를 호소하는 등 각가지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평소 웃음에 인색하던 인간마저도 항상 얼굴에 미소를 날려야 하는 이 연극이 바로 선거다. 사회학자의 눈으로 볼 때, 정치는 인간의 사회적 삶에서 최고의 실천형식이고, 선거가 바로 그 정치의 시작이다. 때문에 우리사회에서 선거는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가장 뜨겁고 치열한 싸움의 현장이면서도, 승자독식의 가장 잔인한 축제 마당인 것이다.
한국 선거정치의 역사에서 광주의 선택은 매우 인상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연이은 선거에서 우리의 선택은 확고했고 한결같았다. 김대중과 노무현이었다. 이들은 군사독재에 맞선 민주투사였고, 부자들의 탐욕과 착취에 맞선 시민대중의 친구였으며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의 대변인이었다. 소외되고 차별받아 외롭고 가난했던 우리에게 그들은 믿음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무엇이 우리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었는가? 단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그들의 행동이었다. 물론 사려 깊은 통찰력, 명석한 판단력, 위기에 대한 순발력, 그리고 이것들의 기본이 되는 지적 자산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이것을 원료로 해서 산출하는 행동, 즉 그들의 행동력이 바로 우리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행동한다. 또 그들의 모든 행동이 다 믿음과 희망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어떤 행동이 믿음과 희망을 주었는가? 나는 그 행동을 재는 잣대를 ‘죽음과의 거리’라고 단언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의 삶이 죽음에 얼마나 가까이까지 다가갈 만큼 강인하고 치열했었는가가 그 사람을 규정한다고 본다. 김대중은 죽음의 한 치 앞에서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고, 노무현은 결국 죽음까지도 스스로 넘어섰다. 광주가 그러한 정치인을 사랑했고 선택했다는 것은 국가가 광주에게 감사해야 할 명예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그들은 떠나고 없다. 계승자들은 그처럼 강인하지도 치열하지도 못했고, 결국에는 패배했다.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부정, 세월호 학살만행 등 국기를 망가뜨리는 폭거가 자행되는 이 기막힌 현실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지도적 정치인들은 국민의 분노와 절망에 귀를 막고 눈 가리며 지배권력의 2중대로 전락하여 위대했던 광주의 정치전통을 짓밟고 있는 것이 오늘의 쓰디쓴 현실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생명의 끝 길에 이르는 강인한 싸움도 있었다. 그것은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에서 지금 뛰고 있는 후보들 가운데 한 사람이 감행했던 살신성인의 저항행동이다. 그는 2011년 당시 국회의원으로서 한미FTA협정이 졸속 타결되는데 반대하여 국회에서 25일간 단식농성을 결행했다. 진한 눈물,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체중이 55㎏으로, 그리고 혈압이 80으로 떨어진 극한의 싸움이었다. 죽음에 이르는 문이 머지않은 지점이었다. 1983년 야당 총재였던 김영삼이 23일간의 단식투쟁을 통해서 통합야당의 정치적 지도력을 강화할 수 있었듯이, 그 기록을 뛰어넘는 강인한 행동력을 바탕으로 그가 호남정치의 새로운 희망을 재창출 할 수 있기를 기대할 만하다.
이제 다시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아프지만 아름다웠던 호남정치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치솟는다. 민주주의와 정의의 본고장인 광주의 운명을 짊어질 사람은 적어도 생명을 건 투쟁의 길을 자임할 수 있는 용감한 정치인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한말의병과 광주항일학생운동으로 이어지는 지난 1세기 광주의 역사는 박근혜 정권의 잔인함에 맞서 싸워 이겨낼 수 있는 담대하고 강인한 정치인을 부르고 있다.